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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에세이]12_이스탄불에서 터키의 역사를 보다

12일 차 - 아야소피아, 톱카프 궁전, 술탄아흐메드 모스크를 마주하다

이스탄불, 그리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빼놓고 터키를 논할 수 없다.


이스탄불. 아시아와 유럽 대륙이 만나는, 비단길을 통해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길목. 비잔티움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써 1,500년 이상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던 곳.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터키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 보스포루스 해협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는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해협이 터키 땅으로 굳어지게 된 역사적인 사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에게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 정부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 이때 오스만 제국의 술탄 정부는 독일과 비밀 동맹을 맺었지만, 1917년 후반 전쟁이 끝나갈 땐 패전국에 서게 되었다. 오스만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열강의 의견을 반영한 술탄의 자치적인 정치에 모두가 불합리함을 느꼈을 때, 당시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고 각지에서 터키의 독립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인물인 무스타파 케말이 있었다. 그는 30대 중반에는 케말 파샤, 말년에는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얻어 터키 공화국의 국부가 된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이름이 바뀔 때가 바로 터키 민족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증거였다.


1923년 7월, 터키의 영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승리 연합국과 터키의 케말 정부는 스위스 로잔에서 <로잔 조약> 회의를 하기에 이른다. 케말 정부가 터키 대표로 참석했고, 연합국은 그리스의 입장을 대변해 케말에게 "이스탄불을 포함한 유럽 지역을 양보하고 에게해의 섬들을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이스탄불을 차지하는 대신 에게해의 여러 섬을 그리스에게 양보할 것인가" 하며 이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여기서 케말은 깊이 고민한 후 "첫째, 터키의 발전을 위해 서구와 연결되는 게 중요하니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인근 지역을 차지한다. 둘째, 터키 땅에서 터키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터키인이고 공화국의 민족적 동질성을 높이기 위해 터키인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지역만 터키공화국의 영토로 한다."

<처음 읽는 터키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케말은 이러한 원칙으로 후자를 선택했고, 그래서 이스탄불과 이 아름다운 포스포루스 해협은 터키의 것이 된 것!

아침 일찍 일어나 본 보스포루스 해협의 일출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그날이 터키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이런 먼 곳으로 다시 오기가 분명 쉽지는 않은 법. 다행히도 그날 날씨는 예보대로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맑았다. 이스탄불의 날씨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며 흐린 날도 많다던데, 딱 내가 여행했을 때는 날씨가 맑아서 하늘이 또 도와주시는구나 싶었다.

타이핑을 할 때 아주 유용한 블루투스 키보드와 함께

숙소에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며 오늘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필수로 아야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블루 모스크에 가볼 것이고 그 사이 시간이 되는대로 기념품을 사면 됐다. 이렇듯 필수 코스부터 행해야 하고, 도중에 비는 시간에 그다음으로 가고 싶은 일정들을 넣어야 한다. 시간 배분이 잘되지 않으면 일정이 꼬이게 되고 그러다 하루 이상을 더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가고 싶은 곳들을 더 못 가게 되는 것...

이후, 빠르게 길을 나서면서 스친 골목길에서의 풍경들
트램과도 잘 어울리는 이스탄불. 유명 관광지 근처에는 거의 다 트램이 있다
T1 트램을 타고 아흐메트 지구에 도착. 아야소피아(성 소피아) 성당, 토프카프 궁전, 술탄 아흐메드(블루) 모스크 등이 이쪽에 몰려있다

참고로 또 유명한 돌마바흐체 궁전은 탁심(Taksim) 지구에 좀 떨어져 있다.

단체 관광이 아니라면 줄이 기니, 개별 여행자는 아침 일찍 갈 필요가 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여기에서만 발견한 것으로 기억
입구에 들어가면 이곳의 역사 등이 쓰여진 내용이 보인다

참 웅장했으며, 아름다웠다!!

아야소피아 [Ayasofya; Hagia Sophia Museum]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걸작인 성당.

이곳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성스러운 예지(叡智)’(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舊堂)(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廊)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圓蓋)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본당(nave) 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構法)에 의한 대원개를 덮고 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횡압(橫壓)을 대소의 반원개(半圓蓋)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횡압은 대지벽(大支壁)(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라고 하는데,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낸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獻堂式)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 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 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앞방[前室]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에는 대소의 주두(柱頭)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야소피아 [Ayasofya] (두산백과)


대단했다. 당시에는 위의 지식을 대충 훑고 가서 봤는데 지금 다시 봐도 참 웅장했던 크기와 멋스러움에, 안 봤으면 참 아쉬웠을 정도로 잘 보고 왔다.


손가락을 넣고 주문을 외는(?) 이탈리아의 <진실의 입> 같은 물체도 있었다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그림이 참 디테일하다. 여기에 어떻게 그렸을까?
예술을 담아내고픈 열정

아야소피아만 보는데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반 내외. 이건 아무래도 각자의 관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서둘러 다음은 근처에 있는 톱카프(토프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여기를 지나
이곳이 입구!

아야소피아에서 10~15분 정도 걸렸나. 근처에 있지만 사람도 워낙 많기에 시간 여유를 두고 관람 시간을 생각해두는 게 좋다. 참고로 현금이 있으면 밖에서 입장권을 동일가로 파는 상인에게도 살 수 있지만, 이땐 잘 체크해 불법 티켓은 사지 않도록. 그래도 입구 예매처의 줄이 길 땐 이를 이용하여 시간을 절약하면 좋다.


톱카프(토프카프) 궁전 [Topkapi Palace; Topkapı saray]
1465년부터 1853년까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탄이 살던 곳으로 터키 이스탄불에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언덕에는 과거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토프카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토프'는 '대포'라는 의미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새로 지워질 때까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궁전은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중정(中庭)이 있다. 제1중정에는 비잔티움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지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이 있다. 이곳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원래 형태로 남겨 두었다.

제3중정에는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하렘이 있는데, 내부의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토프카프 궁전 [Topkapi Palace] (두산백과)

여기는 커다란 궁전들이 각기 따로 떨어져 있어 아야소피아보다 관람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1시간 반, 아마 2시간도 넘게 둘러봤던 거 같다.

그림들을 보면 그때의 생활상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런 그림들을 보존해온 것도 참 신기했다


셀피를 찍는 외국인을 발견! 찍어주고 싶었지만 이내 시크하게 갔다
곳곳에 신기한 문양이 많다.



여기까지 다 통틀어 톱카프 궁전이다. 건물도 많았고, 건물 하나하나의 규모도 컸다!

아야소피아 하나는 저리 가라 할 정도...



다시 서둘러, 근처의 블루 모스크로 향했다.

빵이 맛있는 터키. 노점 곳곳에서 파는 이 빵은 그냥 먹기엔 담백하고, 초콜릿을 발라 파는 걸 사 먹어야 제맛!


배가 고파 노점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에 도착. 톱카프 궁전에서 15분 정도 걸렸던 듯하다. 톱카프 궁전이 좀 떨어져 있고,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가 더 근거리에 있다. 하지만 난 당시에 아야소피아가 가장 사람도 많고 복잡하다고 해서 먼저 보려고 했고 그다음 톱카프 궁전, 그다음으로 술탄 아흐메드스크가 여유가 있다고 해서 이 순으로 관람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아도 그리 기다리지 않고 입장해서 원하는 대로 관람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여행에서 동선을 잘 짜야하는 건 정해진 시간 안에서 여행을 효과적으로 잘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일이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입구
푸른(블루) 모스크;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Blue Mosque; Sultanahmet Mosque]
저자: 제이컵 필드
오스만 제국의 건축학적 능력을 보여 주는 뛰어난 실례

푸른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이 세운 가장 장려한 건축물 중 하나이며, 여섯 개의 미나레트와 여러 개의 돔과 세미 돔(반원형 돔)은 아직도 이스탄불 구시가지의 하늘을 당당히 지배하고 있다. 이 건물은 내부의 색채 때문에 푸른 모스크라고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정식 이름은 '술탄 아메드 모스크'이다. 이는 건축을 명한 술탄 아메드 1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푸른 모스크는 오스만 인들이 1453년 비잔틴으로부터 빼앗은 이스탄불의 예전 중심지에 1609년에서 1616년까지 세워졌다. 이 모스크는 예전에는 정교 교회였다가 모스크가 되어 버린 웅장한 하기아 소피아에서 정확하게 맞은편에 있다. 아메드 1세는 일부러 이런 장소를 선정한 것이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들과 건축 장인들이 기독교의 선임자들과 필적할 만한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바랐던 것이다. 결국 푸른 모스크의 돔은 하기아 소피아의 돔만큼 크지는 않게 되었지만, 푸른 모스크의 건축가 세데프하르 메흐메트 아가는 건물의 구조의 완벽한 균형미로써 그러한 점을 벌충하려 했다.

조각된 대리석 민바르(설교단)는 모스크 안 어느 곳에 있어도 이맘(이슬람교도 공동체의 우두머리, 혹은 모스크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자)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모스크의 중앙 돔은 직경 33m이며, 높이는 43m이다. 내부에는 꽃, 나무, 추상적인 패턴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즈니크에서 가져온 2만 개가 넘는 수공예 도자기 타일들이 늘어서 있다. 200개 이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일광이 내부로 넘쳐 든다. 아메드 1세는 모스크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으며, 모스크 벽 바로 외부에 있는 마우솔레움에 묻혔다.

푸른 모스크에서는 1만 명 이상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수백 명의 무슬림들이 여전히 이 장소에서 하루 다섯 차례씩 매일 기도를 올리고, 금요일이나 무슬림 축제 기간 중에는 더 많은 이들이 찾는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북쪽 현관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서쪽 현관이 가장 눈부시게 장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푸른 모스크 [Blue Mosqu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이해하면서 보면 참 재미있는 게 건축물이고, 이는 역사로도 연결된다.

여긴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곳으로 위의 두 곳과 다르게 무료이며, 금방 입장이 가능했다. 관람도 20분 이내면 가능할 듯. 무슬림들이 이슬람, 알라신을 숭배하는 모습을 경건히 지켜보고 나왔다.


다음은 가족, 지인들께 선물을 사주려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덮여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파르 차르쉬(Kapar Carsi)로 향했다. 이곳을 좀 알아보니 심한 바가지를 씌는 곳으로도 유명했는데 그럴 수밖에. 사야 하는데 정보가 없으면 비싸게 살 수밖에 없고, 아니면 안 사면 된다. 하지만 난 지인들께 선물할 '장미 오일'을 사려고 해서 이곳으로 갔다. 물건들은 넘치지만, 돈은 나에게 있으니 흥정을 잘해서 잘 사면됐기에.


상큼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사들고
잘 단장해놓은 시장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그 신비한 알라딘 상점에 온 듯했다
신비해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우린 여기서 사기를 당하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에 살 필요가 있다.jpg

물건을 살 때의 팁. 가격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지만 시세를 모른다면, 동일한 물건으로 최소 3곳의 상점을 비교해볼 것. 그 상점들이 부른 가격의 중간 정도가 적정한 값이다. 여행 막바지인 이스탄불에 와서 지인에게 부탁을 받아 장미 오일을 사야 했다. 카파도키아 괴레메에서 장미 오일이 비교적 싸다고 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 여기서 잘 사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앞의 방법으로 처음 다른 상점에서 부른 값의 65%에 샀던 거 같다. 상인이 달란 대로 다 주면 바가지 쓰는 거다. 금액이 클수록 그 값은 더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여기 45번 가게는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 처음부터 바가지 가격을 부르지 않았고, 무난한 가격을 불러 내가 장미 오일을 10개 넘게 구매했던 곳이다. 하지만 결국, 본인이 구매할 때 딜을 잘해야 한다.


이제 봐야 할 거, 해야 할 건 다 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반 정도. 비행기 탑승 시간이 공항에서 오후 10시 정도였기에 늦어도 8시까진 공항에 가야 했다. 그러면 탁심 숙소로 6시 반~7시까진 가야 했으니, 이제 갈라다 타워 주변으로 가서 이스탄불 시내와 보스포루스 해협의 일몰을 조망하기로 했다.

근처 T1 트램에서 내려 갈라타 타워로 올라가는 길
이게 갈라타 타워!
사실, 옆에서 보는 게 더 멋진 법...
많은 모스크와 자미(삐쭉 솟아있는 기다란 기둥)들이 보인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탁심에 있는 숙소로...
숙소에서 떠나기 전, 한 번 더... 동서양을 잇는,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정말 아름다웠다! 널 언제 다시 볼까...


탁심 -> 구 아타튀르크 공항(지금은 없어진)의 발이었던 하바(HAVA BUS) 버스. 지금은 신공항 운행으로, 변경된 부분이 있으니 최신 정보를 반영해서 이동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제는 <아타튀르크 구 국제선 이스탄불 공항>. 그해 4월부터 신공항으로 국제선들이 이전했다고 한다.

여행에서 떠나는 자는 아쉬움, 출발하는 자는 설렘이 늘 교차하는 공항의 모습
친구 재경이의 부탁인 이스탄불의 스타벅스 기념품 또한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짐을 다 챙겨서 이스탄불, 터키를 떠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터키, 참 곳곳이 매력적인 나라였다!

날 태운 아스타나항공 비행기는 아스타나를 거쳐


당시 외부 영하 20도가 넘는 아스타나까지 경유하고, 이곳에서 터키 여행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보냈다.

한국으로 귀국할 때는 늘, 감개무량한 기분. 여운이 남는다
기내에서 착륙 좀 전, 곁들이는 맥주나 와인은 늘 꿀잠에 도움을 준다
어쨌거나, 인천에 무사히 도착!


지난 터키 여행은 지쳤던 일상에서 카파도키아의 벌룬과 폐티예에서의 패러글라이딩처럼 내게 새로운 꿈을, 이스탄불의 동 서양을 잇는 끈처럼 다시 한번 세상과 더불어 잘 살라는,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더 만들어준 거 같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공항에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터진 와이파이의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알람에서는 잘 귀국했냐고 내 안부를 묻는 그때 함께한 분들 그리고 내 소중한 가족들과 지인분들이다.


이때 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깨닫는 감사한 마음의 힘으로, 일상에 복귀해 다시 삶에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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