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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에세이] 10_이스탄불의 핫한 명소들을 가다

10일 차 - 카라쿄이, 오르타쿄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손자님을 만나다

여행 10일 차, 다시 이스탄불로 왔다. 아시아의 동양 및 유럽 서양의 경계인 유라시아를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이어주는 곳. 역사적으로도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제국 등의 세계적으로 용맹했던 투르크 인들의 기상을 떨쳤던 중심지인 이곳. 면적도 인구도 서울의 세 배만큼이나 크다는 이곳 이스탄불! 이렇게 수식하는 것이 많은 이스탄불이니만큼 터키에 오기 전부터 사실 관심도 컸으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근처에 Otogar Istansyonu 메트로에서 첫날 간 숙소로 다시 출발
Aksaray(악사라이) 주변에서 내려 T1 트램으로 환승하기 위해 이동
이른 새벽녘의 이스탄불 시민들
알라신에 이끌려서인지 뭐 하나 잃어버리지 않던 내가 여기서 책을 읽어버렸다

99%의 터키인들이 믿는다는 이슬람교를 빼놓고 터키를 논할 수는 없다. 이슬람교는 지금의 터키공화국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교[Islam, ─敎]
기독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 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이라는 용어는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기독교 등의 셈족계 제종교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도 수는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9억 정도이고, 국가 총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여 ‘이슬람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만도 43개 국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교(Islam敎) 또는 회교(回敎)로 불리며, 6·25 전쟁 때 UN 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터키군에 의하여 1955년 소개되어 2009년 기준으로 약 3만 5천여 명의 한국인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슬람교 [Islam, ─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행을 하면서 또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종교이다. 난 다양한 종교와 종교인을 접하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거 같다. 다양한 각 종교의 믿음, 그리고 신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난 우스갯소리로 '존중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깊숙이 자리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종교에 대해 복잡하게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 단순하게 적어본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이라는, '1000명의 현자가 전하는 인생의 30가지 지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한 장점들이 언급된 걸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하나는 내가 삶에서 힘들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단체 생활을 통해 그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믿음으로써 삶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장점들이 있기에 현자들은 대체로 그들이 가진 종교와 함께했다는 것. 난 이런 종교가 가진 장점들에 대해 공감하며, 내 삶에서도 긍정적으로 지속 적용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

일출 즈음의 아름다운 빛들이 멋진 모스크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멋을 내고 있었다.

그 유명한 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지나
여기서 한국인 부자도 만나, 부자간의 사진도 찍어드리고

숙소에 도착해, 이번엔 조용히 푹 쉬고 싶어 조용한 스탠더드룸을 잡았다.

옥상 루프탑에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샤워 후 11시 반쯤 자서, 3시 정도에 깰 정도로 아주 깊은 꿀잠을 잤다. 그만큼 피곤했던 거다. 상쾌하게 깨선 나갈 채비를 하고는 괴레메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이스탄불의 홍대'라는 Karaköy 카라쿄이(카라쾨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이스탄불 대학에도 가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예쁘고 멋진 핫플레이스에 가서 인테리어도 좀 보고 청년들이 그곳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더 알고 싶었다. 사진을 잘 촬영할 수 있는 곳으로 독특하고, 멋진 패션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좀 있는 곳을 여쭤봤더니 이곳을 알려주셨다. 늘 '어디를 갈 것인가'라는 문제에, 본인의 주관에 철저하게 충실히 여행하는 게 좋은 거 같다.


또, 다양한 이스탄불의 각 대중교통을 상황에 맞춰 잘 이용해야 한다. 이스탄불에서는 구글맵보다는 사실 mobiett (모비엣), movit(무빗) 어플 등으로의 이용이 더 정확하다고도 했다. 나 또한 당시에 무빗과 구글맵을 번갈아 쓰면서 교통 상황을 체크했다. 규모는 서울의 3배, 비공식 인구까지 포함하면 2배가량 된다는 이스탄불의 교통 체증은 서울보다 더하면 더했다. 4시 반에 숙소에서 나가 예정대로라면 카라쿄이까지 6시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실제론 7시가 넘어 도착할 수 있었다.

T1 트램. 지상으로 달리는 열차
그 유명한 <갈라타 다리> 위를 지나고
마침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초저녁에 버스에서 1시간을 보낸 거 같다

그렇게 카라쿄이에 도착! 이 젊고 활기찬 거리의, 독특해 보이는 곳들에선 멈춰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반갑게 인사해주던 현지 아저씨

이슬람교 외에 믿을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터번(Turban), 모자 등으로 머리를 가린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확실히 청년들이 많이 보이는 거리









LOVE; 사랑이란...


데이트하는 커플이 많았지만
이렇게 혼자 사진 찍으러도 꽤 왔다
여기서 한 컷 건졌다. 찍고 보니 이스탄불 스타일로 변한 거 같았다.






이후 오르타쿄이(Ortakoy)로 이동. 여기는 서울의 신촌 거리 같았다고나 할까. 이곳 역시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이고, 주변에 강 주위로 볼거리와 특히 쿰피르(kumpir)라는 길거리 음식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볼 겸 가보기로 했다.



쿰피르(Kumpir)
꾼 감자에 다양한 토핑을 넣어서 먹는 유명한 터키식 패스트푸드이다. 쿰피르라는 이름은 유고슬라비아 어의 크롬 피르(Krompir)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쿰피르는 감자를 포일로 싼 후 오븐에 넣어서 구워서 만든다. 구워진 감자를 반으로 갈라서 속에 버터나 카샤르 퓌레를 넣는다. [위키백과]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개인적으론 과한 케첩과 마요네즈의 맛이 강해 통감자와 어우러지는 맛이 나질 않았다. 두 소스를 정말 조금만 뿌려달라고 하고 먹으면 한국인 입맛에 맞을 듯. 성인 둘이 먹기에도 많고, 간식으로 셋이 먹으면 딱일 듯싶다.


<담배카페> 로도 유명한 터키. 난 비흡연자라 패스했으나, 신선한 모습이었다

이후 저녁식사 때가 되어 들어간 중동 음식 전문 레스토랑. 평도, 외관도, 음식도 괜찮았다

대가족이 시켰던 음식. 어마어마했던 양

이렇게 시켜 보았다. 음식 역시 성향을 따라가는지 난 가리는 음식이 없어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는 편이다. 현지 중동 음식은 두바이에서 먹어본 이후로 오랜만인데 먼저 오른쪽 위에 공빵 같은 밀가루 음식이 나오고, 양고기 음식은 미트볼같이 요리했으며 야채는 살짝 익혀 조리했다. 나름의 맛이 있었으나 조금 심심한 편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이런 음식 또한 잘 먹을 수 있던 내 입맛에 다시 한번 고마웠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선지, 더 배부르게 다 잘 먹었던 거 같다. 시리아에서 왔다는, 친절한 웨이터의 서빙 덕분에도 기분 좋게 먹고 팁을 얹어 주고 나왔다.



시간이 늦어, 다시 술탄 아흐메트 주변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우연히 들어가 찍은, 영화라도 찍어야 했던 신비로웠던 풍경!
어쩌다 보니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잡았다


이 택시 기사님과의 사연이 하나 생겼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기사님의 손자라는 택시기사님

그 당시에서 69년 전, 6.25 전쟁(한국전쟁)에 할아버지가 참전하셨다고 하신 기사님을 만났다. 번역기가 돌아가 한글로 표시됐던 순간,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소름이 돋았었다. 어쩌면 사실, 그 덕분에 나도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해 내릴 때, 감사함을 팁으로 드렸다.

이분과는 이후로 지금까지 종종,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한다.

기사님께 들은 후문이지만 터키 택시 역시, 한국에서처럼 우버 도입을 막기 위해 파업을 종종 한다고 하셨다. 그걸 들은 나는, 어디에서나 그 상황에 맞춰 효과적으로 정책을 도입해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밤에 숙소에 들어가서 루프탑에서 멍하니 이스탄불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동서양의 훌륭한 조화를 나타내는 것처럼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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