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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빚투 시대

‘검은 수요일’ 이후, 시장으로 쏟아지는 돈

by 꽃돼지 후니

최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폭발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2025년 11월 5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88조 2709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또 한 번 경신했다.
전일 대비 무려 1조 4000억 원 넘게 증가한 수치다.
이는 단순한 자금 유입이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집단 심리가 ‘기회’로 전환된 신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현상이 ‘폭락 이후’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10월 말 코스피가 장중 6% 넘게 급락하자, 오히려 개인들은 저점 매수에 나섰다.
하락장에서 공포보다 ‘기회’를 본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순매수는 AI·반도체·에너지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장기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의 또 다른 면에는 ‘빚투 시대의 재등장’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신용융자 잔고, 즉 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이 25조 8225억 원을 기록하며 2021년 9월의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이는 개인이 단순히 주식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 레버리지를 활용해 공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들어 새로 발생한 신용융자만 10조 원 이상 특히 이번 주에만 3조 원이 급증했다.

시장은 이미 ‘빚투의 재점화 구간’에 들어섰다.


빚투 시대가 된 배경 — “돈이 갈 곳을 잃었다”

이번 빚투 열풍은 단순한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예금 금리의 상대적 매력 약화다.
2025년 11월 현재, 주요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2.5~2.6%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기업은행, 신한저축은행, 인터넷은행들이 파킹 통장을 내세워 3%대 금리를 내놓고 있지만, 한도(200만~500만 원) 제한이 있어 실질적 자산 증식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시장금리 상승과 채권 불안이 겹쳤다.
채권 금리가 올라가면 이론적으로 안전자산의 수익이 개선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해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도 손실 위험’이 커졌다.
즉, 예금은 낮고 채권은 불안한 상황에서 개인자금은 상대적으로 ‘수익이 보이는 곳’, 즉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AI 산업과 반도체 중심의 미래 확신이 심리를 자극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각각 한 달 새 28%, 60%나 급등하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폭발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가 매도세를 보이는 국면에서 개인들이 “이번엔 우리가 시장을 지탱하겠다”는 듯 공격적 저점 매수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의 한국 증시는
외국인 매도 → 개인 순매수 → 예탁금·신용융자 급등 → 단기 과열
이라는 전형적 빚투 사이클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증권사에 돈이 몰리는 이유 — ‘레버리지 구조의 완성’

증시 과열의 핵심은 단연 증권사로의 자금 집중이다. 예탁금, 신용융자, 미수금 등 개인 자금이 모두 증권계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① 비대면 트레이딩의 일상화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의 발달로 누구나 실시간 투자와 레버리지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1주 단위 거래’와 ‘신용매수 자동 갱신’ 기능은 투자 문턱을 낮췄지만 결과적으로 ‘위험 감수의 문턱’도 낮췄다.


② 증권사들의 신용공급 확대 경쟁
예탁금이 폭증하자 증권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마진거래 한도’, ‘신용 이자 우대’, ‘단기 스탁론’ 상품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즉, 개인의 ‘빚투’를 사실상 유도하는 구조다.
레버리지 투자 확대가 증권사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③ AI·반도체 테마의 과열 기대감
단기 차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이 AI 반도체, 전력, 로봇, 배터리 등 핫 섹터 중심으로 집중 매수세를 형성했다.
이는 2021년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열풍과 유사한 흐름이다.


금융권의 대응 — “자금을 되찾기 위한 방어전”

증권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은행·보험·저축은행 등 타 금융권은 생존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은행권: 고금리 ‘파킹통장’으로 단기 자금 유치 기업은행의 ‘IBK 든든한 통장’은 우대금리 포함 최대 3.1% 제공 신한저축은행 ‘참신한 파킹통장’ 등 2.5% 전후 상품 확산 KB·신한·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은 앱 중심의 비대면 고금리 통장 출시

보험권: 단기형 저축성 상품과 ‘투자형 보험’ 결합 상품 출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율 보증형 상품 재부각 연금보험과 단기채 연동형 상품으로 안정 자금 확보

핀테크·인터넷은행: 예적금 기반의 ‘하이브리드 투자형 계좌’를 내세우며 주식·채권·예금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 경쟁 본격화. 예금자에게 실시간 이자 지급, 잔액 연동형 수익률 제공 등으로 차별화


즉, 금융권은 지금 “증권사에 뺏긴 돈을 되찾기 위한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 경쟁은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유동성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자금은 ‘더 빠르게’ 돌고 그만큼 시장의 변동성도 커진다.


빚투 시대일수록 ‘이성’이 최고의 무기다

지금의 시장은 흥분되어 있다. 예탁금은 사상 최고, 신용융자는 역대급, 개인의 순매수 규모는 외국인의 매도세를 압도한다.

그러나 시장의 역사는 늘 경고한다.
“빚으로 만든 상승장은, 언제나 더 큰 하락을 부른다.”

단기 조정이 오면 신용잔고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레버리지 구조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2021년, 2018년, 2008년 — 모두 같은 패턴이었다.


이성적 투자란 공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제어하는 것이다.
빚투 시대일수록

수익보다 리스크 한도를 먼저 정하고,

유행보다 비중 관리를 우선해야 하며,

소문보다 데이터를 믿어야 한다.


지금의 시장은 기회의 시간인 동시에,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빚투 시대의 승자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오래 버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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