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르라는 거겠지?
작년은 우리 가족의 '유치원 적응기'였다. 큰 애가 5살이 되어, 5세 반(만 3세 반)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글쎄 아이 엄마인 내가 성인 ADHD와 주의력 결핍 장애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인 게 문제였다. 유치원 입학설명회는 겨우겨우 맞춰서 갔는데, 이미 인기 유치원들에 대해서는 다둥이 추첨전형이 끝났다고(!). 큰 애를 일반 추첨을 넣었는데, 다행히도 당첨이 되어서 보내려던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다. (종일반이 잘 되어 있고, 셔틀 편한 동선으로 다니는 곳..) 후후 초보 엄마라 선생님들이 좋은지, 유치원이 좋은지 이런 걸 객관적으로 비교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우리 애가 다니는 유치원에 대해 믿고 맡길 만큼의 신뢰를 주는 곳이다, 감사하다, 정도의 감상은 갖고 있었는데. 초보엄마 입장에서는 가끔 당황스러운 이벤트들이 발생했다(우리 유치원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교육목적의 동식물을 집으로 보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컵에 담긴 개운죽, 개나리 가지 같은 것들이 족족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를 다소 당황하게 하였던 것은 바로 달팽이..!! 우리는 아직 식구를 늘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식탁 위에 놓인 뽀얀 달팽이는 이미 입양 수속이 완료되었단다. (유치원 알림장에, '달팽이를 키워보아요' 안내문이 있었다;;) 남편의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이 녀석은 '백와 달팽이'란다. 남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신이 난 것 같기도 하고?) 쿠팡에서 달팽이집과 코코 피드(달팽이가 살 흙을 따로 팔았다. 쿠팡엔 정말 없는 게 없음..), 그리고 달팽이집 꾸미기용 통나무 모형과 나무/바위 모형을 구입했다. 야채와 계란 껍데기를 주기적으로 주면 된다고 하여 우선 어설픈 지식으로 달팽이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보내온 식물들은 안타깝게도 말라버리거나 유명을 달리했는데, 달팽이(이름: 푸딩이, 뽀얀 속살이 밀크푸딩 색)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 새로 돋아난 달팽이 껍데기는 저렇게 색깔이 연한데, 처음 돋아났을 때는 껍질이 연하니, 달걀 껍데기를 넣어줘야 된다고 한다. 딱딱한 거 먹고 딱딱해진다고(..). 그리고 당근을 먹으면 주황 응아를, 애호박을 먹으면 연두색/연노란색의 응아를 한다. 섭취한 음식물의 색이 그대로 나타남.
아이를 기르며 어른이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없었으면 언제 이렇게 달팽이와 동거를 하며 달팽이의 생태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겠는가. 다만 이게 푸딩이 가 가장 행복한 삶의 형태인지 잘 모르겠다. 방생을 해주거나,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하나? 번식력이 어마무시하다고 하는데. 유치원에서 온 달팽이 길러주신 분이 계시면,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