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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오레곤 여행 5

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by Blue Bird

어제저녁 B&B로 들어오면서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LA 섬머스쿨에 3주간 가있는 세라의 명령, 옷을 사서 부쳐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LA에 갔을 때는 춥다고 해서 두꺼운 재킷과 이불을 보냈는데, 그 재킷을 받기도 전에 이젠 덥다며 얇은 옷들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냥 있는 걸로 버티라고 하지..." 내 말.

"그래도 애가 필요하다는데..." 소피의 말.

소피는 아이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포기해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얻는 한 가지 교훈. 엄마에게는 남편보다 아이가 더 중요한 법이다. 여자는 아내일 때보다 엄마일 때 더 강하다. 남자는?


어제 낮에 들렀던 '유덥'(UW) 앞에서도 나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아이에게 보내줄 옷가게를 돌아다녔던 소피. 묻고 물어 유덥에서 멀지 않은 쇼핑몰 유니버시티 몰에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은 컨셉이 안 맞는다. 센잔, 빅토리아 시크릿... 이런 브랜드가 널렸다. 만만한 갭에 들어가도 적당한 옷이 없었다. 이러다간 여행이 제대로 안 되겠다 싶어 나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코스코로 가자"

아이의 옷을 코스코에서 싸게 산 경험이 많아 여기서도 코스코에 가면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GPS에 코스코를 입력하니 '커크랜드' (Kirkland)가 나온다. 가만, 커크랜드면 코스코 브랜드잖아. 그럼 코스코 아냐? 그렇게 찾아가면서도 한 가지 켕기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거 코스코 매장이 아니라 본사가 아닐까? 코스코 본사가 워싱턴주에 있다던데... 들어가는 길도 주택가가 늘어서 있는 것이 수상쩍었다. 20마일 정도 가다가 짠~ 하고 나타난 코스코 매장. 코스코 매장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다행히도 GPS는 코스코 매장을 찾아주었다. 문 닫기 20분 전, 시간은 충분했다. 여기서 한 가지 모르던 사실을 알았다. 샴푸, 과자 이런 것들에 붙어있던 코스코 상표 커크랜드가 이 동네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코스코 본사가 이 근방에 있는가 보다. 마침내 코스코에서 아이에게 부칠 옷을 몇 가지 샀다. 그리고 B&B로 돌아왔던 것이 어제 일이다.


그다음 날, 여행을 시작한 지 다섯째 날이다. 오늘은 이틀간 묵었던 B&B를 떠나는 날이기도 하다. 당장 오늘부터는 잠자리를 그날그날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호텔은 마지막 날 이틀만 포틀랜드 공항 인근 할러데이 인을 잡아놓은 것밖에 없다. 아침에 잡은 오늘 일정은 시애틀 아래쪽 한인들이 많이 사는 밸뷰와 타코마에 들러서 워싱턴주의 수도 올림피아까지 간 후 올림픽산 쪽으로 가는 것이다. 잠잘 곳은 갈 때까지 가서 구하는 일정. 가능하면 올림픽산으로 쭉 올라가서 솔덕 (Sol Duc Hot Spring) 온천까지 가는 것이다. 거기까지 못 가면 그전에 하루 자고 가면 되고. 문득 이런 여행이 참 좋다고 느껴진다. 호텔을 예약해서 죽자 사자 거기까지 가야 하는 부담감이 없다. 해질듯하면 GPS로 주변 호텔이나 B&B를 찾아 전화로 시설이나 가격 이런 것 물어본 후, 딱 한마디만 하면 되니까.

"가자 방자야!" (GPS가 갑자기 방자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밸뷰는 한국으로 따지면 강남쯤 되는 듯했다. 시애틀 시내가 광화문이라면 그 근방에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도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시애틀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 그렇지 않은데..."라고 딴지를 걸 수도 있다. 그래도 내 느낌은 그랬다. 고급스러운 집들이 있는 주택가이면서 적당한 상권도 형성되어 있는. 밸뷰에서는 특별한 볼일이 없었다. 우체국을 찾아 어제 산 옷을 세라에게 보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근데 우체국에 늘어선 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을 것은 예상했지만 이러다가 30분~ 1시간 정도 그냥 날리겠다 싶었다. 미국의 우체국은 이렇게 항상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 언 듯 이해가 안 간다. Fedex도 있고, UPS도 있는데, 뭔가를 부치는 사람이 항상 많다. 땅이 넓어서 그럴 거야... 땅 덩이가... 다행히 셀프코너에 있는 기계를 이용해 줄을 안 서고 부칠 수 있었다. 우체국마다 은행의 ATM처럼 고객이 스스로 무게 재고, 우표 출력해서 통에 넣고 오는 기계가 있는데 아직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다. 우체국 직원이 있는 창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지만 이 기계 앞에는 사람이 없다. 아직 사람들이 이 기계사용에 익숙하지 못하기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옷을 부치고 타코마로 향했다.


타코마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한인타운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한인들이 어떻게 사나 구경도 하고, 한국음식도 먹고...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 몇몇 간판이 한글로 되어있는 곳이 나타났고, 그곳이 한인타운 같았다. 미국에서 한인타운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규모 큰 LA를 제외하고는. 몇몇 한글간판으로 그곳이 한인타운의 일부라고 생가할 수는 있지만 그곳이 중심인지, 변두리인지 또 다른 곳에 더 큰 한인타운 중심이 있는지, 여행자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럴 땐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최고다. 그래서 한 한식 음식점에 들어가서 물어봤다.

"저기 저 앞 두 번째 교차로에서 좌 해전해서 아래로 쭉 내려가면 사우스 타코만데 거기 한국식당 많아요"

알듯 모를 듯... 설명대로 찾아가니 과연 한국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부동산, 슈퍼, 병원, 식당... 한글 간판들.

우선 순두부집에 들어가 순두부로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밥을 긁어내고 그 뚝배기에 물 부어 숭늉까지 만들어서. 역시 한국사람은 한식을 먹어야....

"타코마 벗어나면 여행 끝날 때까지 한국타운이 없으니까 여기서 먹을 것 사야 될 걸"

소피의 지적이 날카롭다. 물론 나도 생각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같이 오래 살다 보면 말은 안 해도 같은 순간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같은 순간에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순두부집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햇반, 김치, 고추장, 컵라면, 김... 이런 것 사 가지고 나와서 워싱턴의 수도 올림피아로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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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워싱턴 D.C. 와 워싱턴주가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많다. 워싱턴 D.C. 는 미 동부에 있는 미국의 수도이고 (어~ 뉴욕 아니었어? 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듯싶다) 워싱턴주는 북서부에 있는 50개 주 가운데 하나다. 그러면 워싱톤주의 수도는? 시애틀이 아니다. 올림피아(Olympia)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는 그 주에서 가장 큰 도시와 수도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사실. 워싱턴주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에서는 시애틀이 가장 큰 도시지만 수도는 그 아래쪽에 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올림피아로 가는 날이다. 올림피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큰 워싱턴주의 작은 행정도시'라고 할까. 캐피톨 캠퍼스라고 하는 행정관청이 모여있는 곳의 첫인상은 좋았다. 넓고 푸른 잔디와 분수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건물들. 워낙 넓어서 캐피톨 캠퍼스를 안내하는 방문객센터. 그곳에 들러서 몇 가지 물어봤다.

"주지사 사무실은 어느 곳에 있지요?"

친절한 백인 할아버지가 보던 컴퓨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일어나 대답한다.

"바로 저기 저 앞 건물이지요"

"거기 들어가서 한번 둘러볼 수 있나요? 물론 주지사를 만날 건 아니고요"

"물론이죠!"


캐피톨 캠퍼스에서도 지붕이 돔으로 된 아름다운 건물로 들어서면서 감탄했다. 건물 내부가 반들반들한 대리석, 높은 천장에는 금으로 장식한 듯 아름다운 샹들리에, 상하원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의사당, 휴게실, 주지사 사무실, 부지사 사무실. 고풍스러운 건물은 꼭 실제로 일하지는 않는 박물관 같은데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태연히(?) 일하고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이어 내려오는 이 건물에서 지금 이 시대에 주지사로서, 상하원 의원으로서, 또는 한 공무원으로서 일하고 있는 그들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일반 고층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무덤덤할까?


넓은 워싱톤주를 운영하는 스테이트 캐피톨을 뒤로하고 미국 북서부의 맨 꼭대기 지점, 강 하나를 사이로 캐나다와 마주 보고 있는 곳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이 길은 올림픽산을 왼쪽으로 끼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코스다. 미국의 땅이 넓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가도 가도 좌우로 전나무 (fir)가 끝이 없다. 가도 가도 똑같은 길, 군데군데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목재를 채취해 집을 짓고, 건물을 짓는 것 같았다. 마주오는 대형 트럭에는 사람 키의 열 배, 스무 배 정도 되는 크기의 나무들이 실려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몇몇 곳에서 도로 재포장 공사를 하고 있다. 한쪽 교통을 막고 5분~ 10분 기다리게 했다가 맞은편 차들을 보내고, 다시 반대편 차들을 보내고 이런 식으로. 이 길... 처음에 이 길을 건설한 것도 대단하고, 이 길을 재포장하는 사람들도 대단하고, 그 끝없는 길을 수십 시간씩 운전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대단하고... 퍼시픽 하이웨이 101번 도로는 올림피아에서 북쪽으로 갈 때는 101 north였다가, 맨 꼭대기까지 가면 101 west로 바뀐 후 서쪽에 다다르면 101 south로 바뀐다. 나는 위로 올라가는 중이니 계속 101 north를 타고 101 west가 나올 때까지 가는 거다. 하지만 지겹게 가도 계속 north다. 결국 north 거의 끝부분에 다다르면서 잠시 쉬어가기 위해 올림피아 반도 동쪽 끝으로 빠졌다. 여행안내 책자를 보면서 가는 길목에 괜찮다 싶은 곳이 있으면 들러서 구경하고 가는 중이라 타운젠드란 곳에 들르기로 했다. 그냥 지나가면 언제 다시 여기 올 것인가. 그렇게 들른 타운젠드에 대한 느낌 '아 미국의 땅끝마을에 왔구나' 사실 여기에 오려면 시애틀에서 섬과 섬으로 연결 도로를 따라 옆쪽으로 오다가 페리를 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림피아에서 반나절 이상 올라와서 반도의 끝까지 왔으니 그런 느낌이 안 드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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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한 여름인데도 바람이 세게 불어 추웠고,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 또는 코트를 입고 다녔다. 잠시 피로를 풀 겸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주문하는 사람들,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백인이고 같은 사람들인데 뭔가 약간 달라 보였다. 시애틀 사람들에게서 풍기던 도시 냄새가 사라지고, 한국의 농어촌 주민 같은 분위기. 이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참 이상할 거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작은 눈, 작은 키. 이런 느낌 아닐까? 마을을 잠시 둘러보고 빠져나올까 하다가 (마을에 들어갈 땐 그런 생각으로 갔다) 더 운전하기가 지겹다는 생각이 밀려오자 그냥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두 군데 전화로 가격과 시설을 물어본 뒤 좀 더 싼 곳으로 정했다. 어제 돈을 많이 쓴 것 같으니 오늘은 아껴야지... 거기서 또 10달러를 깎아서 79달러. 그렇게 들어간 곳은 보통 모텔 수준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곳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하룻밤 지내기에는 상관없었다. 그래도 풀장과 월풀이 있었는데, 추운 곳이어서 그런지 별개의 건물로 지어진 실내 수영장이었다. 내부가 나무로 멋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수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수영할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맥주한장 마시고 그냥 자기로 했다.


체크인할 때 보니 직원이 한인이다.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됐냐고 물어보니 친척이 하는 것으로 봐주고 있다고. 그러면서 주변의 관광지 몇 곳을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 구미를 당기는 곳이 폴스보 (Poulsbo)라는 곳이었는데, 이 길은 가던 길을 약간 되돌아 가는 길이었지만 안내책자에도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있기에 다음날 들러보기로 했다. 예정에도 없던 여행. 때로는 이런 의외의 스케줄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삶에서 여행이 작은 쉼표요, 일탈이라면, 예정된 여행에서 또 한 번의 여행을 떠나는 작은 여행은 여행의 조미료요, 쉼표 안에 감춰져 있던 또 하나의 작은 쉼표 아닌가.




미국을 자동차로 운전하며 여행하다 보면 정말 넓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에 갔던 워싱턴주에서도 그렇게 느꼈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유타와 애리조나로 갈 때도 그랬다.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까지 갈 때는 12시간 정도 운전했다. 알래스카에서는 드날리 국립공원 쪽 하이웨이로 가면 7~8시간 정도면 갈 수도 있지만, 경치 좋은 곳을 구경하며 가느라 그렇게 오래 걸렸다. 동부의 보스턴 위쪽, 버몬트와 뉴햄프셔를 운전하다 보면 먼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푸른 초원과 아기자기한 농촌 마을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미국 횡단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최단 루트로 지나가는 자동차 여행이 아니다. 각 지역을 들러 구경하며 가는 자동차 여행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위쪽으로 갔다가 아래쪽으로 돌아온다면 한 두 달쯤 걸릴 것이다. 이것도 은퇴 이후로 미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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