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역은 틀리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출구가 틀렸다. 게다가 반대쪽으로 더 걸어갔다. 날씨는 덥고 가방은 무거웠다. 반대쪽으로 가다가 스트릿 이름을 확인한 후에야 반대쪽으로 왔음을 알았다. 뉴욕에서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올 때부터 잘 나와야 하는데.... 일단 잘못 나오면 잘못 간만큼의 두 배를 더 걸어야 한다. 그래도 걸어서 길 반대편으로 간 것을 되돌이키기는 어렵지 않다.
전에 오레곤인가 워싱턴주에서는 주유소에서 개스를 넣고 순간적으로 반대편 하이웨이로 나가는 바람에 30마일 정도를 되짚어 운전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LA에서는 로스앤젤레스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편으로 신나게 운전해 비행기까지 놓친 적도 있다. 그 바람에 공항 근방의 호텔에서 일정에 없던 일정을 하루 더 묵으며 푹 쉰 적이 있다. 당시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항공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그만 반대쪽으로 말리부까지 간 경우다. 그쪽이 맞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냥 달렸다. 아무런 의심도 안 했다. 새벽 고속도로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북쪽으로 상쾌하게 달렸다. 그러다 말리부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바다가 아름답군. 그런데 왜 계속 왼쪽으로 보이는 걸까.....? 음.... 잘못 왔다. 차를 돌려 LAX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호놀룰루행 컨티넨탈 항공은 막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가지 않은 길'을 참으로 궁금해하는 성격인 것 같다. 반대로 가서 반드시 확인하고서야 돌아오는...
어쨌든 빙빙 돌아서 호텔에 도착했다. 오후 세시, 딱 체크인 시간이다. 지금까지 들어가 본 호텔 가운데 방이 제일 작았다. 구조상 방을 하나 만들기가 어려운 크기의 공간을 방 하나로 만들었다. 어지간히 머리를 굴려야 가능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호텔은 깨끗했다. 침대도 아주 편했다. 잠시 누우니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맨해튼에 호텔을 잡은 이유는 오늘 오후와 밤을 맨해튼에서 돌아다니기 위해서다. 그냥 자버리면 내일 일어나자마자 JFK로 가야 한다. 샤워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34번가 쪽으로 갔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기 위해서다. 전에 갔었던 만두 바에 들어가 만두와 맥주, 비빔밥 등으로 요기했다. 소피는 오피스 동료직원들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사러 Trader Joe's에 가자고 한다. 하와이에는 이 매장이 없는데 맛있는 과자류를 여기서 판다는 것이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 그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이탈리안 음식과 식재료를 파는 시장 같은 곳에 들렀다. 마치 한국의 시장처럼 곳곳에 간이음식점이 있고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이 있었다. 마치 이탈리아에 온 듯하다. 배가 고팠으면 여기서 파스타 같은 것을 먹었을 테지만 이미 만두로 배부른 상태다. 파스타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트래이더 조에는 쇼핑하는 사람들이 밀려다녔다. 지금까지 들어가 본 슈퍼마켓 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계산대로 이어진 줄이 매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수십 미터 이어졌다. 그 줄 때문에 물건을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계산대 앞에는 몇 번 매장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직원까지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산대에서의 진행은 빠르게 되고 있었다. 계산대가 30개가 넘었는데 풀가동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은 더욱 늘고 있었다.
트레이더 조에서 산 과자들을 큰 샤핑백에 담아 들고 타임스퀘어 쪽으로 걸었다. 타임스퀘어에도 무진장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빛을 잃어갈수록 거리는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요란한 네온 아래에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었던 우리는 타임스퀘어 도로 가운데에서 고층빌딩의 네온을 올려다봤다. 뮤지컬을 하나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표를 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심심치는 않지만 그렇게 서있으려니 왜 여기 이렇게 서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갔었던 더 뷰(The View)가 생각났다. 메리옷 호텔 건물 꼭대기에 있던 레스토랑이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여기서 세라는 치즈 뷔페를, 소피와 나는 와인 한 병을 시킨 적이 있었다. 세라는 아깝게도 치즈를 몇 개 먹다가 먹지 않았고, 와인만 마시던 우리는 세라가 남긴 치즈를 한 두 개 맛보기만 했던 곳이다. 그러고서도 100불 넘게 나온 곳이다. 그러고 나서 건너편 맥도널드에서 2불인가 했던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를 먹었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 건물에 들어서자 소피는 거기는 너무 비싸다고 한다. 하긴 그렇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좀 앉아서 맥주 한 잔 할 곳 없을까.. 생각하며 기웃거린 끝에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꼭대기층은 아니지만 역시 높은 층에 라운지가 있는 것이다. 그곳으로 올라가니 예상했던 그대로, 창문 밖으로 타임스퀘어 인파를 내려다보면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스포츠바였다. 마침 창가에 앉았던 백인 노부부가 자기들은 이제 간다며 우리 보고 자기들 앉은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그렇게 운 좋게 창가에 자리를 잡고 새무얼 아담스 두 잔을 시켰다. 목마르던 차에 마시는 새무얼 라거....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저 아래 세상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머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파,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온 인파. 왜 여기에 몰리는 걸까?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다음날 JFK까지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물어본 결과 가능은 한데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택시를 타면 30분도 안 걸린다고 한다. 교통비를 절약하려면 지하철이 좋다. 하지만 가방을 끌고 중간에 갈아타면서 오래갈 생각을 하니 돈을 더 쓰더라도 편하게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침에 프런트 데스크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려갔더니 웬 고급 승용차가 와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해 타면서 기사에게 물으니 이건 택시가 아니라 프라이빗 라이드라고 한다. 프라이빗 라이드는 공항까지 65달러라고 하던데... 내릴까 하다가 그만뒀다. 차는 이미 출발한 상태고 10~20불 때문에 아침부터 언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당신도 돈 벌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을 거다. 공항 갔다 오면 한 시간 만에 65불 벌 것이란 기대를 하고 왔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집에는 아이가 있을 것이고,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을 것이다. 그럼 내가 10불~ 20불로 그 아이에게 점심 한 끼 샀다고 치면 된다. 편하게 생각하자. 그냥 가기로 했다. 내릴 때 팁을 더 줬다. 혹시 아이가 하나 더 있을지 모르니까.
JFK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아침을 공항에서 먹었다. 다행히 하와이안항공은 점심을 준다. 장시간 여행을 시작하려니 벌써부터 지겹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도 10시간~11시간이 지나면 내 몸은 호놀룰루에 있겠지. 지겨워도 시간은 가겠지. 세라는 보스턴에서 잘 지내겠지. 하와이안 항공 기내에 오르니 마음은 이미 하와이에 도착한 듯했다.
97년에 하와이 대학원으로 유학 온 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와이에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유학 오기 전에 하와이에 여행으로 두 번 와본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때의 내가 직접 와본 하와이는 천국이었다. 하와이에서는 무엇을 하며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경쟁 속에서 치어 살았던 서울의 직장생활과 너무나 비교되는 하와이였다. 그래서 별다른 준비 없이 일단 하와이로 가자는 생각을 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대학원으로 온 것이고, 이왕 온 김에 박사학위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이미 몇년 한 후라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데리고 왔으니 그냥 나만 좋다고 벌어 놓은 것 까먹기만 하면서 공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하와이에 살게 된 것이다. 얻은 게 있으니 잃은 것도 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사까지만 졸업하고 공부는 그만두었다. 박사까지 했더라면 내 인생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또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본다.
하와이에 살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가 지나면서는 뉴욕으로 이주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당시는 영주권을 받은 상태라 굳이 하와이에서만 살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뉴욕을 생각했었다. 당시 생각은 다니던 회사의 뉴욕지점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MBA를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그때 소피와 세라를 데리고 뉴욕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또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고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항상 선택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