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된 삼베이불을 꺼냈다

더위야 물렀거라!

월요일 새벽, 전화가 왔다. 한 시가 넘도록 엎치락뒤치락거리다 어찌어찌 까무룩 잠이 든 터였다. 비몽사몽인 채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새벽 네 시 십일 분, '엄마'라고 뜬 푸른 화면이 울어댔다. 지금 여긴 어디인지, 왜 이 시간에 벨은 울리는지 잠시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엄마 왜?"

생각은 연결되지 않지만 입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아무 말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방이었다. 그제야 건넌방에서 온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또 넘어지셨나?'

불안한 생각이 앞섰다.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나 허든거리며 엄마방으로 갔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다행이었다. 일단 넘어지신 것은 아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혼자 가볼래도 안 되겠길래 불렀다. 잠도 못 자게 해서 어쩌끄나..."

"아냐, 엄마 혼자 가시다 넘어지는 것보다 훨씬 나아... 날 부른 건 정말 잘했어..."


지난밤, 저녁까지 잘 드신 엄마는 갑자기 어지럽다고 하셨다. 어지러워 눈을 뜨기 힘들다며 침대에 누우셨다. 당장 화장실을 부축해서 모시고 가야 했다. 한숨이 나왔다.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보다 앞서간다. 이러다 못 일어나시면 어떡하나 싶다. 이석증이나 뭐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에 이비인후과를 가야 하나, 고관절 수술을 받았던 종합병원을 가서 뇌 MRI를 찍어야 하나, 그러다 또 입원하는 건 아닌가? 생각은 혼자 내달리고 있었다. 점심때 콩물국수를 해드렸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내가 직접 검은콩을 갈아 만든 것인데? 삶은 달걀과 오이도 오늘 삶고 심지어 내가 밭에서 딴것인데... 게다가 콩물국수를 함께 먹은 나와 아들은 멀쩡한걸? 그럼 오늘 처음 켠 에어컨 때문인가? 혹시 냉방병? 하지만 엄마는 열이 오르지도 않았고 단지 어지럼증만 호소하셨다. 지나 봐야 후회한다더니 그래도 비록 워커를 밀고 다닐지라로 당신 발로 혼자 움직일 수 있음이 정말 고마운 일이었구나. 웬만해선 에어컨을 틀지 않는 나 때문에 온열질환에 걸렸나? 밤새 저러다 못 일어나시면 어떻게 하지? 생각은 불길처럼 일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번져갔다. 1시가 넘어 누운 잠자리에서 나는 별별 생각을 다하다 겨우 잠들었었다.


새벽 호출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엄마는 미안하다며 얼른 가서 자라고 손등으로 밀어보였다. 뒤척거린 흔적이 여실한 부스스한 흰머리, 틀니를 뺀 입가 주름이 오늘따라 몹시 지쳐 보였다. 잠이 뭐라고 나는 또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병원에 가자니 싫다고 하신다. 그럴 만도 하다. 치아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렇고, 척추압박골절과 고관절 골절로 입원했을 때도 하루 이틀정도로 끝나는 병원생활이 아니었다. 병원,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고 물리는 곳일 것이다. 엄마는 병원에 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증을 갖고 계셨다.


누룽지를 끓여드리고, 혹시 더운 날씨에 영양 섭취가 불량해서 그러신가 싶어 소고기 불백을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멀쩡한 식구들이 포식을 했다.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지만 여전히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는 것을 보더니 아들이 할머니는 분명 더위를 드신 것 같다고 한다. 지켜보니 우리들 눈에도 그래 보였다. 요즘 며칠 계속되는 폭염에 온열질환에 걸리신 듯했다. 일단 이온음료를 드리고 선선한 곳에서 푹 쉬시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약을 타다 드리던 병원에 가서 어지럼증약과 함께 식욕을 돋워 줄 수 있는 약을 지어왔다. 화요일 저녁은 고기를 구워 상추쌈에 몇 점 하시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엄마에게 들러붙었던 더위가 물러났다.


며칠 계속되는 땡볕, 좋은 것도 있다. 이불 빨기 제격이다. 이방 저 방에 장마로 눅눅했던 이불을 순서대로 빨아 널었다. 저녁이면 바싹하게 마른 이불 개는 맛이 여간 아니다. 엄마에게서 더위가 빠져나간듯해 보이는 오늘 아침, 아이들 어릴 적 잠시 꺼내어 덮었던 삼베이불을 꺼냈다. 손으로 주물럭거려 물기를 대충 짜내 널어놓으니 빳빳하니 까실거림이 좋다.


"여름에 가면 여러 사람 고생해야..."

당신의 몸이 여느 날과 다른 작은 차이라도 나는 날이면 마지막에 닿는 부분이 죽음인가 보다. 조금 살만한 몸이 되고 보니 웃으며 말을 꺼내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초여름, 더위에 산일하느라 고생했던 일이 생각나신듯하다. 그리고 당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 해는 대마를 심었잖냐, 근디 어떤 호랭이 물어갈 놈들이 밤새 몰랭이를 싹 끊어가부렀어. 지서에 신고해봤자 뭔 소용이 있간디? 그래도 아까워서 그것을 뒷동네 삼굿에 사정사정해서 쪘당게. 글고 껍데기를 벗겼는디 짧고 가지가 많다고 잘 안 사가서 치를 냈당게.

응, 너도 저릅대는 생각이 난갑다. 삼을 벗겨내고 나믄 하얀 줄기가 나온디 그것도 쓸 일이 많어야. 불도 때고 산밭 울타리로도 쓰고, 엮어서 삼일 할 때 방석으로도 썼어야. 엉덩이도 안괴이고 신속했당게.


삼을 심어 낭패를 본 뒤로는 그냥 삼꼭지를 사다가 했제. 보성까지 가서 삼 세 꼭지를 사 갖고 머리에 이고 오다 버스를 만났는디 안 실어 줄라 그래. 버스기사한테 사정사정해서 큰길까지 싣고 와서 또 머리에 이고 걸어왔제. 그건 일도 아녀야. 고것을 물에 불려놨다 삼머리를 도패로 도파야제, 삼을 째야재, 그것을 잇어야제, 물레를 돌려서 돌것에 올려야제... 그 후로도 얼매나 해야하는디...

너도 재미삼어서라도 삼을 삼아본적이 있는가 모르겄다. 울어머니가 느그들은 겁나게 사랑시스와했어야. 나헌티는 한 푼 안줌서 느그들 아침에 학교 갈람서 꼭 뭐 사야 헌다고 손 내밀믄 빈손으로 안 보냈응게. 왜 그냐고 물어봉께 울어머니가 그러드라. 나 죽은 담에 뫼뚱에 와서 술 한잔이라도 놔달라고 그런다고. 꽁것은 없는 뱁이다, 다 헌 만큼 돌려받는 뱁이라고. 죽으믄 다 쓰잘데기 없는디 말이여. 울어머니도 갈 때 내가 지은 삼베옷을 입고 가셨제. 잉 너도 봤구나 울어머니 가실 때 곱디곱게 입은 옷을...

오메 이야기 허다 본께 어디까지 가부렀다냐. 물레는 돌렸드냐? 잇어놓은 삼실을 물레를 돌리는 것은 튼튼해 지라고 실을 꼬는 것이제... 돌것은 기억 안 나냐? 열십자 모냥에 네 귀퉁이에 막대기를 꼽아갖고 그 틀에 물레에 돌려 감아놓은 꾸리를 풀어 실타래를 만드는 것이제.

저라고 삼베이불이 될라믄 아직 멀었어야. 느그들은 이상 저 삼베이불을 쉽게 생각허는디...내가 이라고 말로 씨부려도 한참인디 손꾸락 움직여감서 헐 때는 몇 날 며칠이 걸렸것냐. 썩는 거 아닌 게 농사지어감서 일 없을 때 허다 본께 작년에 사 온 삼꼭지가 올해 삼베가 되기도 했당께. 칠월백중에 베틀을 채리기도 했응게 대중없었어야.

인자 고무통에 양잿물을 풀어 삼실타래를 넣어 아랫목에 앉혀놓고 군불을 때야제. 긍게 방이 따뜻하믄 실것방 맹키로 뜨근하단 말도 허지야. 양잿물이 나오기 전에는 잿물로 했어야. 짚불이나 콩대 때고 남은 재 말이다. 뜨근헌 아랫목을 사나흘이나 차지허고 있던 삼타래를 꺼내갖고 다시 방맹이로 두들겨 빨아서 콩 갈아놓은 웃물에 담궜다가 말리믄 뽀얀 실타래가 되제. 쉬운 것이 있다냐... 겨울에도 했응게. 고무장갑이나 있었다냐... 방맹이로 얼음깨서 맨손 집어넣어 가면서 했응게. 그때 허고 살은 거 이야기하믄 아시라해야. 어찌고 그렇게 살았는지...

하얗게 된 실타래를 다시 돌것에 끼워갖고 실을 내려서 새려 놓제. 그때 골무 낀 손으로 보푸레기를 훑어감서 끊어진 데는 잇고 그러제. 음마, 너도 기억나냐? 느그들 머리카락에 실것 보푸래기가 붙을 만도 허제. 돌것 하나가 온 방을 차지하고 있는디 느그들은 그 아래서 누워 자야 했응게.


아직도 멀었어야. 인자 베를 날고, 베를 매 갖고 , 베틀을 채려 짜야제. 잉, 너도 기억나냐? 그 모래는 베를 날 때 실타래가 엉키지 말라고 씻어 말린 깨끗한 모래를 부었제. 냉중에는 모래 대신 쌀로도 했제. 그믄 실 구멍에 줄줄 삼실이 딸려 들어가서 도투마리에 감게 되제 . 삼베 맬 때 보믄 그 삼을 삼은 사람을 알 수가 있어야. 실이 고르디 고르믄 잘된거제. 보리쌀죽을 푹 써갖고 치자물을 들여 솔로 바름서 보푸래기도 들러붙고 실도 짱짱허게 맹그는 것이 베메기제. 음마, 너는 왕겨불에 고구마 구어먹든 생각이 나드냐? 그것도 재미제. 풀을 바름서 말리느라 은근헌 왕겨불을 위에서 풀질을 허제. 긍게 고것은 가실에나 허기 딱이제.

인자 베틀을 앉혀갖고 짜믄 되야. 감아논 실꾸리를 북통에 넣고 오른발에 끌신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함시로 그사이 날줄 사이로 북통을 넣고 바디로 다져감서 베를 짜야 끝나는 것이여. 밥만 먹고 베틀에 앉어 하루 죙일 짜야 서른 자였어야. 스무자를 한필로 쳤응께 부지런히 짜야 한필 반이였제. 그래도 얼매나 재미진지 몰라야. 말코라고 알랑가 모르겠다. 북통이 들락날락 허는 새에 짜진 삼베를 허리춤에 매진 말코에 감는 것이여. 잉, 방망이 맹기로 생겼제. 앉어서 팔이 닿는 저 먼디까지 북을 왼쪽으로 넣고 바디 한번 탕 내려쳐서 실을 다지고, 또 오른쪽으로 북통을 넣어갖고 바디로 탕 내려치다 보믄 어느새 내 팔이 안 닿는디까지 베가 짜지제. 그믄 뒤허리에 차고 있는 부테랑 연결된 고리에 말코가 있는디 거그다 삼베를 짱짱허게 감제. 말코에 감긴 베만큼이나 내배도 불렀응께... 야야. 시방 맹키로 삼베가 비쌌으먼 진즉에 부자가 됐게야... 들이없는디 한필에 삼만 원도 받고, 오만 원도 받고 그랬제. 음마, 시방까지 다 해야 한필에 그값이어야... 베를 팔아야 그때 딱한번 돈이 들어오는 것이랑게. 그래도 내가 짠 베는 서로 가져가겄다고 했어야. 글믄 뭣허냐 이라고 늙어부렀는디...

여덟살 되던 해 부터 보리쌀 갈아 밥해 묵고, 울어머니 따라 삼 째러 댕겼응께 몇 년이다냐... 삼, 허믄 징글징글허다야. 그래도 긍께로 밥 묵고, 느그들 갈쳤응께 잘했제...

잊어불까 봐 근디야... 안방 질 윗 서랍에 내가 입고 갈 삼베옷이 있어야. 옥상 우게 장독 항아리 속에 꾸리도 몇 개 있을 것이다. 너는 하도 에릴 적부터 까마귀괴기를 묵었는가 깜빡깜빡했쌍께 내가 느그 동생헌티도 언니헌티도 말은 해놨다만은... 울어머니 옷도, 느그 아버지 옷도 내가 다 맹글어 입혀드렸어야. 비싼 옷이믄 뭐 헌다냐. 죽으믄 끝인디. 그래도 참 삼실맹키로 질기게 살았어야...



언니들이 시집갈 때면 혼수이불을 꾸리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 나도 꼭 해줄거지?' 다짐을 받아내던 그것. 째고 삼고 잇고 물레와 돌것에 돌고 돌아 베틀에 앉혀지기까지, 풀껍데기가 실이 되고 베가 되기까지, 수만 번 엄마 손을 거쳐야 했을 삼베가 고운 자수를 입고 혼수 이불로 내게 온 지 어언 25년.

대보름도 아닌 한여름, 삼베이불에게 더위를 팔아본다

내 더우 니 더우 맞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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