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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민 Dec 25. 2021

일과표를 짰습니다

당분간 여기는,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모스크바에 온 지 6개월, 아이를 낳은 지 이제 70.


일과표를 짰다.

일과표는 동그라미 두 개다.

큰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

아기 일과는 큰 동그라미, 나는 아기의 일과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내 일과는 큰 동그라미 안 작은 동그라미다.


# 먼저 아기의 일과.

생후 2개월 아기에게 일과가 웬 말이냐며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기의 일과는 제법 진지하다.

아기가 언제 젖을 먹고, 언제 낮잠을 자고, 언제 얼마나 놀아야 하는지.

세밀하게 시간을 나눠 적절한 수유 텀, 놀이시간, 수면시간을 지켜줘야 아기아 안정적으로 큰다고 한다.

많은 육아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기도 아기지만 양육자 역시 아기가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야 훨씬  편해진단다.

맞는 말이다. 아기가 예측 가능한 생활을 하게 해 줘야지 내키는 대로 살게 두면 양육자는 하루 종일 헉헉대며 아기를 쫓아다녀야 한다.

내가 정말 그랬다.  


3시간 단위로 슈유 / 수유 직후 동적 놀이 30, 정적 놀이 30 / 직후 낮잠은 1시간에서 1시간  / 목욕은 저녁 5 ....


# 빼곡하게 아기 일정을 그려 넣은 다음  일정을  차례.

 일정은 아기가 자는 시간에만 소화가 가능하다.

만일 이때 아기가  자면?  시간에 잡아둔  일정은 가차 없이 스킵이다.


- 처음엔  이런 미친 언어가  있나 싶었다가 이제 슬슬 재미를 붙이고 있는 러시아어 공부,

- 30 가까이 공부했지만 여전히 단수 복수 동사 변형 실수를 만발하는 만년 초보 영어 공부,

- 일기 쓰는 시간

- 운동하는 시간


아기가 자는 시간에  일정을 채워 넣자니 시간이 밭아도 너무 밭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소화해보기로 굳게 다짐하고 일과표를 냉장고에  보기에 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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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일과표 작성 3째다.


첫째 날은 엉망진창이었다. 

당연했다. 내가 짜둔 낮잠시간에 아기가  리가 없었다.


낮잠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아기의 일과표를 이야기하며 육이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수면교육이다

안아 재우거나 젖 물려 재우지 말고 자기 잠자리에서 스스로 잠들게 가르쳐한다는 것

안아 재우고 젖 물려 재웠던 내가 아기 수면 교육을 하자니, 일과 표고 뭐고 하루 종일  재우다가 첫째 날이 끝이 났다 


잠드는 걸 배워본 적이 없는 아기가 침대에 강제로 눕혀져 목놓아 울 때는 다시 안아 올려 재우고 싶었지만 유튜브에서 본 육아전문가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아기가 스스로 잠들 기회를 뱍탈하지 마세요"


기회 박탈?!!

모든 부모에게 가장 무서운 어를 피해 가기 위해, 나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둘쨰날은 성과가 있어 보였다.

아기 목욕을 시키고 수유를 하고 나서 트림을 시키는 , 아기가 스르륵 눈을 감았고 침대에 살며시 내려놓았는데 그대로  자주 었다. 

이제 자기도 70 정도 살았다고 밤잠을 5시간 정도  자줬는데, 그동안  일과를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았다.


'어머,  육아 체질인가 봐' 

아기의 일과도  일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벽 수유까지 마치자 나는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 피곤한데 잠마저 오지 않았다.


그리고 3일 차.

다시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꺠워봐도 낮잠을 내리 3시간을 자더니, 저녁 7시부터  10 반까지 10 쪽잠 자고 10 울고, 다시 자는 척하다가 꺼이꺼이 울기를

우리 아기는 무한 반복 중이다.


그렇다.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글은 아기가 10분씩 쪽잠 잘 때 쪼개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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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짜는 것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수백 개의 일과표를 짰다.

그런데 지금처럼 일과표를 지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고3 때도 공부 계획만 짜두고 계획표는 계획표대  돼야 정상이라며 친구들하고 야식을 먹으러 다녔던 나였다.


제발 일과표대로 해다오.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쪽잠 시간 10분을 채우고 이제 살짝씩 씰룩대는 아기 미간을 바라보며 되뇌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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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같으니, 급하게 글을 마무리하면서 잠깐  얘기.

왠지 서양 사람들은 아기가 6개월 정도가 되면 칼같이 따로 재우면서 수면 교육을 대차게 할 것 같아서 러시아 과외 선생님한테 수면교육 비법을 물어봤다.


선생님 왈.

"나도 그냥 젖 먹여서 재웠어. 수면 교육 그거 못할 짓이더라"


아기의 수면 교육은 동서양 차이가 아니라, 그냥 독한 부모가 해내는 것이다.


딴 얘기 두 번째.

쪽쪽이, 다른 말로는 '공갈 젖꼭지' 얘기다.

그간 많은 쪽쪽이를 사서 아기에게 물려보았으나 (아기를 낳은 직후에는 쪽쪽이로 아기 입을 막아두기 싫다며, 괜히 이름에 '공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겠냐며 쪽쪽이 사용을 거부했던 나였으나. 생후 3주 차, 영아산통 늪에 빠지고 나서 바로 쪽쪽이를 사들였다)


단연 1 쪽쪽이는 필립스 '아벤트' 쪽쪽이다.


혹시 아기 쪽쪽이로 방황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아벤트 쪽쪽이 사세요.


그럼 그렇지.

아기가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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