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행경산악회 신년산행 및 시산제

눈 속에서 다시 확인한 인간다움의 가치

by 꽃돼지 후니

2026년 행경산악회 신년산행과 시산제는 처음부터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원래 목적지는 덕유산이었다.
시산제라는 상징성과 곤돌라를 이용한 접근성, 회원들의 체력 부담까지 고려해 선택한 곳이었다.
하지만 곤돌라 탑승권을 사전 예약하지 못하면서 불가피하게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산악회 회장으로서 가장 부담스러운 순간이다.
일정 변경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께 양해를 구하고, 급히 플랜 B를 고민했다.

조건은 분명했다. 눈이 있어야 하고, 기운이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회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산이어야 했다.

그렇게 떠오른 곳이 강원도의 선자령이었다.

다행히 선자령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참석 예정이던 회원들 모두가 공감해 주셨다.
“거기라면 좋다”는 반응 속에서 산이 이미 우리를 받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 위에서 시작된 2026년의 대화

시청역, 양재역, 그리고 죽전정류장에서 20명의 행경산악회 회원들이 버스에 올랐다.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자연스럽게 스몰토크가 이어졌다.

2026년의 각오와 다짐,

산악회를 통해 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각자의 사업에서도 좋은 흐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중 한 회원이 최근 읽은 『친절』이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친절 하나가 주변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을 바꾸고, 그 연쇄 반응이 결국 조직 문화와 사회 전체를 더 협력적이고 안전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내용이었다.

AI 시대가 될수록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연결되지만 정작 인간적인 연결은 점점 줄어든다.
그렇기에 의도적인 친절과 관계 맺음이 더 중요해진다는 말에 버스 안의 공기가 잠시 고요해졌다.

또 다른 회원은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몸의 건강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환경이 있어도 몸이 무너지면 삶도, 사업도 지탱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대화들은 아직 산에 오르기 전이었지만 이미 시산제가 시작된 느낌을 주었다.


폭설 속에서 맞이한 선자령의 얼굴

옛대관령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가볍게 내리던 눈은 어느새 폭설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은 굉음을 내며 휴게소를 휘몰아쳤다.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선두조와 중간조로 나누어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상고대가 펼쳐지며 우리를 단번에 들뜨게 했다.


오랜만에 산행에 나선 몇몇 원우는 조금 힘든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함께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한 분은 무리하지 않고 중도 하산을 선택했다.
그 선택 또한 함께 걷는 산악회다운 판단이었다.


선자령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자리한 곳이다.
예로부터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기운이 가장 센 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지만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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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올린 2026년의 다짐

선자령 이정표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각자가 준비한 소망 카드를 펼쳤다.

2026년의 각오,
개인과 가족의 건강, 회사의 대운, 동료들의 안녕을 서로의 응원 속에서 하늘에 올렸다.

이후 대관령 양떼목장 인근으로 이동해 행경산악회 2026년 시산제를 올렸다.
바람은 거셌지만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안전한 산행과 행복한 동행을 기원했다.

산신령에게 올린 것은 형식적인 고사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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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되살아나는 인간다움

하산길은 눈이 바람에 흩날리며 매서웠지만 나무 사이로 들어서자 오히려 부드러운 위로가 느껴졌다.

눈은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장난치듯 내려왔다.
우리는 그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웃고, 추억을 남겼다.


국사성황당에 들러 각자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강희갑 사진작가는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의 표정을 셔터에 고스란히 담아주었다.

빨간 모자 위에 눈이 붙어 어느새 하얀 모자가 된 줄도 모른 채 걷고 있는 우리 모습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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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후에 더 깊어지는 관계

오후 4시경 다시 버스로 돌아와 능이백숙이 준비된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주인의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든 우리의 흥겨운 덕담 속에서 귀한 돌배주가 테이블을 돌았다.

능이백숙은 진했고, 옥수수 동동주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대화의 주제는 서로에 대한 감사와 축하뿐이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자식들의 결혼 이야기, 서로의 인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모두가 녹초가 된 듯 잠들었다.


휴게소에 잠시 들러 아이스크림과 바나나우유로 오늘의 신년산행을 축하하며 새롭게 출범한 4대 집행부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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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가 산으로 가는 이유

AI는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해진다.
하지만 인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행경산악회는 자연 속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걸음을 맞추고, 작은 친절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관계는 깊어지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2026년의 시작을 눈 덮인 선자령에서 연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진다.

산은 늘 우리에게 말한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그 말을 우리는 오늘도 함께 걷으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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