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떠나는 날이다. 유럽을 떠나는 날이다. 가는 길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버진 애틀랜틱으로 가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루 숙박한다. 다음날 라스베이거스에서 호놀룰루까지는 하와이안 항공으로 가는 일정이다. 런던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직항으로 11시간 정도 걸린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호놀룰루까지는 6시간 거리다. 세라는 버진 애틀랜틱으로 런던에서 보스턴까지 직항으로 7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소피와 내가 타는 라스베이거스행 항공기 시간이 먼저다. 소피와 나는 오후 12시 40분 항공기, 세라는 밤 8시 10분 비행기다. 공항에 10시 40분까지 도착하려면 10시쯤 나가면 된다.
길이 막히는 것을 감안해서 9시 30분쯤에 출발했다. 히드로 공항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택시로 호텔에서 공항까지 가는 방법, 우버로 가는 방법, 페딩턴 역까지 택시나 우버로 간 후, 거기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로 공항까지 가는 방법 등이다. 시간적으로는 페딩턴까지 가서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는 게 제일 빠를 것 같다. 우리는 런던으로 올 때 히드로 익스프레스 티켓을 이미 왕복으로 샀기 때문에 호텔-페딩턴 역-히드로 공항의 순서로 가기로 했다. 우버를 불러서 페딩턴 역으로 가는데 기사가 공항으로 가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여기서는 시내가 너무 막히기 때문에 공항으로 가는 게 더 빠르다고 한다. 히드로 익스프레스 티켓을 끊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그럼 할 수 없이 페딩턴으로 가야겠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런던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머니까 15분이면 도착하는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빠를 것 같다. 하지만 호텔에서 페딩턴 역까지 가는 시간과 갈아타는 시간, 시내 교통체증을 생각한다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호텔에서 페딩턴 역까지 구글맵으로 5분 거리인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하기 두 시간 전이 채 못된다. 더 늦게 출발했다가는 또 허겁지겁 서두를 뻔했다. 쓰다 남은 오이스터 카드를 환불받을 려고 했는데, 얼마 남지도 않았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하지만 출국 수속을 마치고 하는 세금 환급 시간은 된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스와로브스키에서 산 목걸이의 세금을 환급하는 곳으로 가서 환급받았다. 여기도 긴 줄은 아니지만 열 명 정도가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늦었다면 이것도 못할 뻔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받을 수 있는 것을 안 받고 그냥 가면 돈을 휴지통에 그냥 버리는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 버진 애틀랜틱은 만석이다. 옆자리에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탔는데 앞뒤로 일행들이 많은 것 같다. 카지노 게임 개발하는 일을 하는데 라스 베가스에서 컨벤션이 있어서 참가하러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동유럽 계통인데 자신은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런던에서 어디 갔었냐고 하길래 몇 군데 말해주니, 자신도 테이트 모던을 참 좋아한다고 한다. 자기는 지금 일 때문에 라스 베가스에 가는 건데, 우리처럼 일이 아닌 순수한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한다. 너도 나이 더 먹으면 그럴 기회가 더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다.
항공기는 어느덧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스트립의 엘라라 (Elara) 도착했다. 유럽에 있다가 미국에 도착하니 모든 게 크고 넓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자유분방했다.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해졌다. 습관이 참 무섭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미국에 오면 편해진다. 엘라라에서는 제일 작은 스튜디오를 예약했는데도 막상 방에 들어가 보니 상당히 크다. 큰 킹 베드가 작아 보일 정도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밖으로 나갔다.
라스베이거스는 여러 번 왔었기에 익숙하다. 엘라라와 연결된 미러클 마일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쇼핑몰과 연결된 한식당을 발견했다. 새로 생긴 식당이다. 들어가니 식당 규모가 엄청 컸다. 해장국을 시켰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갈만한 한국식당이 거의 없어서 불편했었는데 이 식당이 생겨서 좋다. 수요가 있으니 식당도 생겼겠지. 식사를 마치고 스트립을 걸었다. 호텔도 구경하고, 카지노도 구경하고, 겜블도 했다. 겜블은 그냥 재미 삼아 기계에서만 했다. 카지노에 담배냄새가 없었으면 참 좋은데 개선되지 않는 것을 보면 겜블과 담배를 떼어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할 리는 없을 텐데. 그래도 담배 피우는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라면 금연 카지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벨라지오 호텔의 로비에 있는 정원은 주제에 따라 디자인이 바뀌므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이번엔 중국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디자인이다. 호텔과 카지노를 몇 군데 더 들렀다가 쇼핑몰로 돌아왔다. 소피가 회사 동료에게 줄 선물을 몇 개 사야 한다고 한다. 요즘도 여행 가면 선물을 사가나 하지만 소피는 항상 뭔가를 산다. 비싼 건 아니지만 성의표시다. 그래.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다.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에 갔다. 물에 들어가니 의외로 상당히 춥다.
다음날 아침. 호놀룰루로 출발하는 날이다. 오후에 출발하니 아직도 시간이 많다. 호텔에 계속 있으면 할 일도 없다. 출발하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려면 역시 카지노 만한 게 없다. 돈만 많이 쓰지 않는다면 카지노는 재미있다. 뭔가에 맞은 듯한 땡땡땡땡~ 나는 소리에 결과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버튼을 누르면서 기대에 부풀기도 한다. 어제 조금 잃었고, 아침에 조금 땄다. 이래저래 본전이다. 아침은 어제 갔던 한식집에 또 갔다. 옆 테이블에는 신혼부부인 듯한 젊은 한국인 커플이 앉아있다. 소주병도 보인다. 베가스니까.
짐을 챙겨 택시로 라스 베가스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마쳤는데 배가 좀 고프다. 프라이어리티 카드가 있다. 공항 라운지 카드다. 앱으로 찾아보니 더 클럽(The Club)이라는 라운지가 있다. 이것저것 그래도 요깃거리가 좀 있다. 칵테일 한 잔, 맥주 두 병 마시니 벌써 취기가 올라온다. 너무 많이 마시면 항공기 내에서 힘드니 그만 마셔야겠다. 지난 2주간의 유럽 여행을 돌아본다. 유럽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두 번 다 세라도 데리고 갔다. 매년 한 번씩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다. 샌프란시스코부터 시작해 미국 서부와 동부, 알래스카, 캐나다 록키, 그리고 이태리, 터키, 체코, 영국까지. 앞으로도 이런 여행을 오래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는 여행의 기억과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