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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오레곤 여행 6

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by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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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스보(Poulsbo)는 시애틀에서 바닷길로 가면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런데도 아주 먼 곳, 다른 나라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독특함때문이다. 폴스보에 가기 전에 본 이 지역 사진은 마치 유럽 같았다. 그 느낌이 맞다. 폴스보는 노르웨이 이민자들이 만든 도시다.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조그만 도시, 우락부락한 바이킹의 후예가 만든 아기자기한 건물들, 인형극에 나오는 그림 같다. 폴스보 전체가 아기자기한 것은 아니지만 다운타운이 그랬다. 다운타운에 가기 전에 잠시 들러본 쇼핑센터는 미국의 어느 도시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세이프웨이, 스타벅스, 맥도널드 이런 체인점이 미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폴스보 다운타운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관광객 위주로 꾸며져 있는 느낌. 하긴 인구 1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 노르웨이 풍이라는 독특함을 살려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리라. 소피는 또 직장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상점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소피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핸드백을 도난당해서 크레딧카드를 모두 취소한 상태, 카드가 없다. (도난당한 것 아쉽지만 지금 소피에게 카드가 없는 것은 좋다. 돈을 별로 안 쓰게 되니까) 가지고 있던 현금을 다 써버린 소피는 내가 꼭 옆에 있어야만 물건을 살 수가 있다. 그런 와중에 소피의 기분이 좀 상했던 것 같다. 여행 왔지 선물 사러 온 건 아니지 않느냐는 의미의 말을 내가 했고, 소피는 그래도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마저 사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팽~팽~팽~

그날 이후 이런 냉랭한 분위기가 하루 이틀 정도 갔다. 여행하면서 서로 마음이 상하거나 삐져있거나 하면 여행이 금세 재미없어진다. 신기한 걸 봐도 무덤덤, 멋있는 걸 봐도 두덤덤. 모든 게 마음 안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 다행히 소피와의 팽팽했던 관계는 이틀 정도에 풀렸다. 여기서 얻은 한 가지 교훈, 여행 중에는 다투지 말라. 어쨌든 폴스보에서는 돈을 하나도 안 쓰고 나왔다. 성공했다.


폴스보를 나와 101번 north를 다시 탔다. 오늘 아침에 폴스보로 가느라 한 시간 가량 까먹었으니 다시 한 시간 가량을 가야 어제 갔던 타운젠드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타운젠드에서 하나 빼먹고 얘기 안 한 것이 있다. 하긴 일거수일투족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라 해도 빼먹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타운젠드에서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는 순간 우와~~ 앞이 안보였다. 그것은 안개였다. 바닷가여서? 아침 기온이 낮아서? 하늘에도 차도에도 인도에도 가득 차 있었다. 그냥 밋밋했던 도로와 나무들이 한결 멋있게 보였다. 환히 드러낸 자연보다 안개로 감추어진 자연이 더 멋있었다. 안개는 해가 뜨고 아홉 시 넘어서도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옛날, 강화도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 너무 길이 막혀 그냥 강화로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절에 가서

"지나는 과객인데 하루 유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꼭 이렇게 묻지는 않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 소피와 함께 당일치기 여행을 간 것인데 마침 어머니가 절에 다니고 계신다는 점에 용기를 얻고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주지스님은 우리 일행을 한번 슬쩍 훑어본 후 "저... 어느 절에..." 물어봤고 어머니는 다니시는 절 이름을 대셨다. 그렇게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고 묵은 후 다음날 일찍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무진장 밀려와 차 앞을 가로막았던, 차선조차 보이지 않게 했던 안개에 대한 기억이 그 순간 갑자기 났다. 시애틀과 강화도가 내 머릿속에서는 안개로 연결된다. 참 그때 그 절에서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듯한 소리, 낙엽을 누가 밟으며 걷는 듯한 소리가 밤새 나 소피가 좀 무서워했다.

"저거~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소리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했고, 어머니는 옆에서 "드르렁~ 푸~" 코를 고시며 잘도 주무셨다. 새벽녘 절을 나올 때 방값 대신 방에 시줏돈을 좀 놓고 나왔던 것 같다. 굳이 이걸 밝히는 이유는 혹시 독자들 가운데 아무 절이나 가서 "지나는 과객인데... "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안개는 자욱해도 여행은 계속된다. 타운젠드로 빠지는 길을 조금 지나 드디어 101번 도로가 west로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태평양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가는 길은 여전히 끝없이 이어지는 전나무 숲. 워싱턴에서 평생 볼 나무 실컷 본다는 느낌이다. 폴스보 구경하느라 좀 늦기도 했지만 포트 엔젤레스 항구 (Port Angeles)에 도달했을 땐 이미 오후 2시를 넘고 있었다. 옛날 스페인 사람들이 '뿌에르따 데 누에스트라 세뇨레스 데 로스 앙헬레스' Puerta de nuestra senores de los angeles (음~ 내 스페인어 실력이 아직까지도 살아있군.... 으~ 거의 다 까먹었다)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 말이 점점 짧게 줄어지면서 그냥 포트 엔젤레스, 즉 엔젤레스 항구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특별히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기 위해 차를 멈춘 곳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마땅한 음식점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괜찮다 싶으면 차 돌리기가 어렵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어떤 곳인지 알기 어렵고, 그러다가 중국, 대만, 또는 홍콩식으로 보이는 곳이 있어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이름은 소호. 높은 천정, 아주 넓은 실내. 이거 꽤 비싸겠는데... 하지만 메뉴를 보니 10달러대 정도. 일본식 돈가스와 차오 펀을 시키자 사각형의 크고 흰 앞접시가 두 개 나오고 음식이 따로 나왔다. 맛도 좋고, 양도 많고, 음식점도 쾌적하고... 충분히 먹고도 음식이 남아 싸 달라고 해서 들고 나왔다. 이날 저녁 맥주 한잔에 이걸 안주삼아 저녁으로 잘 먹었으니 이날 점심으로는 두 끼를 먹은 셈이다.


포트 엔젤레스는 솔 독 온천(Sol Duc Hot Springs Resort)의 입구다. 여기서부터 101번을 벗어나 산으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온천리조트가 나온다. 내심 "오늘 그곳에서 묵어야지" 생각하며 또다시 전나무가 빽빽한 산길을 운전한다. 솔 독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생각과 달랐다. 잘 지어놓았을 거라는 내 상상 속의 호텔은 없고, 방갈로가 군데군데 있었고, 그 방갈로마저 빈 곳이 없었다. 다행히 온천욕은 할 수 있어서 입장료 내고 들어갔다. 12달런가... 그랬다. 기대했던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야외 온천과는 거리가 멀었다. 달랑 수영장 같은 온천욕장 두 개에 찬물이 가득한 수영장 하나. 그나마 온천물도 별로 뜨겁지 않았다. 물도 깨끗하지 않았고. 어쩌랴 그래도 계란 삶는 냄새나는 걸 보니 온천물은 온천물인가 본데. 온천이라서 그런지 한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할머니들이 단체로 오셨나 보다. 밴 한대에 한글로 쓰여있었다. '타코마 한인 ~~~ 교회'


두 시간 정도 그렇게 따뜻한 물과 찬물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왔다. 어차피 방이 없으니 한 시간 넘게 산길을 내려가야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방도 잡아야 했다. 다행인 것은 여름의 워싱턴은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것.

방을 잡는데도 여유가 생긴다. 온천 분위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이 미끈미끈, 기분은 상쾌하다. 산길을 내려가 한참을 달린 후 101 west가 south로 바뀐 후 나온 마을에서 숙소를 구했다. 이 동네는 Forks라는 곳으로 온천에 방이 없을 때 사람들이 많이 묵고 가는 어부지리 지역인 듯했다. GPS의 도움을 받아 괜찮은 B&B를 찾았고 그냥 그 집 앞에 차를 대고 불쑥 들어가 물어왔다.

"방 있나요?"

있었다. 가격도 적당하다. 두말 않고 들었다. 벌써 아홉 시가 다됐으니 가봐야 멀리 못 간다. 이 집은 폭스 시청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집이다. 좀 좁긴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특히 잉글리시 머핀에 계란을 얹고,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맛있는 소스까지 얹어서 나온 에그 베네딕트 아침도 맛있었다.




지난 여행기를 읽으며 그때 갔었던 지도를 찾아보니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갔던 길을 그대로 가보는 것도 좋지만, 그때 가보지 못했던 길로 살짝 빠져보고도 싶다. 솔 덕 온천에서 나와서 내려가지 말고 위쪽으로 올라가 미국 위싱턴 주의 끝부분, 즉 캐나다 빅토리아섬 바로 아래까지도 가보고 싶다. 가능하면 거기서 차를 배에 싣고 빅토리아로 건너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한국에서 해외로 여행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실시된 게 1989년 1월이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30년에 불과하다. 내가 처음으로 해외에 간 것은 회사에서 1주일 연수차 보내준 94년 일본이 처음이다. 요즈음 한국인은 북한을 제외하고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고, 쉽게 갈 수 있는 경제적, 외교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2020년 올해는 Covid-19로 해외여행이 쉽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백신이 나온다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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