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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오레곤 여행 7

2020년에 돌아보는 2008년 여행

by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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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째날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 빼먹은 것이 생각났다. 간단하게나마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어제 솔 독에 가기 전에 들른 또한 곳이 있다. 여행책자에 있지만 찾아가기 어려운 곳, GPS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가지 못했을 곳이다. Dungeness National Wildlife Refuge. 101번 도로에서 빠져나와 산 넘어, 고개 넘어, 구비구비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길을 따라 한 시간가량 운전하니 짠~ 하고 거짓말처럼 그곳이 나타났다. 물론 오는 도중 GPS를 한두 번 의심하기도 했다. 도저히 안 나올 것 같아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입장료가 3달러인데 개인당이 아니라, 가족당 3달러라는 것. 혼자와도 3달러, 1명이든 5명이든, 10명이든 가족이면 3달러다.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개인당 3달러인 줄 알았다가 이 사실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30분쯤 걸어서 내려간 곳은 바다였다. 멋있는 바다, 안개가 자욱이 끼고,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곳곳에 있고(어디 선가 떠내려 온 듯), 미역 비슷하지만 미역줄기의 수십 배 크기의 씨 그래스(Sea Grass)라는 것이 곳곳에 쌓여있다. 이곳에 잘 보면 물개, 온갖 종류의 어류, 게, 소라, 조개, 희귀한 새들이 널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반나절 있어도 충분한 곳이지만 30분 정도 경치만 둘러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중으로 솔 독에 가야 하니까. 한 가지 더. 솔 독으로 가기 전에 크레센트 호수를 만났는데, 놀라움이었다. 나무만 있는 산속 도로를 한찬 달리다 산속에서 만난 호수. 이 호수는 올림픽산에 쌓여있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형성된 얼음호수다. 크레센트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600 피트, 워싱톤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라고 한다. 음~ 속 깊은 호수군.


이제 일곱째 날 아침으로 돌아가서. 이제부터는 101번 south다. 밑으로 쭉 내려가면서 가능하면 오레곤까지 건너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거기까지 못 가면 말고. 아직 3일 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날짜 가는 것이 아깝다. 돌아가지 말고 계속해서 여행에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길을 다니고 싶다. 어차피 하루하루 사는 게 여행이긴 하지만. 오른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끊임없이 달린다. 루비 비치라는 이름에 끌려 잠시 들러서 쉬긴 했지만, 루비는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비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이제 웬만한 비치가 나와도 그냥 무시하고 가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가던 중 여행책자를 살피던 소피가 한마디 한다. 좀 더 가면 퀴놀트라는 곳이 있는데,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데...?


솔깃하다. 인디언도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지만 만약 그들이 전통옷을 입고 옛날 살던 방식대로 산다면 구경할 만하다. 전에 류시화가 엮은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문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동물처럼 살아가는 그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현대문명, 생존경쟁에 찌든 우리의 영혼에 가히 충격적이었다.

"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팔라하나 우리는 땅을 소유한 적도, 소유할 수도 없는데..."

시애틀 추장의 이런 생각에 동조하면서 읽었다. 어떻게 땅을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땅을 엄청난 가격에 사고팔며 살게 됐을까? 지금 땅을 소유한 주인은 누구에게서 샀으며, 그는 또 누구에게서 샀단 말인가? 원래의 주인은 누구인가? 원래 땅의 주인이 있을 수나 있는가? 땅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람이 땅(자연)의 일부 아닌가? 인디언이라는 단어로 인해 잠시 인간과 자연을 생각해본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수십억 년을 살고 있는 땅 보고 "네 것, 내 것"이라며 거래하고, 다투는 꼴을.... 어쨌든. 인디언 보호지역을 찾느라 헤맸다. 가긴 간 것 같다.


정승 두 개를 입구에 세워놓고 "여기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표시해놓은 걸 기대했는데 그런 곳은 없었다.

101번 도로를 벗어나 산속으로, 강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고 나중에는 포장도로가 없어지고 자갈길이 나왔다. 한참 가다 차가 걱정돼 돌아 나왔다. 이런 길은 차가 아니라 말을 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문명의 끝 언저리. 그래도 거기에는 조그만 리조트 호텔이 하나 있었다. 101번 도로로 다시 나올 때쯤 보니 입구에 이 지역이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머리에 깃털을 꼽고 타잔 팬티 입고 다니는 인디언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지역이 바로 인디언 보호구역이란다.


다시 101번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간다. 이름이 익숙한 롱비치가 나와 점심을 거기서 먹기로 했다. LA에 있는 롱비치는 아니지만 여기는 꽤 큰 비치다.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다. 시푸드 체인인 듯한 미국 식당에 들어가 휘시 앤 칩, 버거를 시켰다. 휘시의 이름은 모르겠고, 버거에는 튀긴 굴이 들어 있다. 굴이 들어있는 버거는 난생처음. 비치는 굉장히 넓은데 모래가 하얀색이 아니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에 들른 곳은 실망의 곶 (cape disappointment) 실망의 곶. 빨간 지붕의 등대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곳이다. 왜 실망의 곶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온갖 추측을 하면서 등대 바로 아래까지 봤더니... 바람만 심하게 불었다. 등대 아래는 절벽이다. 역사를 잠깐 살펴보니 등대를 건설하고 라이트를 주문했으나 크기가 너무 커서 등대를 다시 지었고, 북쪽에서 등대가 잘 보이지 않아 또 지었고.. 한 방에 일을 끝내지 못한 등대여서 실망의 곶인가. 등대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오지 않아서 실망을 해 실망의 곶인가. 아니면 뱃사람들이 도착해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해서 그런가. 머릿속은 해답을 찾으려고 상상의 날개를 펴지만 답은 찾을 곳이 없다. 실망했다. 아하~ 그래서 실망의 곶인가.


여기서 기~인 다리를 넘으니 오레곤의 아스토리아다. 콜롬비아 강 가운데 지점을 경계로 워싱턴과 오레곤이 나뉜다. 일주일 전에 오레곤의 포틀랜드 공항으로 도착했다가 그날로 워싱톤으로 넘어갔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아스토리아 칼럼을 가야 돼"

이제 소피는 거의 여행 전문가 수준이다. 여행책자를 보고 GPS에서 찾아 놓고 이리가라, 저리 가라 한다. 운전하느라 바쁜 나는 그대로 할 수밖에... 교육시켜놓으니 이제 스스로 잘한다. 스승을 제치고 앞서 나가려 한다. 이제 운전도 시킬까 보다....


아스토리아 칼럼에서 내려다본 경치. 탁 트이는 느낌, 시원하다. 바다처럼 넓은 콜롬비아강, 저 강을 따라 계속 가면 육지 깊은 곳까지 갈 수도 있다. 아스토리아 칼럼에서 내려오는 길이 복잡했지만 시내도 아기자기한 모습. 여기도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곳처럼 보인다.


웬 덩치 큰 바위가 바닷속에 떡~ 버티고 있을까? 이곳이 캐논 비치(Cannon Beach) 다. 이곳은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본 비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비치다. 지금까지 본 비치 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 비치의 어떤 점이 좀처럼 마음을 내주지 않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캐논 비치는 아스토리아(Astoria)를 떠나 퍼시픽 하이웨이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나온다. 오레곤의 제일 큰 도시 포틀랜드에서 가까워 포틀랜드 시민들이 주말여행으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덩치 큰 바위가 여기저기 서 있는 경치. 그 바위 사이로 노을이 멋들어지게 드리워지는 풍경. 바닷가에서 말을 타고, 비치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머쉬멜로우를 구워 먹는 낭만. 그리고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바다.

이런 자연환경이 만들어내는 멋이 조화롭다. 그 외에도 우리가 그날 숙소로 잡은 호텔이 마음에 쏙 들었다는 점이 추가되면서 내가 이 비치를 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엔 그냥 캐논 비치를 한번 둘러보고 남쪽으로 더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하루 묵고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오후 7시 30분쯤. 바닷가에 차를 대놓고 GPS를 통해 적당한 호텔을 찾는다. 여기서 잠깐 내가 이날 호텔을 고른 기준을 소개하자면,

1.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한다. (하룻밤 자고 나올 건데 너무 비싸면 아깝다)

2. 깨끗해야 한다.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고 갈 텐데...)

3. 교통이 좋아야 한다. (가끔 혼자 뚝 떨어진 호텔이 있다. 조용하긴 하겠지만 주변 시설이 별로다)

캐논 비치에서 이런 기준에 딱 맞는 호텔을 찾았다. 소규모 호텔이면서 시설과 서비스는 특급이다. 숙박료 80달러~ 200달러대인데 운 좋게 90달러대 룸을 잡았다. 아침도 포함이다. 유러피언 스타일이라고 하더니 아주 좁기는 하지만 객실 내 시설들이 센스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샤워시설이다. 욕실 내에 흰 커튼이 동그랗게 말려있고, 그 바로 위에 큰 샤워기가 있다. 딱 혼자 들어가 서서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좁지만 멋지다. 아침은 체크인할 때 미리 시간을 예약하면 그 시간에 문 앞으로 배달이 된다. 내용물은 컨티넨탈식이니까 빵, 커피, 요거트, 과일 이런 거지만 일회용 식기가 아닌 접시와 머그, 포크, 나이프가 들어 있다. 그것도 예쁜 피크닉 바구니 안에. 빵맛 99점 (인근 베이커리에서 아침에 구운 것), 커피 맛 120점 (무슨 커핀지 물어볼걸). 커피가 너무 맛있어 오전에 동네 구경차 잠깐 나가면서 로비에서 또 한 잔 따라 들고 나왔다.


저녁엔 타코마에서 산 햇반을 먹으려 했는데, 룸에 마이크로웨이브가 없다. 영화배우처럼 생긴 젊은 백인 여자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니 자기가 도와줄 수 있단다. 햇반을 1층에 있는 식당 마이크로웨이브에서 데워서 들고 왔다. 룸에서 햇반에 비빔고추장, 김, 김치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처음엔 김치 냄새날까 뚜껑 열었다 닫았다 조심조심,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열어놓고서




12년이나 지났는데도 글을 읽다 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모두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인상 깊었던 것들이 띄엄띄엄 생각난다. 아마도 이런 기억들은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더라도 계속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험을 사는 것이 가치가 큰 것이다. 물건을 사서 그 물건을 쓰다가 수명이 다해서 버리게 되면 가치가 없어지고 말지만, 경험을 사면 머릿속에 언제고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가능하면 좋은 여행 경험을 많이 만들어두고 싶다. 아마도 지금까지 여행하느라 쓴 돈을 모두 모았더라면 통장의 잔고가 제법 두둑할 것이다. 하지만 통장의 잔고보다 여행을 하며 차곡차곡 쌓아둔 머릿속의 기억들이 더 소중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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