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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Mar 24. 2020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 (월간 에세이)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


강백수


 며칠 전 추석 연휴, 대학원 친구인 올랴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절을 잘 보내라는 인사였다. 그녀는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온 유학생이다.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숙사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문득 모두가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보내고 있을 이 연휴가 그녀에게는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더욱 또렷이 느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추석 다음 날, 친구들과 함께 한 친구의 집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올랴를 초대했다.


 연탄불에 맛있는 음식을 구워먹다가, 한 친구가 올랴에게 물었다. 

“백수랑은 어떻게 친해진 거에요?”

“지난 봄에 대학원에서 학술답사 갔다가 친해졌어요.”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유독 백수랑 친해진 거예요?”

“음, 오빠는 나를 그냥 나로 봐주거든요. ‘외국인’이나 ‘우크라이나사람’ 말고.”


 올랴는 우크라이나에서 유학을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매번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만 묻는다고 했다. 그 놈의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소리를 지겹게 들었다고 했다. 모두가 그녀가 자란 나라에 대해서만 궁금해 할 뿐, 올랴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출신 국가보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가 일부러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었다. 학부시절 한 중국 출신 후배가 내게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스물 한 살 여자애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한다고. 영국에서 온 내 친구 다니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기만 보면 그렇게 영어 회화 연습을 하고싶어 한다고. 그래서 자신을 비영어권 국가인 루마니아 출신이라고 속이는 날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던 그 얼굴들이 너무 외로워보여서 적어도 나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그의 출신국가보다 그 자신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것은 단지 외국인들을 대할 때만 주의해야 할 점은 아니다. 누구나 사람을 만날 때 표면적으로 보이는 상대방의 특징적인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독특한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생소한 성장 배경,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신체적 특성 같은 것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정작 그 사람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 누구 누구 누구가 아니라, 판사, 의사, 가수, 외국인, 시각장애인, 뚱뚱한 친구, 키 크고 마른 친구, 환자 등으로 사람을 정의해버리는 일상적인 폭력. 내 주변에도 나 자신에 대해 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음악가와 문학가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 하나 쯤 자신의 인간관계 리스트에 전시해두고픈 마음으로 내게 다가오곤 하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마음을 포착한 순간마다 나는 또 얼마나 허탈한 기분이 되었던가.


 소중한 사람들과 따스한 대화를 나누며 살아도 외로운 존재가 사람이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것이 삶이다. 그 지루한 싸움에 서로 힘을 보태며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누군가를 마주하는 매 순간마다 그를 둘러싼 어떤 것들보다 그 자신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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