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두나무 합병과 스테이블코인이 여는 새로운 질서
요즘 한국 금융을 둘러보면,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쪽에서는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USDT, USDC)이 한국 거래소와 오프체인 시장을 통해 조용히 생활권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 사이에 네이버와 두나무의 합병 구도가 등장했다.
겉으로는 “인터넷 플랫폼과 가상자산 거래소의 결합” 정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조를 뜯어보면, 이것은 단순 M&A가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금융 인프라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느냐”를 가르는 분기점에 가깝다.
네이버는 국민 포털·검색·페이·쇼핑·웹툰을 가진 플랫폼 기업이고,
두나무는 업비트(Upbit)를 통해 한국 디지털 자산 거래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인프라 기업이다.
여기에 일본·태국·대만·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LINE 메신저·LINE Pay·LINE Bank,
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 규제 라이선스를 보유한 Upbit APAC,
미국·유럽에서 성장 중인 웹툰·커머스 법인까지 더하면,
합병 이후 이 회사는 “한국 기업”이라는 틀을 넘어 “아시아-글로벌 스테이블코인·디지털 자산 결제 레일을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 주체”가 된다. 이 글의 목적은 단순히 “가능성이 크다” 수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네이버×두나무 합병 이후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어떤 구조적 변화가 바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금융·산업·국가 경쟁력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리하는 데 있다.
먼저, 밖을 보자. 이미 여러 나라는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자산을 “차세대 결제 인프라”로 보고 전쟁을 시작했다.
USDT, USDC, PYUSD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 공급량 2,000억 달러+
블랙록·JP모간·시티 등은 토큰화 국채·예금·예치토큰 실험을 본격화
의회는 GENIUS Act, CLARITY Act 등을 통해 어떤 토큰이 상품(commodity)이고 어떤 토큰이 증권(security)인지 구분하는 시장 구조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어차피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달러 체제 안으로 편입시켜서 미국이 레일을 깐다.”
홍콩금융관리국(HKMA): 핀테크 2030, DART(Data·AI·Resilience·Tokenization) 전략 선언
토큰화 국채, e-HKD, 프로젝트 앙상블(Ensemble) 등 실물 자산·결제 시스템에 토큰화를 박아 넣는 로드맵을 깔았다.
싱가포르는 MAS 라이선스 체계를 통해 글로벌 거래소·커스터디·토큰화 플랫폼들을 규제 아래 끌어안는 전략을 취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을 금지 대상이 아니라, 자국 금융 허브 전략의 핵심 도구로 쓴다.”
일본은 JPYC라는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정식 인가했다.
법적으로는 강한 규제를 걸었지만,
인가를 받은 이후에는 사용은 매우 자유롭게 설계했다.
농가가 메추리알·쌀을 JPYC로 판매하고,
VISA 카드 대금 납부, 팁·기부, 온라인 플랫폼 결제까지 빠르게 확산 중이다.
JPYC 대표의 말은 인상적이다.
“미래 AI 경제권에서 카드와 은행계좌는 AI와 연결되기 어렵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이 AI의 기본 통화가 된다.”
정리하면, 미국·홍콩·싱가포르·일본은 모두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디지털 자산 인프라를 국가 전략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미 한국보다 반 박자, 한 박자 앞서 있다.
한국은 루나·테라 사태 이후 스테이블코인 논의를 사실상 멈췄다가 이제서야 다시 디지털자산 기본법과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논의 중이다.
문제는 다음 세 가지다.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볼 것인가, 개방형(빅테크·핀테크 포함)으로 볼 것인가
한국은행·금융위·국회·여당 간 입장 차이가 크다
그 사이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의존도가 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 거래되는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연간 수십조원을 훌쩍 넘겼고, 이는 사실상 “한국인이 미국 달러 기반 민간 디지털 화폐를 쓰는 구조”다.
국내 법제화는 지연되고, 달러 코인은 더 빨리 확산된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설 자리는 줄어든다. 여기서 네이버·두나무 합병은 이 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반전 카드라고 볼 수 있다.
합병 이후 이 회사가 손에 쥐게 되는 핵심 인프라를 한 번 펼쳐보자.
네이버 페이: 분기 결제액 20조원+
네이버 쇼핑·스마트스토어: 국내 최대 이커머스 트래픽
웹툰·웹소설·콘텐츠: 미국·일본·동남아까지 확장된 글로벌 IP
검색·포털·지도·커뮤니티: 사용자 일상 행동 데이터 축적
LINE 메신저·LINE Pay·LINE Bank: 일본·태국·대만·인도네시아에서 금융·결제·은행 서비스 운영
업비트(Upbit):국내 가상자산 거래 점유율 70~80%,여러 차례 사이클을 거친 리스크 관리·보안·상장 경험
Upbit APAC: 싱가포르 MAS 라이선스,인도네시아·태국 거래소 인가 향후 홍콩·두바이 등 추가 거점 확장 가능성
기술·온체인 데이터·커스터디 경험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국민 생활 데이터 + 결제·커머스 + 글로벌 콘텐츠 +
디지털 자산 거래·커스터디 + 아시아 규제 라이선스”
이 조합은 미국 빅테크(애플·구글·메타), 중국 빅테크(텐센트·알리바바), 일본 빅테크(소프트뱅크)와 비교해도
꽤 독특하고 강력한 포트폴리오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합병 법인이 원화 스테이블코인(KRW-SC)과 달러 스테이블코인(KRW-USD-SC)을 동시에 발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네이버 페이 지갑 안에서:
원화 예치금
원화 스테이블코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자산(STO·RWA)
포인트·마일리지
모두 한 번에 보이고 결제·투자·송금·환전이 버튼 몇 개로 연결된다.
사용자 입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단순하다.
“계좌는 은행에 있지만, 돈을 실제로 쓴다고 느끼는 곳은 네이버 지갑이 된다.”
이 지갑은 은행 앱이 아니라 “생활·쇼핑·콘텐츠·송금·자산”을 한 화면에서 다루는 생활 OS에 가깝다.
LINE과 Upbit APAC 라이선스를 활용하면 한국에서 발행된 KRW-SC는 바로 다음 레일을 탄다.
한국 ↔ 일본 (LINE + JP 규제망)
한국 ↔ 태국 (LINE BK + Upbit TH)
한국 ↔ 인도네시아 (현지 전자지갑 연동)
한국 ↔ 싱가포르 (Upbit SG + MAS 규제망)
이 경우 송금 흐름은 이렇게 바뀐다.
지금: 원화 → 은행 → SWIFT → 현지 은행 계좌 → 현지 통화
이후: 원화 예금 → KRW-SC → 앱 내 송금 → 현지 스테이블코인 or 현지 통화
수수료는 카드·SWIFT 대비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시간은 수초~수분 단위로 줄어든다.
이 구조가 정착되면 한국은 처음으로 “아시아 송금 허브”의 역할을 일부 가져올 수 있다.
네이버 웹툰, 웹소설, VOD, 쇼핑 셀러 그리고 향후 연결될 글로벌 크리에이터(스트리머·유튜버·인플루언서)까지,
지금은 국가별 통화·카드망·PG사·은행 계좌를 거쳐 정산된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정산으로 전환되면, 정산 주기: 기존 1~4주 → 1~2일 혹은 실시간, 수수료: 카드/PG 2~4% → 0.1~0.5%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그 자체보다 글로벌 크리에이터와 셀러들이 “한국형 인프라에 올라탈 유인”이 생긴다는 점이다.
“어디에서 활동해야 더 빨리, 더 많이, 더 편하게 정산받을 수 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네이버·라인·업비트가 깔아놓은 한국형 빅테크 레일”이 된다면 그때부터 한국은 콘텐츠·커머스 시장에서 단순 플랫폼을 넘어 정산·금융 인프라까지 제공하는 플레이어가 된다.
토큰증권(STO)·RWA 법제가 정비되면 합병 법인은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국내 주식·채권·부동산·펀드 → 토큰화 후 부분 소유권 거래
포인트·마일리지·게임 아이템 → 스테이블코인과 스왑 가능 자산으로 전환
이 모든 거래의 결제·담보·정산 단위를 스테이블코인으로 통일
그 순간, 네이버·두나무의 지갑은 단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모든 자산이 모이는 온체인 대차대조표”가 된다.
여기서는 수치를 굵게 못 박기보다는 방향성과 규모감을 보기 위해 간단한 가정을 놓고 시뮬레이션해보자.
한국 카드 결제 시장: 연 1.4경원(약 1조 달러)
네이버 페이·커머스 거래액: 연 수십조원 수준
한국 내 가상자산 투자자: 약 1,200만명
LINE 글로벌 MAU: 1.8억명 안팎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이후 3~5년 시간 축 가정
네이버·두나무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디지털 결제의 3~5%
아시아 크로스보더 결제의 일부
STO·RWA 결제의 일부
정도만 차지한다고 가정해도 연간 결제·정산 처리액은 수십조원 단위로 올라올 수 있다.
수수료율을 보수적으로 0.15~0.25%만 잡아도 연 수천억 원 단위 수수료 수익 풀이 생긴다.
여기에 준비금 운용 이자 마진, 토큰담보 대출 이자, 데이터 기반 부가서비스를 더하면 실질적인 수익 규모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네이버 페이·웹툰·커머스 생태계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15~20%까지 치고 올라가고,
LINE/Kaia 기반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자리 잡고,
Upbit 기반 STO·RWA 거래가 연 수십조원 구간으로 진입한다면,
이때는 합병 법인이 담당하는 결제·투자·송금 처리액이 연 수백조원 단위로 성장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일부만 수수료·이자·프라임브로커리지 수익으로 가져와도 연 수조원 규모의 신규 매출원이 열릴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다.
“이 시장은 아직 비어 있다. 한국형 빅테크 인프라가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다.”
이제 거칠게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만약 한국이 국회·정부·한국은행·금융위 간 조율을 미루고,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계속 뒤로 미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싱가포르·홍콩·일본 등에서 네이버·두나무·LINE 계열 법인이 외화 스테이블코인을 먼저 발행한다.
아시아에서 이 토큰으로 결제·투자·송금이 돌아가다가 나중에 한국 규제가 정비되면
“외화 스테이블코인 + 달러 패권 구조” 그대로 한국으로 역수입된다.
이 경우 한국은 또다시 “국제 스테이블코인 레일 위에 올라탄 소비 시장” 역할에 머물게 된다.
이미 국내 거래소·해외 플랫폼·암호화폐 네오뱅크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 기반 급여·정산·투자 시도가 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없이 이 구도가 고착되면:
외국인 노동자 급여
프리랜서·크리에이터 수입
기업 B2B 정산
이 영역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기축 통화가 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뒤늦게 등장해도 주요 영역은 이미 달러 토큰으로 선점된 뒤일 수 있다.
규제가 더디고, 정치적 리스크가 크고, 법제화 일정이 안 보인다면, 합병 법인 입장에서도 한국을 중심 허브로 삼을 유인이 떨어진다.
그 대신:
싱가포르를 법적·재무 허브로,
일본·태국·대만을 사용자 허브로,
미국·유럽을 콘텐츠 수익 허브로,
분산된 구조를 설계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기업이지만 실질적인 금융 인프라의 중심은 해외”라는 역설적인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이 모든 시나리오에는 상당한 리스크와 과제가 따라붙는다.
여기서 눈을 감으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금세탁(AML)·테러자금조달(CFT)
외환·자본 유출입 관리
소비자 보호(상환권·준비금 투명성)
금산분리·이해상충 구조
이 이슈를 풀기 위해서는 단순히 “은행 vs 빅테크” 대립 구도가 아니라,
“은행 + 빅테크 + 가상자산 인프라가 각자의 강점을 나눠 맡는 컨소시엄형 구조”
로 가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에 대한 신뢰”가 전부다. 준비금 투명성, 상환 역량, 위기 대응 속도, 거버넌스 구조에서 신뢰를 잃으면 바로 디페깅·코인런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합병 법인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준비금 100%+ α
실시간 온체인·오프체인 공시
외부 회계·보안 감사
상환 메커니즘 자동화
이런 장치들을 전제로 깔아야 한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사용자가 불편하면 퍼지지 않는다.
“지갑 주소·가스비·체인 선택” 같은 용어는 일반 사용자에게는 전부 장벽이다.
네이버·라인·업비트는 이를 완전히 숨긴 상태에서, 사용자는 그냥 “송금·결제·정산”만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조금 더 큰 그림에서 보자.
한국은 전통적으로:
제조(반도체·자동차·전자)
무역
플랫폼·콘텐츠
에서 경쟁력을 보여 왔다. 하지만 금융 인프라·결제 네트워크 영역에서는 국제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네이버·두나무 합병과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는 처음으로 한국이 “산업 + 금융 + 디지털 인프라”를 통합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도체·디바이스: 삼성전자
네트워크·플랫폼: 네이버·카카오
디지털 자산 인프라: 두나무
여기에 스테이블코인·토큰화 금융까지 더하면,
한국은 “AI + 디지털 금융 + 실물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어쩌면 유일한 국가가 될 수도 있다.
홍콩·싱가포르·도쿄가 금융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한국은 늘 “후발 러너”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디지털 자산 인프라는 게임의 규칙이 처음부터 다시 쓰이는 영역이다.
여기서 한국이,
규제 합리화
은행·빅테크·핀테크 컨소시엄
네이버·두나무의 글로벌 네트워크
를 전제로 한발만 빨리 내디디면 서울은 처음으로 “디지털 금융 허브”라는 타이틀을 현실적인 목표로 잡을 수 있게 된다.
정리해 보자. 글로벌은 이미 움직였다. 미국·홍콩·싱가포르·일본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테이블코인·토큰화 인프라를 국가 전략에 편입했다.
한국은 아직 출발선에서 논쟁 중이다. 발행 주체, 리스크, 금산분리, 준비금 규격을 놓고 논의만 길어지고 있다. 네이버·두나무 합병은 이 상태를 뒤집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다.
국민 플랫폼 트래픽
글로벌 메신저·콘텐츠·커머스
디지털 자산 거래 인프라
아시아 규제 라이선스
이 네 박스를 동시에 갖춘 곳은 이 기업군뿐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순간, 한국형 빅테크 금융 인프라는 바로 작동할 수 있다.슈퍼 월렛, 아시아 크로스보더 결제·송금, 크리에이터·셀러 정산 혁신, STO·RWA·포인트 통합 자산화
하지만 이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법제화가 지연되고, 국내 갈등이 장기화되면 합병 법인조차 해외에서 먼저 인프라를 구축하고 한국은 나중에 따라가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글로벌 플레이어와 맞먹는 한국형 빅테크 금융 인프라”라고 붙였지만 실제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이 기회를 한국 안에서 먼저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해외에서 먼저 만들어진 뒤, 뒤늦게 수입해 사용하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네이버·두나무 합병 이후의 스테이블코인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시험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