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스피어릿 마운틴 카지노 호텔은 컨티넨탈 브랙퍼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어제 프런트 직원이 아침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솔깃했었다. 요즘 호텔에서 컨티낸탈식 브랙퍼스트라고 하면 머핀이나 베이글, 오렌지주스, 우유, 시리얼에 바나나와 사과, 커피 정도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식당에 가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고 그것을 투숙객들이 가져다 먹는 식이다. 카지노 호텔에서 주는 컨티넨탈 브랙퍼스트라고 해서 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북적거렸다. 백인 노인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짐을 꾸려 포틀랜드로 향했다. 살렘과 유진으로 들렀다 가려던 생각을 접었다. 이제 여행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쪽을 들렀다가는 포틀랜드를 거의 못 보고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없다. 갈 곳은 많은데... 포틀랜드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로즈가든이다. 포틀랜드의 별칭이 '장미의 도시' 아닌가. 그러면 장미를 우선적으로 구경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하나가 색다르고 아름다운 장미가 무진장 피어있다. 포틀랜드 로즈가든의 정식 명칭은 International Rose Test Garden이다. 그냥 장미가 있는 정원이 아니라 장미를 테스트하는 곳이다. 여기는 7천여 그루의 장미가 있는데 종류가 550종. 세계의 모든 장미가 다 모인, 말하자면 장미의 국제연합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이곳으로 장미를 보내오고 여기서는 그 장미를 교배해 새로운 종, 새로운 색의 장미를 테스트해본다. 분홍색, 황금색, 발그스레 노르스름한 색.... 우리의 소피는 아직도 동료에게 줄 쇼핑이 안 끝난 모양이다. 장미를 한참 구경하다가 로즈가든에 하나 있는 선물점에 쏙~ 들어간다. 거기서 욕실에서 쓰는 장미꽃잎으로 만든 비누 같은 것 등 몇 가지를 샀다. 그리고서 하는 말,
"어휴~ 이제 다 샀다"
"에효~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로즈가든에서 다운타운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런데 여느 다운타운처럼 아주 복잡했고,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몇 빌딩 주차장이 'All day $10" 등을 써놓은 것이 보이지만 나는 온종일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차를 세워놓는 장소가 다운타운에서도 중심가여야 하는 것. 빙글빙글 돌다가 시간당 $1.99이라고 써놓은 빌딩 주차장이 있길래 들어갔다. 주차해놓고 나와보니 힐튼호텔 주차장이었다. 비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화장실도 급한데. 화장실도 들르고, 호텔 로비 푹신푹신한 소파에 앉아 좀 쉬면서 시내지도를 꼼꼼히 보며 갈 곳을 살펴봤다.
힐튼호텔에서 한두 블록 내려가니 파이어니어 스퀘어가 나왔다. 도심의 탁 트인 공간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군데군데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젊은이... 가만 나는 이제 '젊은이'인가 아닌가? 언뜻 보면 젊은이, 자세히 보면 가끔 흰머리와 눈가에 주름살이 보이는 40대 초반의.... 으악 벌써 40대. 하지만 아직 젊게 살고 있다. 광장을 지나 목표지점을 찾는데 애먹었다. GPS는 차에 두고 걸어가니 덥고, 힘들고. 그러다 목표지점을 찾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독립 서점, 파월스 북스토어. (Powell's Bookstore)
이 서점은 관광안내책자에도 나와 있는 곳으로 한 블락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블루룸, 퍼플 룸... 이런 식으로 룸과 룸으로 서점 안이 사방팔방 연결됐다.
"이거 이 안에서 사람 잊어먹기 십상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차에 방송으로 사람 찾는 소리가 연달아 나온다. 누구누구 고객은 구누구누 고객이 기다리고 있으니 노고노고룸으로 지금 오라는 방송. 룸이 하도 많으니 상봉도 만만치 않겠다. 맨꼭대기에 가보니 희귀 서적들이 있길래 들어가 보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초판, 에드가 엘런 포우의 책 초판... 그 밖의 책 제목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이런 책들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누리끼리 변색된 책도 대문호의 초판은 유명한 것이로구나. 원가격 몇 달러, 몇 센트짜리가 몇백 달러, 몇천 달러를 호가하고 있었다.
오레곤의 포틀랜드에 가기 전에는 그 도시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워싱턴-오레곤 여행을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것은 항공기를 알아보다가 결정한 것이었다. 워싱턴주의 시애틀과 그 주변을 위주로 여행을 갈 생각이었는데 그 당시 호놀룰루-포틀랜드 노선이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등으로 포틀랜드를 좀 찾아본 결과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간 포틀랜드는 생각보다 멋진 도시였다. 도시는 세련됐고, 젊은 기운이 풍겨 나는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