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셀카도 안 찍게 됐고, 사진을 잘 안 찍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딱히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30대 중반 이후가 되면서부터, 살도 찌고 배도 나오고 해서 점점 사진 속에 내 모습이 싫어졌던 게 아닐까? 싸이월드 시절, 페이스북 시절만 하더라도 장난스러운 표정이나 행동으로 셀카도 찍고 지인들과도 재미난 사진들도 많이 찍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웃음과 표정, 장난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고단한 현생을 사느라 그런 여유가 사라진 탓이리라.. 사진을 찍으면 고단함과 피곤함 혹은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나 자신을 보는 것이 나조차도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내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인스타그램 알고리듬에 의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스튜디오 프로필 사진 계정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사실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 전에 그 계정을 알게 되었고, 나도 풀코스 완주를 하면 기념으로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말하자면 러닝복을 입고 스튜디오에서 찍는 프로필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고, 헬스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바디 프로필 사진 같은 그런 류의 사진이었다. 계정에 올라온 사진은 러닝 하는 사람, 바이크 타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등 다양한 분야의 운동하는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들이었다. 러닝을 꾸준히 한 덕분에 이제 나도 어느 정도 배도 들어갔고, 나도 카메라 앞에 설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달까?
풀코스 마라톤을 두 번이나 완주했지만, 생각만 하고 있었지 <촬영할 결심>은 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찰나, 인스타그램 스폰서 링크로 운동하는 사람들 프로필 촬영해 주는 스튜디오 광고가 떴다.
<오픈 기념 이벤트 X만원 기간 ~11/17까지>
내가 유심히 지켜보던 다른 스튜디오의 반값보다도 싸다. 물론 보정컷 몇 장을 주는지 인화를 해주는 것에 추가요금이 있는지, 또 그 금액이 얼마인지 등은 보지도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기본 가격이 싸다는 것에 벌써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게다가 위치도 우리 집에서 가깝다. 스폰서 링크 광고가 이렇게 무섭다. 내가 관심 있는 토픽의 광고를 내게 보여준다. 게다가 나의 위치 데이터까지 수집해서 최적화된 광고를 말이다.
결국 작가님에게 연락을 해서 스케줄을 잡았다. 원래는 주말에 찍으려 했지만, 본인이 사실, 러닝 크루의 러닝장이며 토요일에 트레일 러닝이 있다고 안된다고 하셨다. 그다음 주 주말은 시간이 되신다고 하셨는데, 왠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 사진을 찍겠다는 나의 결심이 흔들릴까 봐 주말 전, 주중으로 스케줄을 잡고 바로 사진을 찍었다. 러닝 하는 사진작가님이라니 뭔가 더 내적 친밀감도 생기고, 이곳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시간에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준비한 러닝복과 러닝화를 신고 촬영을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사진의 컨셉도 정해야 했고, 이것저것 포즈, 시선 처리 및 표정 연기까지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웨딩사진 촬영이 생각났다. 아 맞다. 그때도 꽤 힘들었었지.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는 서로 어색해서, 포즈도 굳은 느낌이었고 얼굴 표정도 좀 인위적인 느낌이었는데, 1시간 남짓 촬영하는 동안 자연스레 러닝에 관한 대화를 하다 보니, 나의 마음도 점점 편안해졌고, 사진에 표정도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작가님은 올해 시카고 마라톤 대회를 다녀왔고, 일본에서 열린 대회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해외 대회를 한 번 꼭 가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해 주셨다. 아, 듣고 보니 진짜 가고 싶어졌다. 시카고였는지 일본이었는지는, 주로에 응원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있었다고....
작가님 러닝 이야기 들었으니, 이번엔 내 차례였다. 물론 작가님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말이다. 평소 러닝하는 루트이야기부터, 이번 공주, 춘천 마라톤 이야기까지 내 얘기를 술술 풀어 나갔다. 우리 둘은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루트를 뛰는 사람들이었는데, 작가님은 새벽 러너, 나는 야밤 러너였다. 신기하다, 신기해.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시간에 뛰는 러너라니. 우리는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작가님도 춘천 마라톤 대회 완주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나의 얼굴 표정도 좀 자연스러워졌고, 대회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중간중간 랩탑으로 찍힌 사진들을 보여주셨는데, 역시 처음에 찍은 사진보다 나중에 찍은 사진으로 갈수록 표정도 포즈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작가님의 요구대로 찍은 사진보다는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찍힌 사진들이 오히려 더 잘 나왔다. 썬그라스 쓰고 찍은 사진은 후반부에 찍은 사진인데 확실히 눈을 가려주니 시선처리에 대한 부담감이 확 줄었다. 포즈/ 시선 / 얼굴 표정 이 3박자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중 한 가지 변수가 빠지니까 훨씬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보정해서 내가 가질 사진 3장을 골랐다. 100장이 넘는 사진 중에 3장을 고르는 것도, 카메라 앞에서 포즈 잡는 것만큼 어려웠다. 아, 무얼 고르고 무얼 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결정장애 있는 편이라 작가님에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물어보고, 어렵게 사진 3장을 골랐다. 흑백 사진 하나, 전신 샷 하나, 썬그라스 사진 하나 이렇게 나름 밸런스를 맞췄다.
촬영을 하고 나니 찍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은 촬영만 늦출 뿐...
바디 프로필 찍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갔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 지금.
잘 알지도 못하고 그동안 이해 못 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