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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버몬트-뉴욕 여행 13

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by Blue Bird
27026848525747440C 쉘번 치즈 농장의 치즈 만드는 곳


버몬트는 메이플 시럽과 치즈로 유명한 곳이다. 메이플 시럽은 이미 스토의 한 슈퍼마켓에서 샀다. 치즈 만드는 곳을 구경해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숙소로 예약한 브래틀 보로로 가기 전에 치즈 농장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치즈 농장은 벌링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쉘번 팜(Shelburne Farm)이다. 이곳에서는 젖소, 염소, 닭 등을 대규모로 방목하며 치즈를 만드는 곳이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동력으로 운행하는 달구지를 타고 들어갔다. 대형 경운기처럼 생겼다.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는 것도 무진장 오랜만이다. 농장을 모두 둘러보는 투어를 하려면 2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이런 달구지를 타고 본 건물이 있는 곳까지만 가서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도 있다. 덜컹덜컹~ 대학생 정도의 나이일까? 젊은 백인 여자가 운전하는 달구지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큰 성 같은 건물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치즈 만드는 과정은 유리창을 통해서 시간대별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냥 과정의 일부를 구경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때로는 뒤집기도 하고 소금 같은 것을 뿌리기도 한다. 치즈가 구경온 사람들에게 재주를 피우는 것도 아니니 그걸 그냥 보고 있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보다는 옆쪽 살아있는 동물들 있는 곳이 재미있다.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됐다는 소가 상당히 크다. 날 때부터 몸이 컸겠지만 어떻게 만 한 살도 안됐는데 저렇게 클 수 있을까? 수십 마리의 닭은 새벽이 아닌데도 소리치고 난리 났다. 낮잠 늘어지게 자고 방금 일어났나 보다. 돼지는 더운지 그늘진 곳 진흙에 누워 꼼짝을 안 한다. 마치 밤새워 일하거나 신나게 놀고 난 후 씩씩거리며 단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염소는 영혼을 보는 듯한 멍한 눈을 하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자 또 하나의 영혼이 왔구나.. 하며 마주 다가온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염소우리로 들어가더니 한 마리 데리고 나왔다. 염소가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니 뒤뚱뒤뚱거린다. 염소젖이 너무 불어서 걷기조차 힘들어한다. 그 직원이 솔로 등을 쓸어주니 염소는 가만히 있는다. 무척 즐기는 듯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얼마나 좋을까? 아하 그래서 이 염소를 데리고 나올 때 보니 다른 염소들이 일제히 부러운 듯 쳐다봤구나. 치즈 만드는 곳으로 돌아와 샘플을 맛봤다. 얼마나 오래됐느냐에 따라 구분해 놓았다. 먹어보니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낫다. 다시 달구지를 타고 출입구로 돌아왔다. 멀리 초원 한가운데에는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저 풀이 소의 위로 들어가서 우유로 나오고, 그 우유가 치즈로 변하는 곳이다. 결국 치즈의 원료는 풀이요, 젖소는 중간 매개체인 셈이다.


세 시간 정도 운전해 내려가니 브래틀보로가 나왔다. Brattleboro는 버몬트의 맨 아래쪽에 있다. 이곳은 보스턴에서 버몬트로 올라갈 때 가볼까 하다가 가지 않았던 곳이다. 어떤 특징이 있는 곳일까? 버몬트를 소개한 여행안내책에는 하루정도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보스턴에서 만났던 J는 우리가 버몬트 쪽으로 갈 것이며 브래틀보로에 들를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그곳에는 집시들이 많다고 했다. 집시는 인도 아리아계 유랑민족을 뜻하지만.... 보통 집시라고 하면 집 없이 유랑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브래틀보로에 예약한 호텔에 일단 체크인했다. 그리고는 바로 나왔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고 호텔 내에서는 특별히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몸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 이 도시를 구경하지 않으면 다시 구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차를 타고 타운을 지나다 보니 길거리에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4~5명 보인다. 한 사람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형광색 옷을 아주 꽉 끼도록 입고 설명하기 힘든 춤을 추고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너울대는 사람 모양의 풍선 같다. 아하, 저 사람들이구나, 집시. 그들을 지나 멋진 다리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다리 앞에 있는 Brattleboro Museum and Art Center에 들어갔다. 폐관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입장료를 내야 하나... 입구에 앉은 뮤지엄 직원에게 "지금 들어갈 수 있냐"라고 묻자 "물론"이라고 한다. 입장료를 받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뮤지엄은 아주 작았다. 한가운데 놓인 풍선 또는 고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놓은 버스가 특이했다. 그 버스를 탈 수도 있었다. 버스 내부에는 역시 고무로 만든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만화처럼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했다.


뮤지엄을 나와 거리를 따라 걸었다. 거리에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다. 오래된 도시 분위기가 풍겼다. 앤틱 한 물건을 파는 상점이 많았다. 그러다가 한식 음식점을 발견했다. 저녁을 먹으려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한식과 일식을 함께 하는 곳이었다. 그러면 분명히 한국사람이 주인일 것이다. 일본 사람이 주인인데 한식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메뉴에서 육개장, 만둣국을 시켰다. 다른 좌석에 앉은 손님들을 보니 거의 백인이었다. 서빙하는 직원도 백인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주방 쪽에 있던 60대 초반쯤 되는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채고 즉시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반가워했다. 식당 주인이다. 아주머니는 30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 와 한국식당을 차렸다고 했다. 한국식당의 불모지에서 메뉴를 하나둘 만들어 내놓다 보니 손님들이 점차 늘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지금도 다른 한식당이 전혀 없고 한국사람들을 보기조차 매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참 용감한 아주머니다. 어떤 사연이 있어 한국사람이 전혀 없는 이곳까지 와 살게 됐을까? 또 어떻게 이런 곳에 한국식당을 차려놓고 백인들을 상대로 장사할 생각을 했을까? 만약 시장조사 같은 것을 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는 30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요즘 미국의 웬만한 도시에 한국식당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브래틀보로 같은 작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보통 미국의 한식당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과 현지에 사는 한인들, 그리고 로컬 미국인들과 관광객들이 손님으로 간다. 미국 북동부의 브래틀보로에는 한국에서 가는 관광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현지에 사는 한인도 거의 없다. 그러니 한식당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로컬 미국인들이 식사할만한 메뉴를 갖춰야 운영이 된다. 또 한식만으로는 이윤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식과 중식을 같이 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한식당이 많은 곳은 그래도 한인이 많이 사는 LA 쪽이나 한인 관광객이 많은 뉴욕 쪽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하와이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텍사스, 버지니아, 조지아 등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미 전역에 한식당들이 있다. 한인이 뜸한 지역에는 한식당이 거의 없거나 몇 시간을 운전해야 찾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미국 내 한식당은 포화상태가 아닌 것 같다. 잘만 운영하면 되는 사업인 듯하다. 물론 미국에서는 요리실력 이외에도 사람 채용하고, 손님 접대하는 일이 한국 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고 어려울 것이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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