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a Aug 14. 2024

호된 한국 신고식

폐렴이라니요


저 친구들은 퇴원하는데 왜 나만 못 해?


지난 목요일에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초1 어린이가 저녁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금요일 오전에 또 초1 어린이가 들어왔고 그 둘은 친구였다. 한 병실의 세 어린이는 원인불명의 폐렴으로 모두 입원한 거였다. 우연이라기엔 이 전염병이 좀 무섭다. 꼬꼬가 열과 염증을 잡는 동안 그 아이들은 기침을 엄청 하기 시작했고 폐렴이 어느 정도 호전되어 월요일에 퇴원을 했다. 우리 아이는 고열과 높은 염증수치는 잡아 내렸지만 폐렴 증세에 호전이 없어 여전히 입원을 명 받았다. 폐렴 부위가 제일 아래쪽이고 흉수도 있어서 약을 써도 객담배출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다. 퇴원한 아이들처럼 이틀 밤을 토하듯 기침해야 낫는 거라면 우리 아이는 아직도 멀었다.


열과의 치열한 전투


아이는 지지난 토요일 오후부터 약간의 기침과 미열이 났다. 기침은 심해보이지 않은데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39도를 향해가는 추세라 월요일에 소아과가 열자마자 달려가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해열제와 감기약을 처방받았고, 열이 안 내리면 요즘 폐렴이 유행하고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해열제를 써도 정상체온으로 돌아오지 않아 화요일에 또 소아과에 갔다. 폐렴 판정을 받았고 일단 가장 유행한다는 마이코플라즈마균에 대한 3일 치 항생제 처방을 받고 폐렴균검사를 받았다. 수요일 점심 무렵 알려진 8개 폐렴 원인균 중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전화로 들었고 아이의 열은 낮에도 40도를 간 보고 있었다. 오후엔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전혀 안 떨어지는데 하필 다니던 소아과는 오후 휴진이어서 주변 소아과(해열수액 없음)와 이비인후과(소아에게 놔주길 꺼려함)에 전화를 돌려봐도 해열수액을 맞을 순 없었다. 응급실을 가려던 참에 열이 조금 내려서 일단 조마조마하게 밤을 보내고 목요일에 또 소아과 열자마자 갔더니 2차 병원으로 가서 입원하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난 언제 퇴원해

2차 병원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이틀 전보다 폐렴 부위가 조금 넓어 보였고 흉수도 차 있었다. 입원하여 피검사를 하니 염증수치도 11(정상은 0.3 이하)이 넘었다. 열을 잡는 데는 이틀이 걸렸고, 바이러스 검사도 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일단 알려지지 않은 폐렴 원인균에 걸렸을 것 같다며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치료를 병행했다. 벤토린과 풀미코트레스퓰 용액으로 네블라이저 치료도 하루 세 번씩 했다. 열이 떨어진 후 아이는 아주 멀쩡하고 가끔 기침을 할 뿐인데 일요일에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다시 해보니 염증수치만 1점대로 좋아지고 폐렴상태는 그대로라고 했다.


같은 방 아이들이 퇴원한 뒤 의사 선생님 회진 때 물으니 상태가 호전되지 않더라도 나빠지지만 않으면 수요일에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퇴원하고 싶으면 지금 퇴원해도 되는데 치료 효과가 지금만큼은 아닐 거라고. 지금도 폐렴이 그대로라는데 지금만큼도 아닌 게 어떤 건지 두려워서 알겠다고 했다.


입원생활은 단조롭고 심적으로는 편하기까지 했다. 열이 안 내려 전전긍긍하며 해열패치 붙이고 네블라이저하고 미온수로 닦아내는 와중에 안 먹으려는 밥 준비를 하며 동동거릴 필요가 없으니까. 정해진 시간에 주는 밥과 약을 먹고, 하라는 치료를 하고, 열이 나면 샘들이 해열주사든 약이든 알아서 해주시니 나는 그저 아이 시중만 들면 됐다. 하루에 2리터씩 맞는 수액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어린이를 따라다니고, 주사를 오른손으로 옮긴 뒤(72시간 지나면 주사 위치 교체함)로는 밥시중을 들어드렸다. 아이가 손등에 정맥주사를 맞고 있으니 놀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같이 오목을 두고 보드게임을 하다가 결국 아이패드를 열어 거기서 전자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이메일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하루를 보냈다. 어린이도 오일쯤 머리를 안 감으면 아저씨 냄새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쯤 지나니 나도 밤에 세 시간 정도 통잠은 잘 정도로 간병 생활에 적응이 됐다. 물론 남편이 낮에 몇 시간이라도 교대해 줘서 버틸 수 있었다.


드디어 수요일. 아침부터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았다. 흉수는 없어졌고 폐렴도 많이 사라졌는데 왼쪽에도 살짝 퍼져 있어서 퇴원 후에도 약물치료는 계속해야 한단다. 학교도 가고 일상생활 해도 되는데 당분간 기침을 할 거라며 운동은 금지당했다. 중요한 건 완전히 낫기 전에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폐렴이 재발하면 상당히 안 좋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8월 말에 코로나 최대 유행이라는 기사를 어제 본 거 같은데 아이를 과연 학교에 보내도 될지 심히 걱정스럽다.


폐렴은 합병증이 더 무섭다고 해서 입원하긴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난 화요일에 폐렴 판정받았을 때 바로 입원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가 며칠만 버텼으면 미국에서 늘 그랬듯 열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일찍 입원했으면 이박삼일로 끝났을 것을 애매하게 버티다 아이를 더 고생시킨 것 같아 속상하다. 앓다가 8월의 절반을 보내고 금요일엔 개학이다. 한국 신고식 한번 거하게 한다.


아, 실비보험이 없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입원비는 25만 원도 안 나왔다.

놀랍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