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세라는 보스턴에 자신의 Heart를 두고 왔다고 했다. 이제 그 Heart를 찾았을 것이다. 우리는 보스턴에 세라를 두고 왔다. 4년 후에 세라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혼자서 잘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와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야 할 나이, 대학 진학 때가 참 적절한 때인 듯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어린아이만 같던 아이들은 12학년이 되면서 부쩍 성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과연 어떤 점에서 성숙해지는 것이냐고 꼬집어 말하라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여러 면에서 아이가 1년 전과 급격히 달라지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의 품에서 떠난 세라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돌아올까. 아마 아닐 것다. 대학에 있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날개를 펴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를 것이다. 대학원에 가든지, 직업을 잡든지 자신의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한번 도시로 나간 아이가 고향으로 아주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보스턴이 도시고 호놀룰루가 시골이라는 말이 아니다. 경제, 문화, 정치적인 위치가 그렇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이런 경험이 없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친구들은 아마 나보다는 더 세라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그리고 직장까지 다닌 나로서는 서울로 상경한다는 뜻을 그냥 말로만 알고 있다. 체험적으로는 모른다. 무언가를 직접 체험해보는 것과 말로만 아는 것, 또는 이론상으로만 아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머리가 느끼는 것과 가슴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일요일 아침 보스턴 로건 공항에 왔다. 하지만 여기서 비행기를 탈 생각은 아니다. 랜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을 나온 후 보스턴 시내의 백베이(Backbay)로 향했다. 뉴욕에 간다고 그랬는데...? 맞다. 앰트랙(Amtrak)을 예약한 것이다.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1. 항공기 2. 랜트카 3. 앰트랙 4. 버스 5. 택시 6. 자가용. 보스턴이나 뉴욕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여행객으로서는 1번~5번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시간면에서는 항공기가 가장 낫고, 가격 면에서는 버스가 싸고, 기동성 면에서는 랜트카나 택시가 좋을 듯하다. 우리가 앰트랙을 택한 것은 편안함을 산 것이다. 보스턴에서 뉴욕시까지는 앰트랙으로 4시간 걸린다. 항공기를 타면 공항에 들어갔다가 나가야 한다. 또 공항에서 시내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앰트랙은 보스턴 시내에서 맨해튼까지 바로 연결시켜준다. 뉴욕시에 다가가면서 겪어야 하는 교통체증도 없다. 게다가 적당히 덜컹거리는 기차의 편안함도 좋다.
백베이 스테이션은 2년 전 와본 그대로였다. 역사 안에는 여전히 먼지가 많았다. 던킨도너츠 파는 곳도 그대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식사도 못했다. 도넛 두 개와 커피를 사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앰트랙에 타고 자리를 잡았다. 자리는 많았다. 좌석도 넓었다. 비행기로 치면 일등석이다. 조금 있으니 밖에 비가 온다. 천둥번개가 친다.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이패드를 꺼냈다. WiFi가 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연결이 안 된다.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역시 안된다. 이상하다. 포기하고 창밖을 본다. 철로 옆에 나무가 너무 가까이 심어져 있어서 경치를 보기 힘들다. 아직은. 보스턴을 벗어나면 좀 나을까? 눈을 붙인다. 소피도 자는 둥 마는 둥 한다. 인터넷이 안되니 아이패드로 게임을 한다. 검표원이 지나갔다. 잠시 후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정상 WiFi가 안된다고 한다. 어쩐지. 인터넷이 안되니 심심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인터넷은 심심풀이 땅콩이다. 아니 땅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요긴한 시간 때우기 장난감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특히 이렇게 기차라도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경우에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랬겠지. 아냐, 쿨~ 쿨~ 잠 속에 빠졌을 것이다.
기차는 로드 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Providence), 코네티컷의 뉴 해븐(New Heaven)을 지나 뉴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비행기 대신 이걸 타고 온 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났다. 만약 JFK로 도착했다면 또 부산을 떨며 맨해튼으로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그럴 필요 없으니 다행이다. 기차는 이미 맨해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하루만 자고 내일 아침에 호놀룰루로 떠나야 한다. 그러니까 뉴욕 구경은 오늘 오후뿐이다. 뉴욕시는 여러 번 와봤으니 반나절이면 된다. 물론 뉴욕시를 샅샅이 다니려면 일주일도 한 달도 모자라겠지만 이번 여행의 타깃은 뉴욕이 아니다. 뉴욕은 호놀룰루로 돌아가는 길목일 뿐이다. 돌아가는 편도 항공권을 JFK-HNL로 했으니 들렀을 뿐이다. 시간이 반나절밖에 없으니 호텔을 맨해튼에 잡았다. 내일 공항에 가기 편하려면 공항 근방에 잡는 것이 좋겠지만 그럴 경우 맨해튼에서 거리가 멀어 불편하다.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닐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젯밤 비싸기로 소문난 맨해튼에 호텔을 잡았다. 운 좋게도 아주 비싸지 않고 깨끗한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방의 실내면적이 살인적으로 좁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위치다. 면적이 아니다. 예약한 호텔은 소호에 있는 Tribeca Blue. 위치가 소호에 있다고 했는데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것 아닐까. 거기가 거기긴 하지만. '소호'라는 단어와 '차이나타운'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너무나 다르다. 호텔로서는 당연히 소호를 선택할 것이다. 중국 여행객을 타깃으로 하는 호텔이 아니라면.
우리가 앰트랙에서 내린 역은 Penn Station이다. 여기서 호텔이 있는 소호까지는 바로 지하철로 연결된다. 팬 스테이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책에서 봐 둔 오이스터바를 찾다가 포기했다. 역은 너무 넓었다. 여행가방이 크진 않지만 끌고 다닐려니 힘들었다. 이럴게 아니라 호텔에 먼저 가서 가방을 놓고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은 맨해튼을 돌아다녀야 하니 좀 가볍게 다니자. 지하철 노선표를 집중 연구한 끝에 Q라인을 타고 가서 내린 후 한두 블록 정도만 걸으면 도착하겠다 싶었다. 메트로카드를 두 개 사고 Q 노선을 탔다. 그리고 목적지인 Canal 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한참을 헤맸다.
4년 후 세라의 진로는 어떻게 됐을까?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전공은 달라졌다. 입학할 때는 생물학과로 들어갔는데 2학년 때 프리메드(Pre-Med) 과목을 들으면서 의사가 되는 길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깨달았다. 전공을 심리학과로 변경해 졸업했다. 그렇다고 심리학에 특별히 취미가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심리학 전공을 잘 살리려면 박사학위까지 받아야 한다. 그래야 정신과 의사나 교수 등이 가능하다. 세라는 심리학 전공과목을 일찌감치 마친 후 4학년 때는 주로 비즈니스 과목을 들었다. 졸업 후에 뭐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업체 입사에 필요한 과목을 들어야지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4학년 여름방학 때는 파티 플래닝(Party Planning)에 관심이 있다며 관련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 인턴기간에 파트 플래닝이 자신이 생각했던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는 금융회사에서 잠시 인턴을 했다.
졸업 때 관심이 있던 분야는 Project management 였다. 5월 말에 졸업을 하면서 몇몇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은 것 같은데 소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상태로 하와이로 돌아오면 보스턴에서 직장을 구할 기회가 적어 지기 때문에 8월 말까지 보스턴칼리지에서 대학원생 입학전형을 해주며 임시로 학교에서 일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고 3달간 더 보스턴에 머물며 취업문을 두드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8월 말이 지나면서까지 취업이 되지 않자 결국 하와이로 돌아왔다. 취업이 안된 상태에서 비싼 보스턴에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9월에 하와이로 돌아온 세라는 계속해서 보스턴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12월에 보스턴의 광고회사에 취업을 하고 다음 해 1월에 다시 보스턴으로 떠났다. 하는 일은 Project Management라고 했다. 그런 직업을 내가 잘 모르기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라의 설명을 듣자니 광고주와 광고회사 사이에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매니징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 광고회사의 기획자 역할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렇게 세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