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창조적 파괴

by 꽃돼지 후니

전통 금융의 심장이었던 결제 시스템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5년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키넥시스(Onyx Kinexis)’를 도입한 것은 단순한 기술 협업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금융의 주권이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JP모건은 이미 하루 20억 달러 이상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들의 예금 토큰(JPMD)은 스테이블코인과 닮았다. 은행 예금을 담보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규제 친화적이지만, 퍼블릭 블록체인인 이더리움 위에서 움직인다는 점은 탈중앙화의 철학을 일부 흡수하고 있다.

즉, 전통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옷을 입은 새로운 금융 형태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이 변화는 단순한 해외 송금 효율화가 아니다. 만약 글로벌 은행의 예금 토큰이 국내 대기업 간 송금과 결제에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그 흐름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실질적 침투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이 규제 미비로 시간만 보내는 사이, 디지털 금융 주도권이 ‘달러 기반 블록체인 생태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2030년, 스테이블코인이 주도하는 결제 혁명

블록체인 시장조성업체 키락(Keyrock)과 거래소 비트소(Bits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연간 1조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B2B 거래, P2P 송금, 카드 결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게 전통 결제 수단을 대체하고 있다.

은행을 통해 200달러를 송금하면 최대 13%의 수수료와 며칠의 지연이 발생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수수료는 몇 센트, 시간은 몇 초면 충분하다.

이 속도와 비용의 혁명은 단순한 효율성 개선이 아니라, 금융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특히 7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외환(FX)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체인 간 원자 교환(Cross-chain Atomic Swap)이 가능해지면 거래의 신뢰와 속도는 중앙은행 시스템을 능가하게 된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전체 국경 간 결제의 12%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는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금융 표준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 금융의 역설: 안정 속의 정체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법제화의 출발선에 서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명확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고, ‘가상자산’과 ‘전자금융’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머물러 있다.


신한은행이 롯데멤버스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서비스를 준비했지만 법적 가이드라인 부재로 기술검증(POC)이 중단된 사례가 이를 상징한다. 이 와중에 JP모건과 일본 메가뱅크들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 시스템을 한국 기업들과 연결하고 있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구상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에게 시장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향후 은행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하더라도 비(非)금융 산업과 핀테크 기업들은 미국 스테이블코인과의 제휴를 통한 글로벌 결제 모델로 옮겨갈 것이다.

그 결과, 국가가 의도한 ‘안정성 중심의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시장의 혁신 흐름과 괴리되어 사용자는 달러 생태계로 이동하게 된다.이는 안정적이지만 혁신이 사라진 ‘관리형 디지털 화폐 체제’의 위험이다.

안정성을 강조하다가 창조적 파괴의 파도에서 뒤처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은 ‘탈중앙적 신뢰’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1달러에 고정된 디지털 코인이 아니다.
그것은 탈중앙적 신뢰(Decentralized Trust)를 거래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최초의 금융 실험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중앙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신뢰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은행, 결제망, 정부라는 신뢰의 매개가 사라지고 블록체인 코드와 네트워크가 신뢰의 새로운 주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본질이다.


새로운 질서는 기존의 안정된 시스템을 파괴함으로써 진화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의 “안정”을 보장하면서도, 그 시스템을 근본부터 재정의한다. 즉, 안정과 혁신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 구조의 화폐 실험’인 셈이다.


창조적 파괴의 관점에서 본 생존 전략

한국의 금융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디지털 경제 질서의 핵심 인프라 전쟁이다.


은행 중심의 규제형 스테이블코인은 제도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폐쇄적 구조가 되면 사용자는 개방적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로 이동할 것이다.


반대로, 비금융 기업과 핀테크는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그 속도와 확장성은 국내 은행보다 훨씬 빠르다.


결국,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주도하는 쪽이 시장의 승자가 된다. 이는 단순히 코인을 발행하는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신뢰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금융 질서의 출발점이다.

한국은행이 규제의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안정만을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지배로 귀결될 것이다.


국가 주도의 통제된 디지털 화폐 모델은 혁신을 제한하고, 결국 시장은 국경 없는 블록체인 생태계로 옮겨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통제보다 개방, 안정보다 실험, 제도보다 창조적 파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개방하고 시장과 기술이 스스로 균형을 찾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존하는 기업이 바로 미래의 금융 주권을 갖게 될 것이다. 창조적 파괴를 통과한 자만이 새로운 신뢰의 질서를 지배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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