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이른바 '조국 사태'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취재했고, 그가 장관이 된 뒤엔 그의 정책을 취재했고, 그가 물러나고 기소된 뒤엔 조국 일가 재판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을 사실상 '조국 취재'에 바친 것입니다. (제 모든 기사는 이곳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을 수사했던 검사와 그를 변호했던 변호사들을 만났고, 조 전 장관에게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이 남긴 저서들은 그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이후 모두 사서 읽었습니다. 대학 시절 탐독했던 책들을 그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다시 읽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최소 조 전 장관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진 제 취재의 중심은 조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넘어, 이번 조국 사태를 취재하는 것은 기자에게 의미있는 경험입니다. 조국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고, 이제는 가장 분열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한 취재 기록을 남기려고 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조국 사태의 모습을 설명드리려 합니다.
2011년 '강남좌파' 논쟁을 다뤘던 중앙일보의 그래픽. [중앙일보]
조국이 촉발한, 결국 조국을 띄워준 강남좌파 논쟁
오늘은 조 전 장관이 언론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던 강남좌파 논쟁과 그 내용을 책으로 다룬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저서 '강남좌파'를 다뤄보려 합니다. 전 이 논쟁이 조국이란 사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는 2011년 시작된 강남좌파 논쟁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신문이기도 합니다. (당시만 해도 조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 인터뷰는 물론 시론 기고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책에서 다뤄진 조 전 장관의 변화(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 기고도 하고 참여연대 활동을 했던 학자→2010년 진보집권플랜 출간 이후 盧정부의 사람들과 한창 더 가까워지며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학자)는 지금 다시 돌아봐도 흥미롭습니다.
조 전 장관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1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대담을 다룬 '진보집권플랜'이 출간된 이후부터입니다. 2012년 대선을 1년 앞두고 출간된 책으로 조 전 장관은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조 전 장관은 이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개혁의 절실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명박 정권과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도록 토끼몰이를 했다"(검찰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군부 엘리트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커진 상태와 비슷하다"는 거친 언사를 쏟아냅니다.
지금의 조국을 잊게 한 '진보집권플랜' [오마이북]
진보집권플랜 이후 조국의 변화
이런 조 전 장관의 말은 그로부터 약 1년 전인 2009년 5월 조 전 장관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노무현 구속은 정치적 망신 주기일 뿐'이란 시론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당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도덕과 청렴을 기치로 내세우고 집권했기에 검찰 수사를 계기로 드러난 그의 가족과 측근의 비리는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과 허탈감을 안겨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전 장관은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에도 "촛불 대중에 대한 찬양으로만 흐르면 (진보진영은) 자신이 왜 무능했는지 답이 안 나온다"며 경향신문 기사에서 진보 진영과 비판적 시각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진보집권플랜 이후 한쪽 진영에서 다른 진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조 전 장관이 트위터에서 날카로운 트윗을 쓴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조 전 장관이 학자를 넘어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정치적 논쟁이 분열을 촉발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발간과 함께 그가 강남에 사는 자산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강남좌파 논쟁'도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논쟁 역시 '조국 현상'을 설명하는, 조국에 관한 논쟁 성격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한 선배 기자는 "조국은 참 겸손했고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가 트위터에 쓰는 글을 보며 '왜 조국이 왜 변했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에서 이런 조 전 장관의 모습을 "진보로 집권하기 위해선 친노를 포용해야 한다는 '그랜드 디자인' 심리가 가동한 걸까"라고 분석합니다.
강남좌파 논쟁을 다뤘던 조선일보의 칼럼. [조선일보 캡처]
보수 언론도 이때부터 조 전 장관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강 교수가 '강남좌파'에서 언급한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일보에선 "새로운 좌파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 책에서 "진보(좌파)가 밥 먹여주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해방 이후 수십 년간 우파는 '밥 먹여주는 유능함'으로 시대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젠 '밥 문제'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며 조 전 장관을 견제합니다. 지금도 동아일보에서 조 전 장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김순덕 논설위원은 당시 '분당우파 vs 강남좌파' 라는 글에서 "자기 딸을 외국어고를 거쳐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키고는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은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각을 세웁니다.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당시 조 전 장관이 언급한 그 딸이, 이번 '조국 사태'의 중심에 선 조민씨입니다. 2010년 조 전 장관 인터뷰했던 이종탁 당시 경향신문 사회에디터는 "그의 딸은 외고를 거쳐 대학 이공계에 진학했는데,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렇게 언행일치의 토마토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각성과 추구, 그 자체만으로 의미있다고 그는 본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 한계는 결국 2019년 조국 사태의 촉발점이 됩니다.
조 전 장관은 이 시기에 최민희 전 의원이 말했던 '초엘리트' 서울대 법대 교수에서 진보 진영의 '대변인'이자 가장 중요한 화자로 등장합니다. 당시 저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조 전 장관에게 환호했고, 또 그를 보며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을 지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를 지지하든, 혹은 견제하든, 언론은 조 전 장관을 키워줬습니다. 지금 조 전 장관은 언론을 적대시하고 소송을 하며 각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를 키워준 것도 언론이었고,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선) 그를 죽인 것도 언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 전 장관은 그 누구보다 언론을 잘 활용하던 학자였습니다.
조국 전 장관 취재를 위해 읽었던 그의 책중 일부. [박태인 기자]
저는 2010년 진보집권플랜 이전의 조국 교수와, 2010년 진보집권플랜 이후 정치판에 뛰어든 조국 교수,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민정수석을 했던 조 전 수석과,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뒤 검찰 수사를 받았던 조 전 장관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이 '강남좌파' 논쟁을 돌아보면 조국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합니다.
조 전 장관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팬과 안티가 가장 많은 교수이자 정치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에서 "교수 개인의 신분일 때 괜찮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국은) 저절로 검증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조 전 장관은 그 누구보다 혹독한 검증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 검증을 했던 언론인 중 한명입니다. 다음 글에선 그가 받은 '검증'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