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왜 걷나요?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나만의 길
직장과 가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기 위해 시작한 국토도보종주. 지인의 작은 권유로 시작된 이 여정은 어느새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타인의 눈치를 보고, 속도와 일정에 맞추다 보니 진정한 '걷기'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혼자만의 걷기, 혹은 마음이 맞는 한 사람과의 동행이었다.
목적지의 재발견
처음 2박 3일 도보종주를 시작했을 때, 하루 30km, 때로는 40km를 걸었다. 목적지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해안 해변을 걷던 후배의 한마디가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왜 꼭 목적지까지 가야 해요? 형, 누가 쫓아와요?"
이 질문은 내 걷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목적지는 단지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날 우리는 삼척항 근처 작은 어촌에서 연탄불에 구운 생선과 막걸리를 나누며,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 누워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느낀 그 해방감과 행복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목적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길 위의 모든 순간이 새로워졌다.
걷기, 나를 만나는 시간
"왜 그렇게 걷는 거야?" 주변의 질문에 처음엔 "그냥 좋아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걷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해요. 이제는 걷기 위해 일하는 것 같아요." 걷지 않는 날이면 몸과 마음이 어딘가 허전하다. 발걸음으로 채우는 시간만이 나를 온전하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내가 보고 배운 것들을 물어본다. 그토록 많은 산과 섬을 다녔지만, 나는 약초 하나, 나무 이름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집중한 것은 오직 길과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나 자신이었다.
이중의 여정
걷는 동안 나의 발걸음은 땅을 딛지만, 마음은 또 다른 길을 걷는다. 물리적인 걸음과 내면의 걸음이 동시에 이어진다. "왜 걷는가?", "지금 멈춰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 쉼 속에서도 다시 길을 그리워한다.
끝나지 않는 발걸음
동해안 해파랑길에서 시작된 여정은 남파랑길, 서해랑길로 이어졌고, 이제는 섬으로 확장되었다. 제주 올레길, 울릉도 해담길, 청산도 슬로길, 욕지도와 사량도의 둘레길까지. 각각의 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걷는 이유는 단순하다. 길 위에서 나는 모든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만난다. 풍경이 선물하는 고요함과 발걸음이 만드는 리듬 속에서 나는 치유되고 다시 태어난다.
매번 길 위에 설 때마다, 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길이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그 부름에 응할 것이다. 걷기는 더 이상 단순한 운동이 아닌, 내 삶의 방식이자 존재의 이유가 되었으니까.
나는 오늘도 걷는다. 쉬기 위해, 그리고 다시 걷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