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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탈리아5_폼페이, 포시타노 & 나폴리피자

고대 로마 유적지와 남부 해안가 포지타노의 기대 이상의 여행을 만끽하다


그날 오전에 가야 할 곳은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 오후엔 해안가 포시타노였다. 아마 나폴리시로 오면, 많은 여행자들이 대부분 이 코스로 여행을 하는 일반적인 코스가 아닐까 싶다. 오전 8시 반쯤, 20여 명의 가까운 단체 한국 관광객들은 이 숙소에서 단체로 위 두 코스의 투어로 출발했다.

처음 20유로를 부른 선글라스, 결국 5유로로 구매. 제값 주면 덤터기 of 덤터기

여름에 이곳에선 챙이 넓은 모자, 바르는 선크림, 그리고 선글라스가 필수! 햇볕이 엄청 강렬하고 덥기 때문. 없으면 저런 짝퉁이라도 반드시 사는 것을 추천한다. 안 그러면 심히 까맣게 되고, 그때 돼서 주변에서 놀림당하면 난 책임 못 진다.


9시 나폴리 가리발디역 -> 9시 45분 폼페이 유적지 입구 도착. 지하철 등 타고 이동한 거로 기억

여기서 학부 친구도 만났다. 세상이 좁다는 걸, 오스트리아 이후 감.

*타는 열차가 Pompei Scavi로 가는 열차가 맞는지 꼭 확인하고, Pompei로 가는 열차는 타면 안 된다고 한다.




폼페이 [ Pompeii]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灣) 연안에 있던 고대도시

지금은 내륙(內陸)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江)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帝政)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人)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人)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

그동안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시(植民市)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혀지고 있다. 그후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 BC 91∼BC 88) 때에는 동맹시 쪽에 가담하였으므로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의 공격에 굴복,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 급격히 로마화PO(化)하였다.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인구의 계절적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다.

당시의 분화 상황은 소(小)플리니우스가 실감 있게 전해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참화를 면했으나 2,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분화가 멎은 뒤 재보(財寶)를 발굴한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졌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착수하여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으며, 옛 시가의 거의 절반 정도가 발굴되었다.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품은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가급적 현지에서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폼페이 [Pompei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물고기 모양의 도시로 설계된 계획도시인 폼페이 <폼페이-나무위키>
* 폼페이에 대한 흥미로운 추가 내용
1. 하늘에서 바라봤을 때 물고기 모양의 도시로 설계된 계획도시로, 원형경기장을 물고기의 눈으로 보고 왼쪽 위의 "미스터리 빌라"를 꼬리 지느러미로 보면 된다. 현재의 관광이나 당시의 도시 입성, 퇴성도 모두 입으로 들어와서 꼬리로 나오는 방식이었다고

2. 그 오래전에 선거운동도 있었던 곳 - 자치 집정관과 조영관 선거가 있을 때는 치열한 선거운동이 있었음을 유적에 남은 선거운동 벽보로 알 수 있다.

3.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도시 - 화산이 폭발한 분화로 화산재가 하늘을 덮은 뒤 18시간 동안 무려 수백억 톤에 달하는 뜨거운 화산쇄설류가 도시로 쏟아져 내려왔고 폼페이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도시는 3m가량이나 되는 화산재로 뒤덮였다.

4. 현재까지 발굴 진행 중 - 2000년대에 들어서도 3분의 2 정도밖에 발굴되지 않았다 할 정도.

5. 굉장히 외설적인 벽화가 그려진 매음굴도 많은 편이니 어린아이와 관광 올 땐 주의. 2015년 상반기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었던 폼페이전에서도 성행위를 묘사한 벽화 몇 점을 가져와 전시했는데, 초등학생도 입장이 가능한 전시회인 만큼, 이 홍등가 관련 벽화들은 어린이들의 관람을 방지하기 위해 커튼을 친 별도의 공간에 몰아서 전시했다고.
<폼페이-나무위키>


폼페이에서 활을 써보고 싶었던, 꼬마 궁사 발견!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 들어가면 보이는 모습
당시, 한국인 가이드를 숙소에서 대동해갔던 거 같고 이 이어폰도(가이드가 마이크로 설명) 투어비에 다 포함됐던 거 같다

런던, 바티칸에서처럼 이번에도 한국인 가이드분께 그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 확실히 더 이해가 잘 됐다. 혼자 갔으면 영어 라디오나 한국어 지원이 되더라도 형식적인 설명만 들어서 재미가 없을 수 있으나, 이렇게 단체로 들으면 대화와 질문도 오가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바로 가이드 투어다. 군대 선임이라고 하셨던 것도 반가워 더 기억에 나는데, 책임감 있게 폼페이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었다.

이 도시 안에
이곳들에서 또 마을같이 보이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집으로 보이는 공간에 수납통, 집기들, 화덕으로 보이는 걸 짐작할 수 있고
여긴 공동체 생활로 보이며
19금 프레스코 벽화 - 당시 남녀의 성생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에 놀랐었다

유적지가, 역사가 이렇게 재밌어졌을 줄이야. 몇 년의 세월은 사람의 흥미도 이처럼 바뀌게 한다. 허접하게나마 찍어둔 사진이 이토록 귀하게 쓰일 줄이야...


이렇게 두 시간 넘게 해설을 들으며 관광 후, 이번엔 대전한 버스로 아말피 해안 인근의 포시타노로 향했다.




포시타노(포지타노; Positano)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살레르노도에 있는 인구 4천여 명의 코무네(소도시 명칭)이다.
역사: 아말피 공화국의 항구 중 하나였다.
<위키백과 - 포시타노>
포시타노 도착!

버스에선 다들 "바다다!"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아, 이 그림 같은 풍경!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들어가는 절벽길이 좁은 도로라 소형버스를 타고 간 것으로 기억.


버스에서 내린 우린 이 멋진 경치를 보며 점심으로 현지 정통 스파게티와 빵 등을 먹고 와인, 음료를 마시며 환상의 만찬을 가졌다. 음식도 맛있었고, 경치가 이러하니 더 바랄 게 없지 않겠는가? 참, 가족 생각이 났었다...


!!!
!!
정말 경치가 멋졌던 그곳의 식당. 지금도 아마 있지 않을까

우리 민박 일행이 식사를 마쳤을 때, 민박집 사장님께서 직접 이탈리아 성악으로 노랠 부르셨다. 이탈리아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 학교가 많다. 사장님께선 어렵게 이곳 현지로 유학을 오셔서 열심히 성악을 공부, 연습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으로 현지 노래를 열창하시니 식당 안에서는 현지인들의 반응이 아주 열광적이었다. 아마 '오 솔레미오(O sole mio; 나의 태양)' <감상 >였을 거다. 열렬히 환호하는 저 팬들을 보시라! 나 역시 괜스레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사장님께 힘찬 박수를 드렸다.


아마, 한국으로 외국인이 여행 와서, '진달래꽃(김소월 작사)' 같은 대중적으로 국민들이 아는 가곡 등을 부를 때와 비슷한 감정일 듯싶다.

난 지인들과 행복의 3요소에 대해 종종 얘기한다. 첫째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과, 둘째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더 좋으며, 셋째 좋은 장소에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또 여기에, 부가적으로 더해지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음악인 훌륭한 성악까지 그 시간에 더해져 우릴 참 행복하게 했던 것이다. 사장님은 이걸 아셨는지, 자연스레 열창을 하셨던 거 같다.


이때의 1시간의 기억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미소 짓고 행복하게 한다. 여행 후의 백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지!


식사 후 모두 아래 해안가로 걸어갔다.

이런 예쁜 골목길을 내려와서 보니
이런 가옥, 숙박지 등으로 구성된 코무네(소도시)가 비로소 보였고
이런 예쁜 해안가까지!
남녀노소 일광욕을 만끽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현지인들부터 관광객들까지, 대체로 자기 관리가 된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선보였으며 오롯이 이 해안가에서 즐기고 있었다. 왜 휴양지가 가까우면 좋은지 이젠 그냥 알 것도 같다.


전에는 그냥 별 느낌이 없었는데, 글을 쓰면서 다시 보니 이런 것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탈리아노 소년의 멋진 다이빙!
This is Positano.jpg

단체 투어라 해도 속에 수영복을 입고 가거나 따로 챙겨가서 시원하게 상체까지 물을 담가도 괜찮다. 또래 친구들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훈훈남 유러피안 혹은 이탈리아노 남자들 샷은 서비스 1
훈남으로 크고 있는, 멋진 포즈의 꼬마 샷은 서비스2
지도를 보니, 아마 여기서 좀 보고 돌아서 나폴리로 가는 열차를 타는 곳 근처에서 내렸던 듯
카메라를 돌리니 미소를 지어주던 여자아이
저기서는 회사업무 책을 봐도 즐거울 거 같다(??!)
반가웠던 LG TV

1시간 정도 걸려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사장님은 피곤하셨을 와중에도 야경 볼 사람들을 모아서 근처로 관광을 시켜주셨다. 위에도 적었지만 시내 주변에 특히 치안이 좋지 않아, 저녁 이후 나갈 땐 이렇게 현지 상황에 익숙한 보호자 등을 동반해서 나가는 게 전 세계 어디에서나 좋았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세계 3대 미항이라는 곳에서 찍어낸(?) 야경

나폴리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호주의 시드니에 이어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설이 인터넷에서 떠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나 어느 기준으로 그렇게 말한 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으로 보면 그냥 '예쁜 항구'임에는 공감한다. 난 3곳에 다 가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리 야경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분명 야경이 멋졌다.

그후 3년 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찍은 야경
그후 찾은, 호주 시드니


아무튼 그땐 혼자 야경 맛집 명소를 갈 수도 없었고 부족한 촬영 실력 이어선지 건진 게 위의 나폴리 항구 사진. 그럼에도 역시,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밖에서 사서 일행과 둘러앉아 먹은 이 고기

사실 이 고기 맛의 특별함은 기억에 없지만, 이날도 사장님 주도하에 '러브러브 작대기'를 했던 거 같다. 남녀 인원을 2:2 이상이 되면, 구성해서 이렇게 게임을 시켜주시곤 했다. 그냥 그렇게 보낼 수 있는 여행의 하루를, 이렇게 늦은 밤까지 재밌게 신경 써주려 하신 사장님의 위트 또한 새삼 기억나는 지금이다. 이탈리아 각지에 있는 민박에서 한 이 게임이 기억난다. 베네치아에서부터 이어졌던 거 같은데, 어디선가 난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부르기도 했다. 아 그런데 작대기와, 노래를 부른 후 누구와 잘 되었냐고? 유럽 편 중간에 더 적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확실한 건, 내가 눈치가 없었다곤 말할 수 있다...


참고로, 이때 민박집 사장님은 내가 여행한 이후 좀 뒤에 유명해지시면서 당당히 '테너 조용갑'으로 뉴스 등에 나온 것도 보게 되었다. 지금은 본업인 성악가로도 보다도 강연가로도 활동하시고 있다.




전날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여행 정보를 찾고 보니 1시 반이 넘어서 잤다. 배고픈 학생 여행자였던 난, 어김없이 오전 식사시간인 8시인 전부터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때 유럽 여행을 할 당시 밖에선 자주 사 먹진 않았어도 꼭 이렇게 숙소에서 오전에 한식을 든든하게 먹어두곤 했다. 이런 밥심으로, 여행할 때 당일에 더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을 얻은 거 같기도 하다.

한인 민박의 장점 - 대부분 오전 한식 뷔페 숙박비에 포함. 현지에선 특히 귀한 재료들이며, 한식만큼 균형 잡힌 식사는 전 세계 어디에 또 없다

다시 푹 잤다가 정오 전에 일어난 그날은, 오후까지 설렁설렁 쉬다가 시내를 돌고 피렌체로 올라가기로 계획했다. 아, 나폴리 피자를 맛보는 것이 중요한 계획이라면 계획이랄까?!


전날 시내를 돌면서 기념품이 눈에 띄었던 그 골목으로 다시 갔다.
결국, 열심히 기념품을 만들고 있던 예술가에게 난 몇 작품을 구매했고 그를 응원해 주고 나왔다

해외여행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 과소비나 심한 바가지로 사기를 당하는 것은 주의하 돼, 꼭 사고 싶고 사야 하는 것은 구매하면 좋다고 생각. 기념품 하나가 행복한 여행을 상기시켜 추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표시돼 있지 않은 기념품을 살 때에는 반드시 최소 두세 곳 정도 비교해 보고 살 것. 관광객은 보통 가격을 잘 모르기에 시세에 비해 과 비용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셋째, 기념품이 여행의 짐이 돼선 안 된다. 가능한 출국하기 전 인근 도시에서 구매하거나, 그 도시에 없다면 기념품이 특별히 있는 그 지역에서 미리 구매해둘 것.


사실 난 아메리카 대륙 횡 종단할 때 이후로 기념품을 안 산지 오래됐지만, 이때만 해도 조금씩 사두곤 했다. 가족 및 가까운 지인들에게 챙겨줄 것이 보이거나, 이분들에게 부탁받은 것이 있으면 틈틈이 사뒀었다. 이렇듯 기념품은 내 여행을 추억하고, 주변에게 그 추억 또한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구매해 주는 장소 및 나라의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해 주기도 한다. 그러니 적절한 구매는 좋겠다는 결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가 난 피렌체로 출발 전, 민박 일행 두 명과 함께 나폴리피자를 먹어보자는 일념으로 맛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3시 반 즈음의 낮, 시에스타(Siesta: 스페인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 및 라틴아메리카, 필리핀 같은 열대지방의 낮잠 시간) 시간대여서 그런지 책에 나온 곳들은 거의 문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우린 맛집을 찾아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던 현지 피자

그때 기록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파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는 쓰여있지만, 엄청 맛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저 피자 양이 상당했는데 라지 피자를 한 번에 최대 2~3조각 정도밖에 먹지 못하는 난데도 맛있게 다 먹었다고 한 거 보니 그렇다. 그때 기록한 이 피자에 대한 생각은 신선한 토핑들이 놓인 수제 피자빵이 화덕에서 직접 구워지는 것을 눈으로 보며 이미 즐거웠다는 것이고, 피자 발상지 현지에서 먹는다는 생각으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는 것. 나 혼자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음식에 감동이 더해졌던 거다. 그 고장의 유명한 음식을 현지에서 먹어본다는 것. 이런 게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맛이 또 아닐까?!!

이탈리아의 새마을호 같은 에우로스타 이탈리아(Treni Eurostar Italia, 시간표 상 ES AV*). 유레일패스가 있을 때 추가 10유로를 내고 피렌체행 탑승
나폴리 기차역 - 피렌체 기차역, 당시 소요시간 3시간 이상


*부록 (브런치북에서 빠진)

이탈리아6_ 예술을 사랑으로 승화한 곳, <피렌체> 편

이전 23화 [유럽] 이탈리아4_세계3대 미항, 남부도시 나폴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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