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지금 회사 내 컴퓨터의 화면보호기는 피톡스 맨션의 외관으로 꾸며져 있다. 위의 사진이 피톡스 맨션 내부 모습이다. 세계 최대의 독립서점 파월스 북스토어에서 나와 시내 파이어니어 플라자에서 점심을 먹고 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피톡의 풀네임은 Henry Lewis Pittock. 피톡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오레곤 신문 오레고니언을 100여 년 전 주간신문일 때 인수, 일간신문으로 발행한 신문 발행인이다. 발행인 이외에도 부동산, 은행, 철도, 선박 등 그가 손대지 않은 사업이 거의 없는 말하자면 150여 년 전 오레곤의 최대의 사업가다.
피톡스 하우스는 그가 노년에 포틀랜드에서도 가장 전망 좋은 곳을 골라 지은 아름다운 저택이고, 후에 손자가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것을 시정부가 구입, 수리, 보존하고 있다. 피톡스 하우스에 들어가며 입장료를 받는 직원에게 "So, who is pittock?"이라고 물었다. 사실은 입장료가 좀 비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고 대신 피톡이 누구길래..."라는 뉘앙스를 담은 나만의 간접화법이었다. 물론 듣는 사람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겠지만... 잠시 생각하던 백인 할머니는 (당황하는 기색 역력.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 오레곤 신문을 만든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입장료가 1인당 7달러. 집 구경하는데 7달러나? 그래도 구경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 우리 앞의 두 명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됐는지 입장을 하지 않고 밖에서 유리를 통해 집 안을 살짝살짝 구경한다. 잘 안보일텐테...
들어가니 정말 잘해놨다. 유렵 어느 나라 대저택에 온 듯. 침실, 거실, 서재, 욕실, 도서관, 응접실... 게다가 피폭 부부가 직접 사용했는지 아니면 그냥 그 시절 물건들을 기부받아 전시해 놓은 것인지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100여 년 전 사용하던 물건들도 흥미롭게 전시돼 있다. 집이 워낙 커서 인지 인터폰이 곳곳에 걸려있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 얼굴처럼 생긴 옛날식 인터폰.
"식사 준비 다 됐으니 식당으로 어서 오셔요"
"알겠소, 애들에게도 밥 먹으라고 알리시오"
피톡 부인이든, 일하는 아줌마든 식사 준비가 되면 인터폰을 통해 이렇게 알리지 않았을까? 아닌가? 하긴 배고프면 식당으로 내려가 이것저것 그냥 찾아서 먹었을지도 모르지. 탁 트인 시야, 포틀랜드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 이 여름에도 눈 덮인 후드산이 보인다. 피톡이 이 집을 짓고 이사 온 것이 나이 80세라고 하는데... 여기서 포틀랜드를 내려다보면서, 후드산을 쳐다보면서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래, 나는 지난 80년을 참 행복하게 잘 살았어....' 이렇게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여생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 인생이 너무 짧아, 나에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이렇게 아쉬워했을까? 그러고 보면 사람의 수명만큼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가진 놈이나 못 가진 놈이다, 재주가 많은 놈이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놈이나, 많이 배운 놈이나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놈이나,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해진 한계수명이 있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 정해진 수명의 한계 내에서 정말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돕고, 나누고, 베풀고.... 이래야 하지 않을까. 살면 얼마나 산다고.
피톡스 하우스를 떠나 비버튼에 들렀다. 소피는 조수석에서 다시 잠이 들고. 비버튼에 들른 이유는 한인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인데 한인 슈퍼마켓을 들러보니 한인사회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아직은 한인 인구가 적더라도 이렇게 슈퍼마켓이 일단 자리 잡았으니 앞으로 한인들이 늘겠지. 집들 내부 구경은 못했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였다. 아주 전형적인 주택가, 이런 집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포틀랜드 시내까지 매일 출퇴근하려면 좀 멀겠다.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낫겠다. 세라가 좋아하는 개도 키울 수 있겠다.... 그렇게 그냥 상상만 실컷 했다.
비버튼 어느 쇼핑몰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입은 조용한데 손짓이 바쁘다. 정기 농아 모임이 여기서 있나 보다. 스타벅스 매장 안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해서 매장의 2/3를 차지한다. 소피와 나, 그리고 농아가 아닌 다른 손님들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커피를 마신다. 그들에게 방해될까 봐 그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얘기를 나눈다. 날 때부터든, 사고를 당했듯, 질병에 걸려 그렇게 됐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에서는 그들을 불쌍한 눈초리로 보지 않고 더 배려해준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간혹 그런 배려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이용하려 드는 장애자들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건 일부분이니까.
8일간 빌린 랜트카를 오늘 반납해야 한다. 그동안 잘 타고 다녔다. 차체가 묵직하고, 비 오면 윈도 브러시가 자동으로 착착 움직이고, 어두워지면 헤드라이트가 탁 들어오고, 버튼 하나면 의자가 뜨끈뜨끈 해지는 크라이슬러 300. 랜트 기간은 내일 아침이지만 내일은 다닐 시간이 없으므로 오늘 공항에서 반납할 계획이다. 랜트카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들어간 후 우리가 마지막 묵을 홀리데이 인에 전화해 셔틀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밤 우리 예약이 취소된 상태라고 했다. 이게 웬 소리?
"분명히 이틀을 예약했고, 두 번째 날 하루를 취소했으며, 호텔 직원에게 확인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호텔 직원은 어제는 no show로 크레딧카드 결제됐고, 오늘은 예약이 없으며, 지금 빈 방도 없는 상태라고. 마지막 날 왜 꼬이나... 일단 셔틀은 보내겠으며, 다른 호텔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셔틀을 타고 호텔에 도착, 직원의 도움으로 한 블록 떨어진 메리엇호텔에 들었다. 호텔 등급은 홀리데이 인보다 높은 듯. 일단은 그렇게 호텔룸을 잡고, 짐을 풀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상황으로 봐서는 호텔 직원이 이틀 중 우리가 요청한 첫 번째 밤을 취소 하지 않고 두 번째 밤을 취소한 듯했다. 그러니 첫날을 no show로 처리하고 이틀째는 예약 취소가 됐지. 다음날 공항에서 전화로 호텔 매니저와 입씨름을 하다가 그만뒀다. 호텔 측이 잘못 없다고 계속 우기는데 어쩌랴. 일단 끊자. 나중에 크레딧 카드회사에 이의를 신청하자.
다음날 아침, 마지막 남은 우리의 양식으로 아침을 잘 먹고, 짐을 쌌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했던 포틀랜드 공항으로 다시 떠났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영원히 이곳은 못 올 수도 있겠지. 인연이 된다면 앞으로도 여러 번 올 수도 있겠고. 어찌 됐든, 레니어 산, 올림픽산, 시애틀의 B&B, 피톡스 하우스.... 이들에 대한 내 첫인상, 지금의 기억은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함께 하리라.
지난 여행기를 읽다 보면 사람의 생각은 세월이 지나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12년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오래 지속되는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서서히 변하거나 또는 변하지 않는가 보다. 오랜만에 옛날 친구들을 만나보면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데,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예전에 알았던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겉은 변했어도 속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나이 들면서 조금 유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모나고, 날카롭고, 급하던 성격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깎이고, 무뎌지고, 느긋해지는 것 같다. 각진 얼굴들이 나이 들면서 네모 모양으로 모두 비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88세가 되신 어느 의사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내게 하신 말이 생각난다.
"인생 별거 아니에요"
맞다. 인생 별거 아니다.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주춤거리기엔 인생은 너무 짧은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