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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Nov 06. 2023

단편 소설 쓰기 1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라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육 년쯤 됐다. 기일은 7월 1일이다. 유월이 다 갈 무렵, 문득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지 몇 년이나 됐나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셌다. 그러다가 아직도 그렇게 많이 그립지는 않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내심 놀랐다. 애증의 세월이란 말도 떠올랐다.

아직도? 육 년 정도 흘렀으면 이제는 나쁜 것 다 털고 좋은 기억만 남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어머니 이야기는 에세이로 쓰려고 했었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태어나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니 긴 세월이지만 지루하고 반복적인 부분을 어내면 굳이 장황하게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디서 시작을 할까,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쓸까.

글을 쓰기 위해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내 기억도 계속 뒤져야 했다. 까마득했다.

어머니의 어떤 행동과 그걸 받는 어린 나의 반응, 꽤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어떤 한 장면을 생각해도 기억은 균질하지 못했다. 한쪽은 짙었고 다른 쪽은 옅었다. 이래선 글 한편 쓰기도 어렵고, 한편만 쓰기도 어렵다. 짙고 옅은 기억을 꺼내고 잇다 보면 글 하나로 끝나지 않겠다 싶었다.


내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를 짧은 소설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인스타그램에서 눈에 띈 소설 쓰기 클래스에 등록했다. 지난 주였다.

클래스 제목이 '자전적 소설 쓰기'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이 찾아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매거진은 클래스를 따라가며 3주간 단편 소설의 초고를 쓰는 이야기다.


오늘은 소설 쓰기 클래스 첫날이다.

화자이자 작중 인물인 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물에 성격을 부여하라가 첫 과제다.

물론 소설이니 어느 정도 가감은 있다. 사실 그대로만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 플랫폼 브런치와 이 글을 읽을 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소설 쓰기는 영영 못할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 쓰기로 했다. 널리 양해를 구한다. 시작한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를 두 번 타고 집에 오는데 근 한 시간이 걸린다. 70년대 국민학교는 일찍 마쳤다. 열 살 소년은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오전 수업을 하는 수요일이나 토요일이면 집에 와도 대낮이었다. 언제나처럼 신발을 벗으며 안방부터 살폈다. 인기척이 없었다. 엄마가 집에 있다 해도 당신의 기분이 좋을 때가 아니면 얼른 인사만 한다.

소년은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는 카레가 한 솥 담겨 있었다. 찬장을 뒤지니 스팸 캔이 보인다. T자 형 따개를 캔 가운데 튀어나온 쇠띠 부분에 걸고 돌돌돌 말아 돌려서 캔을 땄다. 스팸 캔을 딸 때 여차하면 돌리다가 캔 끈이 끊기는데, 자꾸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식칼로 크게 두 덩이를 잘라 프라이 팬에 올리고 불을 댕겼다. 찬밥에 데운 카레를 얹고 막 구운 스팸 두 조각도 얹었다. 김치를 찾아내 식탁에 앉아 먹었다.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마당으로 나가서 강이지 해피와 놀기로 했다. 쓰다듬어 주다가 나뭇가지를 던져 주다가 흙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카펫이 깔린 마루 바닥에 앉아 며칠 전 만화가게에서 빌려온 책을 집어 들었다. 김성종의 추리 소설. 한참을 넋 놓고 책에 빠져들다가 고개를 들어 넓은 마루 창 밖에 줄지어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바라보았다. 창을 통해 늦은 오후의 햇살이 가로로 치고 들었다.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면 내 그림자가 길게 소파를 지나 마루 안쪽 벽까지 가 닿았다. 작은 먼지 입자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부유했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엄마는 신발을 벗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할 말이 있다는 신호다. 나는 눈치부터 살폈다.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엄마는 두 사람처럼 달랐다. 살펴야 대비를 하고 야단을 맞지 않는다. 잘못하면 먼지털개로 또 맞을 수도 있다.

 있다. ?

대답을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렇다고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햇빛을 후광처럼 등뒤로 받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을 더 찡그렸다.

니, 여 와서 앉아봐라.

엄마는 화가 난 게 아니다. 분한 기색이었다. 만화방에서 빌려온 책을 슬그머니 숨겼다. 지난번처럼 책을 던지고 찢어서 만화방 주인아줌마한테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 용돈으로 책값을 나눠 갚는 난감한 상황은 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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