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템포의 등장 후 폭풍
결제는 금융의 마지막 관문이자, 기술 혁신의 최전선이다. 사용자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순간부터,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스스로 결제를 실행하는 시대까지, 결제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카드사와 은행이 절대적인 지위를 가졌지만, 디지털 전환 이후 그 무게추는 핀테크, 빅테크, 블록체인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에이전틱 결제(Agentic Payment)”다. 사용자가 직접 클릭하거나 승인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판단하여 송금·구독료 납부·데이터 구매 등을 처리하는 결제 방식이다. 인공지능이 경제적 행위자로 등장하는 순간, 결제 주도권은 과거와 전혀 다른 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2025년, 글로벌 종합 결제기업 Stripe는 패러다임(Paradigm)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결제에 최적화된 레이어1 블록체인 ‘템포(Tempo)’를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표가 아니다. 쿠팡·쇼피파이(커머스), 오픈AI·앤트로픽(AI), 비자·레볼루트·스탠다드차타드(금융) 등 각 업종의 대표 기업이 초기 파트너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템포는 결제 생태계의 범산업적 연합 모델로 등장했다.
템포의 특징은 분명하다. 초당 100,000 TPS, 1초 미만의 최종성(Finality), 그리고 자동시장조성자(AMM) 내장으로 어떤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든 결제와 가스비 지불이 가능하다. 즉, 블록체인 안에 환전소가 들어 있는 구조다. 또한 Stripe의 기존 결제 인프라(B2B 플랫폼 Bridge, ID 솔루션 Privy)와 연결되어, 1억 명 이상의 개발자·판매자 생태계를 곧바로 활용할 수 있다.
Stripe의 시도는 결제를 온체인으로 옮기고, AI가 결제의 실질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 누가 “속도와 신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그렇다면 전통 금융은 손 놓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Visa는 이미 2024년 결제량의 40%를 스테이블코인 기반으로 처리했으며, 블록체인 네트워크와의 연동을 강화하고 있다. 마스터카드 역시 자체 네트워크에 스테이블코인을 접목해 글로벌 결제의 표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소시에테 제네랄과 밴티지 뱅크는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며, 국경 간 송금과 기업 재무 결제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 자산 시장에 “끼어들기”가 아니라, 결제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혁신이다.
전통 금융은 이미 수십억 명의 고객 네트워크와 규제 친화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AI 에이전틱 결제라는 새로운 흐름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는 Circle(USDC), Tether(USDT), Ripple(RLUSD)는 이미 글로벌 송금과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Circle은 자체 아크(Arc) 블록체인을 개발하며 인프라 영역까지 확장했고, Tether는 레이어1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며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빅테크도 빠지지 않는다. 구글 클라우드는 금융 부문을 겨냥한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 GCUL(Google Cloud Universal Ledger)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결제 솔루션이 아니라,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AI·결제 인프라를 한 번에 제공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결제만을 바라보지 않고, AI·데이터·금융을 통합하는 플랫폼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질문은, 결국 결제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다. Stripe와 Visa가 인프라를 구축하더라도, 사용자가 직접 결제하지 않는 순간에는 AI가 결제의 실질적 게이트키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I 비서가 사용자의 월 구독료를 자동으로 결제한다.
AI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구매하고, 자율적으로 API 사용량을 조정하며 비용을 지불한다.
자율주행차가 주행 중 충전·도로·보험 비용을 AI 시스템을 통해 즉시 결제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결제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선호하는 결제 네트워크가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결제 주도권은 AI와 연결된 생태계를 누가 장악하는지에 달려 있다. Stripe가 OpenAI와 손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템포의 성공은 실제 조건에서 약속된 성능(100,000 TPS, 1초 확정성)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규제 환경 속에서 탈중앙성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규제기관은 AI가 자동으로 결제를 실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책임 문제와 자금세탁 위험을 우려할 것이다. 평균 수수료와 대기 시간, 그리고 규제 친화적 거버넌스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도 시장 확산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AI 에이전틱 시대, 결제의 주도권은 단일 기업이나 산업이 독점할 수 없다. Stripe 같은 핀테크, Visa 같은 전통 금융 네트워크, Circle과 Tether 같은 발행사, 그리고 Google과 OpenAI 같은 AI·빅테크 기업들이 서로 얽히며 복합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결제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멕시코 송금의 30%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Visa 결제량의 40%가 이미 스테이블코인 기반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제의 미래는 AI가 실행하고, 스테이블코인이 흐르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주도권은 누가 이 흐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규제와 기술의 균형 속에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결제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자리 잡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