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4년 여행
- 외국여행을 하고 남은 그 나라의 동전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글들이 있다. 그 글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그 시절을 회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현재의 느낌도 말미에 짧게 추가할 생각이다.
San Francisco Trip (Oct. 9-13, 2004)
10월 9일, 토요일.
밤 10시 30분, 호놀룰루공항에서 ATA 항공기를 탔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음날 오전 6시 30분쯤에 도착했다. 전날 잠을 잘 못 잤고, 밤 비행기도 불편해서 피곤하다.
10월 10일, 일요일.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항공기로 5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본 것은 상공에서 내려다본 베이 브리지 (Bay Bridge)다. 2004년 10월의 가을, 평온한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
공항 분위기는 아침 일찍 떠나는 기차역 같다. 이른 아침 떠나는 항공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찌감치 공항에 나온 사람들이 군데군데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며, 책을 읽으며, 졸린 눈을 비비며 설친 잠을 달래는 듯. 나도 호놀룰루에서 밤새 비행기 타고 오느라 잠을 설치긴 마찬가지다. 공항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 들고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아주 잘 정돈된 곳이다. 에어트랜(Airtrans)이라는 모노레일처럼 생긴 것이 공항 내 곳곳을 연결해 준다. 한쪽이 터진 동그라미 모양으로 생긴 노선을 따라 에어트랜이 다니며 국내선 터미널 1, 2, 3, 국제선 터미널 1, 2, 랜트카 터미널, 그리고 바트(Barts: Bay Area Rapid Transit System)라는 시내로 들어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각 터미널을 연결시켜준다.
우리는 차를 랜트하기로 했으므로 베기지 클레임에서 가방을 찾은 후 에어트랜을 타고 랜트카 터미널로 향했다. 아참, 여기서 '우리'란 소피와 세라, 나 이렇게 세 식구다. 랜트카는 달러에서 빌렸다. 직원은 멕시칸으로 보였고, 비교적 친절했다. 중형 세단을 빌렸는데 가격은 하루에 40달러 보험 9달러다.
여행 계획은 우선 공항에서 차를 빌린 후 UC 버클리에 이어 소노마와 나파 등 와인 카운티를 둘러보고 시내로 들어가 호텔로 들어가기 전 시내에서 차를 반납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만 다닐 예정이니까 차가 필요 없다.
공항에서 나와 101번 하이웨이를 타고 UC 버클리로 갔다. 일요일 아침 8시쯤 대학 캠퍼스, 너무나 조용했다. 낙엽이 떨어져 있는 풍경, 두 명이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화난 듯한 목소리다.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다.
아침을 못 먹었다. 캠퍼스 앞 거리는 그야말로 대학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카페, 주점, 아기자기한 음식점들... 맥도널드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들어갔다. 아직 아침을 못 먹었고 맥도널드는 아침 식사하기 가장 적당한 장소 아닌가.
***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을 시작한 게 2004년 샌프란시스코부터다. 어디를 갈까 많이 생각했었는데 샌프란시스코로 결정한 건 순전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이라는 노래가 생각나서였다. 어렸을 때 들었던 옛날 팝송인데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다녀와서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샌프란시스코 베이' (San Francisco Bay)라는 노래를 한참 들었다.
1997년에 미국에 와서 2004년까지 여행을 한 번도 안 갔으니 얼마나 어디를 가고 싶었을까? 비자 문제로 한국을 두 번 다녀오기는 했지만 그건 순수한 여행은 아니었다. 안 간 게 아니고 못 간 거다. 여행을 갈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때다. 세라가 8살,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소피는 이제 막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