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안전가옥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여기에 다시 포스팅하면서 눈에 거슬리는 표현들은 조금 수정했다.
마스크에 손씻기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시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착실히 하루 하루가 지나, 갑자기 목련이 피더니 어제는 개나리가 다 졌더라고요. 그렇게 어느 덧 3월 월간 안전가옥의 마감날이 되었습니다. 네, 저는 마감 당일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3월을 되돌아보니 저는 대체로 정신없고, 당황하고, 분노한 채로 보낸 듯 했습니다. 일하는 클레어로서, 엄마의 딸로서, 친구들의 친구로서, 구독자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으로서요. 3월은 매주 약국에서 2개의 마스크를 사는 급격히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고,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고, 영화관에 갈 수 없었고, 공연들은 취소되었고, 대신 집안에 잘 숨어서 예약한 휴가 일정을 꼼꼼히 취소하고 지구 반대편의 친구들을 걱정하는 달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3월에 뭘 했다고 써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분명히 마음은 뭐가 되게 화도 나고 괴롭고 하긴 했는데. 저는 어릴적부터 괴로웠던 시간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는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 달을 통째로 잊어버린 것일까.
아무튼 그래도 뭐라도 써야하니, 메멘토의 마음으로 3월 한 달 간 시청한 넷플릭스 내역을 살펴 보았습니다. (*혹시 본인 내역이 궁금하신 분, 데스크탑 버전으로 접속해서 계정>프로필>시청기록 에서 보실 수 있어요)
에피소드 단위의 것들을 프로그램 단위로 합쳐보면 이렇습니다.
방구석 1열 / 아는 형님 / 메디컬 폴리스 / 와인 컨트리 / 쥬랜더 / That 70’s show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모던 패밀리 시즌10 / 토르:라그나로크 / 스파이 / 주걸륜의 주유기
이 중 채 5분도 보지 않은 주걸륜의 주유기를 제외하고, 카테고리를 좀 더 나눠서 보면 이렇습니다. 장르 분류는 imdb 기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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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TV쇼 > 예능 > 방구석 1열
한국 > TV쇼 > 예능 > 아는 형님
미국 > 영화 > 코미디 > 와인 컨트리
미국 > 영화 > 코미디 > 쥬랜더
미국 > 영화 > 액션, 코미디, 범죄 > 스파이
미국 > 영화 > 액션, 어드벤처, 코미디 > 토르:라그나로크
미국 > TV쇼/시트콤 > 코미디 > 메디컬 폴리스
미국 > TV쇼/시트콤 > 코미디, 로맨스 > That 70’s show 시즌7
미국 > TV쇼/시트콤 >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 모던 패밀리 시즌10
일본 > 영화 >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가족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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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니까요. 3월 한 달은 기억도 다 못할 정도로 복잡한 마음으로 지냈다 생각했는데, 봤던 콘텐츠를 살펴보니 너무 코미디 매니아 그 자체여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코미디도 뭔가 풍자라던가, 알아듣기 힘들게 배배 비꼰 것들 보다 정직한 슬랩스틱과 분장, 우당탕탕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서 머쓱했네요. 약자를 차별하면서 웃음을 만드는 적폐에 가까운 코미디도 분명히 있었고요. 이야기 만드는 회사 직원인데, 그래도 좀 멋지고 웅장하고, 아니면 어렵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그런 걸 봤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럼 월간 안전가옥 처음부터 다시 써야 되는데..
제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아시겠죠. 어둡고 힘든 마음 잠깐이라도 잊게 해 줬으니, 2020년 3월의 저에겐 어떤 것보다도 좋은 콘텐츠가 아니었을까 싶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고결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만 ‘지켜야 할 콘텐츠'는 아니라는 것. 어쩌면 저희가 만드는 이야기들도, 한 명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여러 명이면 더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나저나 4월에 출간하는 조예은 작가의 단편집 <칵테일, 러브, 좀비>가 참 좋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