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의 SF 단편 소설 '관내 분실'의 흥미로운 지점은 시점이다. 읽은 지 꽤 돼서 자세히는기억나지 않지만 시점을 옮겨 생각해봐야 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사람이 죽으면 뇌를 스캔한 '마인드'를 디지털 도서관에 업로드해 두고 추모한다는 설정인데, 주인공의 엄마 김은하의 데이터가 분실된다. 데이터를 잃어버렸을 경우 고인을 찾을 수 있는 단서인 인덱스까지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다. 엄마를 찾기 위해 고인이 기억하고 반응할만한 유품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유족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유품의 중요도가 아니라 엄마의 기준으로 얼마나 그녀의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는 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짧은 소설은 내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다. 클래스 첫날 과제를 받고 70년대 어린 시절의 하루로 시작은 했다.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오후의 짧은 스케치로 '나'를 드러냈다.
오늘 과제대로 주인공(나)을 타자화 하기 위해서는 제삼자, 즉 어머니의 시점으로 나를 봐야 한다. 11시쯤 올라온과제를 보고 관내 분실을 떠올렸다.
소설의 시작점인 그날, 내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날 무슨 일을 겪었을까. 길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기준점은 나였다. 내 시점으로 어머니를 관찰하고 서술하려 했었다.
당신의 눈으로 나를 본다... 이런저런 추측과 짐작만 붕붕 떠다닌다.쓸 수 있을까.
또 두서없는 쓰레기 같은 소설(?) 초고가 되겠지만, 어쨌든 시작한다.
중자씨는 학모들과 점심을 먹었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가는 아들 연기의 친한 친구 엄마들과 갖는 부정기 모임이다. 한 아이의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학교에 다녀온 그 집 아이는 제 엄마한테 존댓말을 썼다. 함께 밥을 먹은 다른 두 엄마들에게 물었다. 다 존댓말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자씨의 아들 연기만 외동이지 다른 아이들은 다들 형제가 많았고 막내였다. 가르쳤다기보다 형과 누나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으리라고 짐작했다.
스무 살이나 많은 남편의 첩 소리 듣는 둘째 아내 노릇을 하고 있지만 본처는 갖지 못한 아들이 있다는 사실로 겨우 자존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 오는 자격지심이 울컥 솟았다. 뭐 하나라도 그들에게 뒤지는 건 무시를 당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중자씨였다. 아들 연기는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특출 나지도 못했다. 그들의 부러움을 받기는커녕 무엇도 내세울 게 없다는 게 속이 상했고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와서 현관문을 열면서 보니 연기는 또 만화책 같은 걸 읽고 있다. 말을 시키면 조잘조잘 잘하는 애지만, 중자씨 본인이 우울한 날이 많아 애 하고 잘 놀아주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저런 쓸데없는 책 보는 것말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면 얼마나 좋아. 기대는 또 무너졌다. 답답했다. 저래서야 지 아버지 눈에 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나하고 저하고는 지 아버지로부터 언제든지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아들이 한심했다. 아직 그 정도 사려는 없는 나이일까.알아서 뭐든 척척 잘해주면 좋겠는데 여적. 저러고 혼자 노는 게 답답했다. 열 살 이면 이제 지 앞가림은 할 나이도 됐건만.
연기야, 니 이리 와서 앉아봐라.
어둑해지는데 마루에 불도 켜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 표지가 너덜너덜한 대여소 책을 읽고 있는 아들을 불렀다. 저를부르는 소리에 중자씨를 흘끔 보고는 슬그머니 책을 감추는 모양새도 어설펐다. 한숨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