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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y 22. 2024

11년 만에 앞산을 오르며

"갱년기, 너  이것까지  해봤어?"

친구에게 물었다.  

"내  2~3년  뒤를  네가  밟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이다음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친구는 큰 것이  지나면  아주  자잘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익숙해질 것이라  말했다. 겸손해진다.


지난 사월, 엄마는 봄바람이  싣고 온 향수병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더니  기어이 당신 집으로 가셨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한 보따리 싸서 가시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의 눈물 바람이 싫어서 쓸데없이 화를 냈다. 아주 더운 여름이면, 아주 추운 겨울이면, 다시 우리 집에 오시라고 말했지만 당신은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당신 집에서 살다 가시고 싶은 것인지, '아이고, 또 와야?'하고 웃으셨다.

 세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자라니 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엄마까지 이어 달리듯 내 손을 필요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맘껏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했건만 꼭 쥐고 있던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머릿속이 텅 비었다. 빈 속을  채우려  책을 사서  쌓아놓았지만 아주 가끔 읽었다. 잠이 먼저  찾아왔다. 오후 서너 시쯤이면  계획한 듯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  눕기를  청했고 , 한두 시간  쉬어야 그 기운으로  저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초여름, 그렇게 여유롭다 못해 지리한 날들은 계속되었다.


지난해, 몸 안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더니 해가 이울 때쯤 왼쪽 어깨는 옷을 입을 때마다 씩씩댈 만큼 사람을 사납게 만들었다. 살살 다스려야  했다. 봄이 되자  대상포진에 걸렸고 청바지를  꽉 채우던  허벅지가  제법 쉽게  들어갔다. 갱년기를 앓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그거 다  사치라는 듯 코웃음 치던 내게 껍데기가  입꼬리를  비틀어 보였다. 왼쪽 어깨가 어지간하면 오른쪽 팔꿈치가 삐끗해서  주사를 맞았고 그것도 견딜만해지면 소화가 안 되는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갑작스러운 휴식에  몸이 악을 썼다. 외부세력과 전쟁으로 잊혔던 내부 문제가 여기저기 터져 한꺼번에 들끓는 모양새였다.


그날도 겨울바람이 구멍을 낸 날갯죽지와 고구마 몇 개 먹은듯한 명치끝을 부여잡고 낮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병원을 다녀와서도 수그러질 줄 모르는 통증에 기껏 생각해 낸 방법은 왼쪽 날개에  엄마가  쓰던  찜질팩을  덮어 소파에  밀착시키고 오른쪽 팔꿈치는 의사가 쥐어 준  보호대로  감싸고  앉아  1일 1 영화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시린다와 지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지독하게 느끼며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동안  앞산에  희끗희끗 피어오르던  아까시 꽃이 푸른 잎새에 얹혀있다 바람에 스러져 사라져 버렸다. 소파에 앉아 서쪽 끝으로 논에  하나 둘  물이 잡혀가며 방바닥에  콩기름을  발라  윤을 내듯 논바닥이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 것도  멍하게 그저 바라보았다. 하지만 넋을  놓고 있는 중에도 익히 알고 있는 시간은  절로 보인다. 이른 새벽 물꼬를  트고 논 닦달을 마친 후 빛바랜 쑥색 작업복 바지 차림으로 삽 한 자루  메고  돌아오던 아버지, 그 장화에  씻겨있던  새벽이슬과 흙냄새 같은 것. 오월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거실 창으로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산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이 아파트에 들어온 지 1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말이다. 앞산 등성이에 있는 산책길과  우리 집의 높이는 얼추 같다. 언젠가  작은 아들이  여자친구와  걷다가  집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이걸 본  엄마도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는 걸로  보아  앞산 높이는  우리 집 눈높이와  거의 같다. 점점 저 산속이 궁금해졌다.


다섯 시쯤  모자를 쓰고  이어폰도  꽂았다.  산 초입 계단을  오르는데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 등을  밀었다. 반쯤 오르다 핸드폰을 껐다. 얼굴에 닿는 바람과 산내음이 그렇게 만들었다. 계단 양옆으로  져가는  찔레꽃과  아까시 꽃잎의 마른 향이 코를  간질이고  오동나무 커다란 이파리와 애기손 같은  단풍잎이  팔랑거리며  손인사를  했다.  푸르름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이 몸에 배어 들었다.

닳고 닳아 제 빛을 잃어버린 보도블록 틈새로  새빨간 뱀딸기 열매가  열리고, 갓길에  돌나물 노란 꽃도 보였다. 똘감나무 노랗고  조롱조롱한 감꽃이  초록 잎새를 머리에 이고 아기 새부리처럼  살과 공기를  들이마시고, 뽕나무 열매가 터럭이  부숭부숭한 애벌레처럼  몸집을  불려 가는 중이었다.

작은 산이었고 평일 낮시간이어서인지 산책하는 사람 한 명 없어 맘껏 해찰을 부려가며 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라곤 산책길 오른쪽 양파와 마늘이 심어진 조각 밭에서 밭일을 하던 아저씨 한 분이 전부였다. 요란스럽지 않고 인적이 드물다는 것, 썩 마음에 들었다. 


 허기질 땐  자연을 걷는 것만큼 좋은 그릇이 없다.  아주 오래전, 면소재지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으며  도로 왼쪽 으로  흐르던 강과 길가에  피고 지던  작은 꽃들과  멀리 겹쳐 앉은  산들을  바라보며  따담은  먹거리들. 그렇게  40여분을 걸어  집에  닿으면  두둑해지곤 했던 마음. 

이미 져버린 아까시 마른 꽃향과 상큼한 숲비린내, 햇살이 나뭇잎과 부딪혀 볶는 냄새, 까치와 산비둘기소리, 멀리 무논에  왜가리  걷는 소리. 산이라 이름 짓기 애매한 앞산에서 5월 모둠 세트를 들이마시고 두둑해져서  내려왔다. 느릿한 걸음으로 내려와 다시 아파트 주변 산책로까지 걸으며 쥐똥나무 꽃에 취해 꿀을 따느라 정신없는 벌을 한참 쳐다보았지만 시간 반 정도 걸렸을 뿐이었다.


이사 온 지  11년 만에  오른 57미터  앞산을 다시  거실에  서서 마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작은 산은 남생이 모양이다.  어항 한쪽에  넣어놓은  돌 위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등을 말리던 남생이를 닮았다. 왼쪽은 살짝 들어  올린 남생이 머리와 같고 오른쪽은 짧은 꼬리처럼 땅에 닿아있다. 평평한 등에는 조각 밭을 가꾸느라 나무들을 베어서인지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도  등성이 너머로 펼쳐진 들녘을 살짝 볼 수 있다. 일부러 일어나 오른쪽 끝을 보니 남생이 꼬리에 이어진 농경지는 여름 맞을  준비로 흙냄새가 웅성거렸다. 가끔 남생이 머리 부분인 왼쪽 끝 소나무밭에 사는 백로와  왜가리 두세 마리 흰 비행을 하며 지나간다. 그리고 눈에 띄게 큰 향나무 한그루가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  서있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향나무는 고흐의 사이프러스처럼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는 듯하다.


똘감꽃, 뱀딸기, 돌나물, 뽕나무열매, 찔레꽃 너머  들녘

 잠시 숨 쉬는 게 힘들어서 57미터  앞산 허파를  빌렸다. 앞산이 나를 바라보듯  나도  앞산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요즘  자연을 빌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늘려가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밤, 남생이 머리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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