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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캄보디아 시엠립4~5

4~5일 차 -툭툭렌트 및 앙코르와트 일일투어 & 에필로그

희랑의 세계여행 에세이#94 <아시아> 캄보디아 4, 5 - 앙코르와트 일일투어

오전 4시 반쯤, 기상 후 후다닥 씻고 툭툭과 대기해있던 왓나를 만나 앙코르와트로 빠르게 향했다.

오전 5시가 좀 지난 이른 시간에 앙코르와트 매표소에서 본 관광객들

당시 USD20달러였던 앙코르와트 입장료. 지금은 37달러라니 거의 2배 가까이 인상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관광지인 앙코르와트인 만큼, 보통 투어 당일에 숙소에서 이렇게 4시 반 전후로는 일어나야 할 것. 앙코르와트 개별 및 소규모 투어로 줄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시작하려면 이렇게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서 가야 하며, 단체 관광은 프리패스 같은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


앙코르 와트 [Angkor Wat] 원어명 អង្គរវត្ត
요약: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문화의 대표적 유적

앙코르 톰(Angkor Tom)의 남쪽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Angkor)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Wat)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사원의 주요 건축물은 웅대한 방추형 중앙사당탑(中央祠堂塔)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은 익랑, 그것을 둘러싼 3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은 입체적이고 중앙은 약간 높다. 회랑의 높이는 제1회랑(215×187m)이 4m, 제2회랑(115×100m)이 12m, 제3회랑(60×60m)이 25m이다. 세계의 중심이며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須彌山)은 돌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쌓아놓았으며, 높이 59m의 중앙사당탑의 탑 끝에서 3중으로 둘러싼 회랑의 사각탑 끝은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추(四角錐)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 사원의 뛰어난 미술적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장식(石彫裝飾) 등 모든 면에서 앙코르왕조의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장(全長) 760m에 이르는 제1회랑벽(回廊壁)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형한 샘물[泉水],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주랑(柱廊)과 탑 등은 뛰어난 구조물이다. 조형에서는 하늘의 무희(舞姬) 아프사라스, 여러 개의 머리를 마치 부채처럼 치켜든 커다란 뱀, 창문·기둥의 장식조각 등이 돋보인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 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 그때부터 다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하면서 전화(戰禍)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굴고 대부분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완전한 복구는 어려운 상태이다. 1982년 집계를 보면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되었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1983년 이 유적지의 복원을 위해 조사단의 파견을 캄보디아 당국에 통보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코르 와트 [Angkor Wa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이 유적이 위대한 이유는 오랜 역사와 웅장한 규모는 물론이고 오래전에 거대한 규모로 지어졌음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도의 정교한 건축기술에 있다. 또한 사람의 손에서 방치되는 역사를 겪으며 덩굴과 나무 등이 사원의 벽을 뚫고 자라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건축물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며, 문명의 무상함이라는 불교적 메시지와 인간과 자연이 큰 시간 단위에서 결국 어우러지는 우주의 질서를 몸소 나타낸다. 앙코르 와트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지만, 건물의 축을 정동 쪽이 아니라 시계 방향으로 0.5도 틀었다. 이는 실수가 아니다. 주야평분시(晝夜平分時), 즉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 무렵 서쪽 통로에서 일출을 보면, 땅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사원의 중앙 탑 꼭대기를 지나가는 듯이 보인다. 만약 건물을 정동향으로 지었다면 태양이 떠오르면서 남쪽 하늘로 움직이기 때문에 중앙탑과 태양이 틀어져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없다.

직접 보면 장관이다.
중세 크메르인들의 고도의 지식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앙코르 와트 - 나무위키>
앙코르와트 유적지들이 보이는 인기 장소인 호숫가에서 촬영한 모습

열정! 사진촬영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


이 일출 장면을 보려고 30분 넘게 있었으나, 볼만했다. 꽤나 장관이었다. 12세기 초, 이 시대를 호령한 앙코르왕조의 멋진 건축물이 일출에 비쳐 그때의 위엄을 나타내주는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을 다른 관광객들도 공감하듯, 그때 모두가 약속했던 것처럼 꽤나 고요했던 순간으로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저, 저 정교한 자태를 바라만 봐도 된다. 여행할 그 당시에는...


캄보디아, 시엠립 및 앙코르와트를 완벽하게 공부하고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엔 일단 가서 그 순간을 오롯이 보고 느끼고, 이렇게 사진 및 영상으로 담아놓으면 또 이렇게 다시 그때를 되새기며 학습도 해가며 글로 적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앙코르와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나무위키에 정리된 글과 유튜브 등의 영상들을 보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앙코르 와트 - 나무위키>


실제로 지금 그때 생각해 봐도 당시 지긋이 여유 있게 다녔다. 돈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다가 떠났고 이 여행지에선 일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났던 것'이었기에.

그렇게 이 앙코르와트에 들어서 유적지를 봤던 기억 또한 떠오른다.

내가 역사가나 가이드처럼 이 문양들을 아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선 이렇게 조각돼 있는 것으로 봐서 왕의 말을 안 듣고 이런 일을 안 할 수 없는, 당시 왕권의 힘이 상당했다는 것부터 짐작할 수 있겠다. 그건 바로 문양에서도 왕으로 보이는 자를 다른 사람들이 추앙하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으며, 또한 이런 벽화를 세밀하게 조각해 남기려는 크메르족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아래 벽화들을 보면 볼수록, 굉장히 세밀하다.

앙코르와트의 상징인 세 개의 뿔 탑에도 올랐다
이게 아까 그 올라간 세 개의 뿔 탑이 상징인, 캄보디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앙코르와트>

이곳 현지인 가족 및 친지들로 친근하게 보여 한 장 찰칵. 난 이곳의 역사이자 세계에서도 유명한 건축물을 보러 온 거지만, 어느 나라나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는 편...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걸 조금은 읽을 수 있는 거 같다. 더운데 어른들 따라 나와서 고생이 많구나 얘들아...

당시 32도 이상의 더위를 나타내듯, 왓나의 툭툭이에 있던 아이스박스 생수와 콜라


앙코르와트 메인도 봤겠다, 나간 지 7시간쯤 됐겠다 하여 호텔로 귀가해 수영장으로 풍덩 후 열을 좀 식혔다.

이후, 어제 음식이 맛있었던 숙소 근처 해산물 식당으로 와서 왓나도 사주면서 난 또 볶음밥으로 점심을 든든하게 해결했다. 여행한 나라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다면 추천하는 방법. 어느 나라를 가서도 볶음밥 맛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특이한 향신료만 기호에 따라 넣거나 빼달라고 주문 시 요구하면 된다.

점심도 먹고 좀 쉬다가, 왓나와 함께 앙코르와트 주변 유적지 투어로 이어갔다. 일부러 툭툭으로 30분 이내로 앙코르와트를 갈 수 있는 숙소를 잡았고, 그래서 이렇게 이동하는데 부담이 없어 좋았다.

이런저런 이름의 유적지들이 곳곳에 있었다. 사실, 지금 유적지들 이름이 완전히 기억이 나지 않기에 곧 이 내용을 정리한 유튜브를 보고 다시 더 숙지할 예정이다. 그렇게 더 이해가 된 내용은 이 글에 업데이트될 것. 어쨌거나 이 유적지들은 캄보디아 시엠립 주변에서 크메르족들의 생활상이라고 보면 된다.

분명 곳곳에 멋진 유적지가 있고, 당시엔 책으로 각 유적지와 대조해가면서 열심히 보곤 했었다.

왓나는 이렇게 본인 나라의 역사를 열심히 탐구했던 내게 최선을 다해 운전하고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려 노력했다

코끼리는 캄보디아는 물론, 이웃한 태국에서도 추앙받는 존재. 동물이 나라와 여러모로 닮은 게 참 묘하다

사람들 줄이 엄청 길어서 가진 않았던 곳 - 줄을 서서 올라가 전망대를 보려던 줄로 기억

그렇게 4시간 정도 오후 반나절에 앙코르와트 주변 유적지 곳곳을 거의 다 둘러보았다. 이윽고 저녁때가 되었고 시내 호텔로 돌아와 짐을 다 챙긴 후, 다시 왓나의 툭툭을 타며 시내 곳곳 또한 보았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부모가 하는 장사를 도우려 옆에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마, 캄보디아의 굳센 여자아이가 아닐지!

참,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이곳을 뺄 수 없다. 바로 평양랭면관!

다소 맹숭맹숭했던 맛의 비빔냉면

북한 정권과 특히 친분이 깊다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 그래서 이렇게 북한음식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었다. 인사하며 들어가는 내게, 응대했던 북한 여성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사진은 찍어선 안 된다고 했던 거 같고, 그래서 이렇게 음식 사진만 남았다. 이 비빔냉면 음식 맛은 별로이었지만 그저 먹을만했고, 20여 분 그 식당에 있었던 그 시간 이 음식 맛보다 북한 여성들을 봤던 기억이 더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제 왓나와의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친절하면서도 씩씩하고 굳센, 책임감이 있는 이 캄보디아 청년을 난 왓나 이 친구에게 보았다. 이렇게 그 나라를 여행할 때 만난 현지인을 통해, 그 나라가 다가오며 그렇게 쌓은 추억으로 평생 그 나라를 기억하게 된다. 캄보디아에서는 왓나가, 나에겐 그랬다. 6년 전쯤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은 왓나는, 이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나는 주변에서 캄보디아 혹은 시엠립을 여행할 때 언제든 그를 자신 있게 추천해 주곤 한다.

아래는 그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기록했던 글과 사진. 지금 내가 기억하는 내용 그대로, 그대로다.

왓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렌 표정/ 공항에서 헤어짐에 아쉬웠을 때의 표정

[인스타 사진들로 보는 지난 세계여행✈️ Instravel 프로젝트]

[My Last World Travel✈️ to View on Insta; Instravel the World Project]

<시엠립 최고의 툭툭 가이드 왓나; The Best Tour Guide of Siem Reap, Vannak>

 비행깃값 포함 숙식까지 여유롭게 50만 원 이내로 씨엠립을 6일간 여행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한 건 이 Vannak 덕분이었다. 물론 이 친구를 소개해 주신 분은 따로 있지만. 여행비의 1/3은 뱅기표, 1/3은 숙식비로, 그 나머지가 현지 교통비와 관광비 등으로 지출했는데 왓나를 고용한 하루와 반나절은 그것을 잘 충당했으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5박 중 3박을 한량처럼 숙소에서 쉬며 역사 공부를 하고, 부랴부랴 마지막 이틀이 남았을 때 꼭 보고 싶은 곳만 효율적으로 여행하고 싶었다. 그러다 때마침 숙소 근처 마트에 식량을 사러 갔는데, 기적처럼 현지 한국 목사분 부부를 만났다! 난 이때다 싶어 그분들께 남은 기간 동안 효과적인 여행 방법을 여쭤보다가 훌륭한 툭툭 기사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영어가 가능했고 20대 초반!!으로 젊어 체력이 좋았으며, 매너도 괜찮고 센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긍정적이었다(쓰고 보니 거의 완벽했던 듯!).

 사진들은 그날 왓나와 마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공항에서 헤어질 때의 모습이다. 우린 이틀 동안 친구가 되어 앙코르와트와 시엠립 근교 관광지와 유적지를 알차게 돌았다. 참 책임감 있고 성실한 친구였고, 다시 시엠립, 캄보디아에 가도 이 친구의 툭툭을 이용하고 싶다. �

<희랑의세계여행기>




<에필로그>
위 여행 후기에 조금 덧붙여보자면. 뚜렷한 독립 왕조로 발전해 온 인도차이나반도의 국가들 중 캄보디아가 있었다. 현재도 태동하고 있는 이 캄보디아라는 나라. 내가 최근 알아본 캄보디아는 40여 년간 장기집권해온 전 훈센 총리, 그의 장남이 올해 7월 정권을 이어받아 이끌고 있다는 뉴스를 봤었다. 그간 국제뉴스에서 캄보디아 관련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내가 여행했던 6년 전보다 발전했다 하더라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다. 또한 그 사이 코로나도 있어 서민의 타격은 더 컸을 터...
 그 사실을 반영하듯 이 글을 쓰는 시점인 한 달 사이에 한국 공항에서 앙코르와트를 여행할 수 있는 시엠립(시엠레아프) 직행이 없어졌다. 때문에 프놈펜을 경유해가는 비행깃값도 비싸졌으며 인프라가 더 좋지는 않아진 점을 여행자는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캄보디아는 역사, 특히 앙코르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추천할 만한 여행지이며, 인근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를 여행할 사람에겐 같이 들르기 괜찮은 여행지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난, 열심히 그날 그리고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사는 왓나처럼 캄보디아의 미래를 응원한다.
희랑의 세계여행기


이것으로 아시아편 여행기는 마치고, 다음 대륙은 오세아니아. 호주 여행기로 글을 이어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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