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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Aug 08. 2020

콩나물 지옥철에서 사람에 치이면, 시민 맥주로 향합니다

퇴근길 동네 맥주집, 시민맥주

평일 출근길 지하철 1호선, 도처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어젯밤에 과음을 했는지, 눈이 반쯤 풀린 사람도 마스크 위로 손을 얹고 하품을 연신 해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근 시간 5분을 아끼려 머리카락을 반쯤 덜 말린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자리합니다. 모두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 발맞춰 섭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작은 목표를 세웁니다. 빈자리에 앉기입니다. 출근길을 선 채로 보내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그만한 곤욕도 없습니다. 자리에 앉으려 열차를 한 차례 먼저 보내는 전략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은 작은 전쟁을 준비합니다. 페르시아 군을 맞이하는 아테네 병사들처럼 자세를 추스릅니다. 앞사람과 거리를 반 보 안으로 줄이고, 스크린 도어가 열리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뱅! 문이 열리면 잰걸음으로 자리를 찾습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뒷사람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여유를 부리는 순간, 전투적으로 자리를 찾아 헤매는 아테네 전사에게 당합니다. 앗, 제가 당했습니다.      


"어차피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닌데 왜 그랬어"

출근길에 지나친 사람들을 다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빈자리를 뺏긴 저를 친구 놈은 나무랐습니다. 다시는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인정사정 봐줘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금요일 밤 연트럴 파크나 점심시간 여의도만 봐도 눈에 훤합니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럴 일, 희박합니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다시 마주치게 되면, 뭐...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하겠죠.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 만날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회사 미팅이 될 수도, 술자리 합석이 될 수도, 소개팅이나 팀플, 대외활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피로합니다. 만남이 많으니 피곤합니다. 스무 살 때 어느 자리에든 빠지지 않던 지인이, 어느 날 인맥 다이어트를 선언하는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합니다.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하다는 답이었습니다.      


여러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피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시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다시 볼 일이 없다는 의견입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매번 대면할 이유가 없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풍화되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러니 그간 시간을 충분히 보냈던 이들을 찾습니다. 별 탈 없으면 꾸준히 만납니다.      


관계가 풍화되는 동안 우리는 사람 만나는 재미를 잃습니다. 생면부지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잊습니다. 서로가 주제를 막론하고 내뱉는 말들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순간,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내 생각과 관점이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인지하는 순간들입니다. 피곤함이 이 재미를 덮어 버린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람들과 만날 자리가 몇 없다는 상황도 슬픕니다. 물론, 비용을 내고 모임에 참여하는 서비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만 원 돈을 내면서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퇴근길 콩나물 지옥철에서 내리면, 시민맥주를 찾습니다. 동네 맥주집입니다. 사람에 치이면서 집에 왔지만, 다시 사람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맥주와 사람이 있는 공간입니다. 바 테이블에 앉으면 이야기가 끊임없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거는 일이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영화를 하다가 맥주를 빚는 사람,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맥주를 팔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람 만나는 재미가 여기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라이언 라파엘리(Ryan Raffaelli) 부교수는 독립서점이 다시 일어서는 까닭을 3C로 정리했습니다. 서점은 사람을 모으는 공간(Convening)이고, 이들은 직접 책을 추천(Curation) 하며, 지역 시민들에게 사랑방(Community)으로 자리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책을 맥주로 바꾸면, 시민맥주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이름은 시민 커뮤니티 브루잉(Citizen Community Brewing)입니다.


시민맥주 하우스 비어는 삼위일체입니다. 맥주 맛을 균형 있게 잡았다는 의미에서 삼위일체이지만 사실 아닙니다. 삼각형 각 꼭짓점에는 맥주와 사람, 공간이 있어서 균형이 맞습니다.


세 잔째 삼위일체를 시키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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