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이스탄불 땅을 밟은 지 9일 만에, 돌고 돌아 다시 이곳으로 와 다음날 맞는 새벽녘 아침. 전날 1시 반쯤 넘어서 잤지만 어김없이 일출 즈음 7시에 일어났었다. '희랑의 여행 습관'답게. 그리곤 호텔 루프탑에 올라가 이렇게 또 멋진 보스포루스 해협의 광경을 감상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생각해보라. 자고 일어나 조금은 몽롱한 정신으로 평소 한국의 일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감사함이란...
좀 흐린 날씨였지만, 이럴 땐 나름대로 이스탄불 특유의 그 몽롱한 매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룸에 돌아가 좀 자다가 조식 시간에 맞춰 다시 나왔다. 어제부터 묵고 있는 이곳은 공식 명칭은 호스텔이지만 호텔로 부르며, 뒤지지 않을 정도의 청결함과 시설을 갖춘 곳. 2.5성급 호텔 정도라 하면 좋을 거 같다. 조식은 무난한 터키식 뷔페로 나왔다. 터키식 반찬인 몇 가지의 메제, 그리고 시리얼로 구성해서. 가볍게, 하지만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난 뒤에 난 그제야 의자에 앉아서 오늘 이스탄불 3일 차 관광 계획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참, 이때쯤 여기서 반가운 얼굴. 남자! 현수 동생을 또 만났다. 우린 서로 보자고 약속을 한 사이가 아니었다. 아마 카파도키아에서부터 적었을 텐데 거기서 한 번, 페티예에서 한 번, 또 이 숙소에서 한 번 총 세 번이나 우연히! 본 이 기막힌 인연은 현수와 필연이었던 거 같다. 그 덕분인지(?) 우리는 안부를 교환하면서도 잘 지내고 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 '뜨아!' 하며 경악(?)을 금치 못 했었다. 터키에서 여행하는 기간이 같다고 해도 한 번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행에서의 이런 의외의 재미와 인연은 즐거움과 묘미를 준다.
오늘 일정은 어느 정도 전에 생각해뒀었지만 날이 흐려 다시 변경하기로 했다. 다시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괴레메 사장님과 이스탄불 여행을 했던 지인들에게도 이것저것 묻는 한편 포털사이트들에서도 검색하면서 오늘, 그리고 출국인 내일 계획까지 세밀히 계획을 세워갔다. 먼저 여러 책들의 각기 다른 곳을 소개하는 내용들을 개괄적으로 훑고, 후자의 순서대로 덧붙여 가면서 여행을 보다 구체적으로 짰다. 가이드북과 그전에 여행했던 사람들의 정보는 '내가 여행할 그 당시에 바뀔 수도 있기에' 웹사이트나 전화로 한 번 더 확인했다. 예를 들어 박물관 등의 공공장소는 관람 요일이나 시간이 바뀔 수도 있고, 사설 장소나 음식점 등은 폐업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알아보는 게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현지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대강 알아보고 나섰다가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시간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절히 알아보고 검색해가며, 믿을만한 장소와 사람(기관 등에 근무하는)에 물어보면서' 여행하시길 권한다.
그렇게 자리에서 골똘히 여행 계획을 짜면서도 호기심 많은 나는, 호텔 대표로 보이는 분이 사진의 멋진 그림들을 전시하는 걸 힐끗힐끗 보곤 했다. 작품들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난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아직 부족하지만 그런 사진들로 상도 타면서 사진 업무도 하게 됐고, 그것은 또 그림 등 예술 작품의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저 그림들을 하나씩 보고 고민하면서 작품을 가져온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어느 자리에 어떤 그림을 놓을지를 놓고 몇 시간째 고민 중이었다. 이 호텔은 인기가 많았다. 여길 다녀간 사람들이 대체로 좋은 평을 주었고, 그만큼 숙박 예약이 어렵기도 했다. 역시 잘 되는 곳은, 이런 고민들을 늘 하고 개선하려는 그런 노력들에 대한 근거인 거 같다.그곳이 숙박업이든, 음식점이든지...
내가 "메르하~바!" 하며 그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본인이 호텔 대표가 맞다고 했다. 대표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소통을 이어갔다. 나 또한 그가 호텔 대표로서 운영해오기까지 사연을 짧게나마 들을 수도 있었다. 무엇으로 이야기를 하든, 터키 그리고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손님이 추천을 받아 그곳에 묵는 게 그에게는 즐겁고 좋았을 것이다. 나 또한 좋은 터키인 친구가 한 명 더 생긴 것이고,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시설 좋고 쾌적한 숙소에서 묵는 게 좋았다. 그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그는 요리사가 주방에서 요리해주는 위의 음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음식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 음식은 참 맛있었다.
아다나케밥 / 치킨 카세롤
그러다가, 호텔에서 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동행하기로 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술탄 아흐메트 근처에서 멀지 않은, 나름 여러 곳에서 소개된 D레스토랑을 찾아갔다. 들어가니 입구에서 우릴 맞아주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종업원은 우릴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옷! 어서 오세요 옷!"
여기 종업원이 한국말하는 정도면 많은 한국인이 다녀갔다는 거고, 맛은 기본 이상은 할 것이다. 만날 케밥만 먹어와서 질릴 법도 했지만, 이때 시킨 메뉴도 다행히 맛있었다. 터키 음식은 그냥 다 케밥인 거다. 한국어로 하면 다양한 한국 음식이 한식인 것처럼 말이다. 고기와 채소 등으로 어떻게 요리했느냐에 따라 '무슨 케밥'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 그게 그 지역에서 유명해진 레시피를 따서 나온 것도, 조리법으로 나온 것도 있어 다 다르다. 아무튼 난 매콤한 메뉴로 보이는 걸 시켰었다. 이렇게 주문하는 게 가장 무난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다소 느끼한 케밥을 먹을 때, 빠질 수 없는 탄산음료와 함께!
늦은 점심으로 오후 3시 반에 가서, 천천히 다 먹고 보니 4시 반. 이제 배도 부르니, 설렁설렁 시내를 구경하다가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곳에서 이스탄불의 일몰을 보러 출발하기로 했다. 근처 술탄아흐메트 정류장에서 지상으로 타는 파란색의 트램 T1을 타고 보스포루스 크루즈 선착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갈아탄 버스에서 본 귀여운 아이. 사진 몇 장을 찍어 아이의 엄마 인스타로 보내주었다.
원래 일몰 시간에 맞춰 저 보스포루스 투어로 좀 길게 크루즈를 타려고 했었지만, 탑승 시간에 늦어서 투어는 못 했다. 하지만 곧 일몰이 다가올 시간이었고 날은 흐려서 제대로 멋진 일몰을 볼 수는 없을 듯했다. 그래서 투어를 하려고 좀 알아보다가 결국 하지 못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냥 에미뇌뉘(Eminonu)-카라쿄이(Karakoy) 구간을 가볍게 탑승한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투어비보다 저렴한 교통비(수상)로 크루즈를 탔고, 나름대로 최선의 일몰을 봤으니 오히려 만족할 수 있었다!
가끔 마지못해 한 선택이 더 큰 만족을 줄 때가 있다. 이날도 그랬다.
여행에선 항상 정답의 일정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그곳에 있을 때 하는 최선의 선택과 결정이 최선의 정답이 아닐까?
실제 크루즈 탑승 시간은 15~20분이었던 듯. 짧고 굵게 보스포루스를 조망하기에 추천!
카라쿄이(Karakoy) 선착장 주변
날이 흐려 완벽한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크루즈에서 내린 후 카라쿄이 선착장(Pier) 주변이 슬슬 어두워지면서 또 다른 멋진 광경을 담을 수 있었다. 야경으로 어두워지기 전 어스러지는 그 순간, 딱 그때가 또 이스탄불의 황홀한 모습을 담기 좋은 때이다.
그러다 다시 배가 고파질 때쯤, 그 유명한 고등어케밥(Balik Ekmer)을 먹어보기로 했다. 갈라타 다리 아래 요 주변에 한국인에게 유명한, 현지인 아저씨가 있다고도 해서 주변에 몇 곳을 보다가 여기로 들어갔다.
나름 위의 뷰도 보면서 먹을 수 있는 장소. 고등어 케밥은 역시나 '빵 사이에 고등어와 채소를 넣은' 케밥이었다. 근데 '웬걸?'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생각보다 맛있었다. 짭짤하게 간이 된 고등어가 아래로는 채소, 양 사이로 있는 빵과 조화돼 괜찮은 맛을 내주기 때문이었다.
사실, 터키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이름의 케밥을 다양하게도 먹어봤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기억하기 좋은 케밥은 이게 처음이었다. "고등어케밥? 괜찮았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뭔가 단순했지만 명쾌했던 그 맛이 기억이 난다. 묘하게 중독됐던 맛이다. 터키에 다시 간다면? 먹어보고 싶다. 많은 한국인들이 말한다. 그게 뭐라고... 음식은 그저, 간이 충족되면 일단 OK일까? 하하.
하지만 난 그게, 한국인이 그곳에서의 추억이 어우러진 맛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고등어를 잘 먹으니까...
후식으로 디저트와 홍차도 주었다. 가격이 괜찮았던 거로 기억
그 사이 어느새 완연한 야경으로 바뀐, 밖의 풍경
갈라타다리에서 낚시하던 사람 / 갈라타다리에서 본 모스크
술탄아흐메트 광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옥수수 구이 노점상
그렇게 갈라타 다리를 지나 다시 트램을 타고 숙소로 가서 큰 배낭을 메고, 여행 1일 차 처음 갔던 탁심 숙소로 다시 바쁘게 향했다.
시민들이 정류장에 내려서 귀가 중인 듯했다. 밤 9시 반이 넘었는데도 사람이 참 많았다
곧 탁심에 있는 한인 민박으로 다시 도착!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보스포루스 해협이 흐르는 이스탄불의 야경
씻고 짐을 정리하고 나와보니 11시가 넘었다.
이번 터키여행, 이스탄불 여행의 마지막 밤을 터키 맥주와 함께
이때 맥주를 한 잔 하는데, 한국에서 그날 도착했다는 동생 규영이를 만났다. 서로 짧은 인사를 하고, 규영이의 여행 계획을 들어보니 아직 짜 있지 않기에 도움을 주려고 지금껏 적은 에세이의 요약본을 알려주었다. 내 얘기를 들은 규영이는 카파도키아로 빨리 가야겠다며 차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규영이에게, 그렇게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괴레메로 가서 잘 여행하고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소릴 전해 듣고는 보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