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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양초에 불을 붙이는 시간

인터미션 intermission

by 수필버거

북카페 대책회의 11월 오픈을 바랐다. 마땅한 장소를 찾은 게 9월 말, 임차인과 조건 조정 마무리가 10월 초, 그제야 11월 28일에 가게를 비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임대인도 동남아 장기 여행 중이란다. 그러면서 임대료를 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단다. 부동산 거래도 사랑과 같다. 1% 더 좋아하는 쪽이 약자다. 수용했다.


공장 폐업은 면했다. 업계 친한 형님이 운영하는 남산동 인쇄거리 공장에 내 포장 기계를 옮기는 문제를 상의하러 갔었다. 경기 상황으로 봐선 처분해도 똥값 받을 테니, 아니 처분도 힘든 상황이니, 필요하면 쓰시라고 했다. 띠동갑 형님은 건강을 잃었다. 영원히 젊을 줄 알고 몸을 혹사한 결과다. 형수가 대신 운영하는 공장은 일감도 엄청나게 줄었다. 부부가 밤을 새워 일하던 날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아득하다. 그렇다고 본인 설비를 처분하고 폐업을 택하기도 어렵다. 용도에 맞춰 개조를 했기에 범용 기계의 기능을 잃어서다. 옆으로 앞으로 조금씩 확장했던 공장은 이제 짐이 됐단다. 나보고 폐업하지 말고 한 귀퉁이 쓰면서 일을 이어가라고 했다. 고마운 말씀. 내년 봄까지만이라도 그리 해보자고 했다. 형수는 일머리가 있고 손이 빠른 사람이다. 우리 상품 포장일을 맡기로 했다. 원자재값 들지 않는 일로 임대료의 일정 부분 벌충할 수 있을 게다. 윈윈. 북카페를 오픈한다고 당장 매출이 팍팍 올라올리는 만무하다. 좀 번거롭고 좀 불편하겠지만, 메인으로는 한숨 나오는 매출이라도 책방 자리 잡을 때까지는 기댈 언덕이다. 기사회생.


어제 이마트 내 대형문구점을 운영하는 도매업체 사장을 만났다. 대책회의 2호 샵인샵 입점하다가 중단된 그 업체다. 시월 막주에 기업회생신청을 하기로 했단다. 이행 보증 공탁금 마련으로 노심초사하다가 가까스로 길을 찾았다고 말하는 표정이 밝았다. 그 동네 편의점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주고받으며 서로 응원하고 격려했다. 법원 인가까지 몇 주가 걸리겠지만, 신청서와 공탁증만으로도 신세계 측에 폐쇄 해제 요청이 가능하단다. 영업을 재개하면 소매 매장의 1/3 그러니까 20평 정도를 대책회 샵인샵으로 바꾸자고 뜻을 모았다. 아직 재무적으로 힘드실 테니, 원목 책장과 테이블 등 집기는 대책에서 맡아서 하겠다고 걱정 놓으라는 뜻도 전했다.


뭔가, 해피엔딩 같다.

잠시 풀린 날씨처럼 마음이 개었다.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서면서 많은 연극들은 실외 극장이 아닌 실내극장에서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중략)
이때부터 많은 실내 극장들은 '양초'를 이용해 무대를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양초의 수명은 연극 공연의 러닝타임에 비해 턱없이 짧았고, 공연 중 양초를 교체하고 다시 불울 붙여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인터미션'입니다. 공연 중간의 긴 휴식시간을 도입했고, 공연 관계자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양초에 불을 불였습니다.

<출처 : '올댓아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allthat_art/223801765174


10월 납품은 지금 공장에서 하고 내달 초에 공장을 비울 예정이다. 일정대로 순항하더라도 북카페 오픈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생겼다.


인터미션.

내 삶의 또 하나의 막을 내리고 새 막이 열리기까지 잠시 휴식 시간.

새 양초에 불을 붙이는 시간.


숨을 고르고,

땀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무대 배경을 바꾸는 시간.




북카페 대책회의 내부 공사는 공방 동생과 둘이 하기로 했다. 물론 계약 도장 찍을 때까지 돌발 변수 없이 순조롭게 흘러야 공사든 노가다든 할 수 있다.

다음 글은 공사 현장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1월 7일 첫 글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로 시작한 '나는 대책이 있다' 매거진 연재는 여기서 일단락 짓습니다.


그간,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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