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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탈리아6_예술을 사랑으로 승화한 곳, 피렌체

두오모 성당, 베키오 다리 등, 시내의 대부분이 예술이자 사랑인 도시

프라하, 베네치아에 이은 예술과 사랑의 도시, 피렌체(플로렌스)

전날 밤 10시 반이 넘어 피렌체역에 도착해 예약해둔 인근 숙소로 들어가 자고, 오전에 일찍 일어났다. 파리에 있는 파티시에 친구를 만나러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고, 피렌체-파리 기차역 구간은 당시 성수기에 붐비는 구간이라 표가 여유가 없어 예약하지 않았으면 구해놔야 한다고 해서였다. 그렇게 난 오전 8시부터 일어나 역으로 향했고, 서두른 덕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 여유롭게 다음날 낮에 타고 갈 열차의 좌석을 예약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에게 당시 추가금 20유로쯤(지금은 2배 이상 들 수도 있으니 검색 필수) 들었던 듯.

행선지가 정해져있으면 미리 차편을 예약하고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오전에 일찍 서두른 덕에 여유를 갖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당시 피렌체 시내여행 지도 정리본 Ⓒ피렌체 파바로티하우스(지금은 없어진 듯)
피렌체 [이탈리아어: Firenze 영어: Florence ]
요약: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州)의 주도(州都)

이탈리아 중부 로마 북서쪽 233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구릉과 선상지에 형성된 도시이다. 아르노 강변에 위치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37만 명이지만 피렌체-프라토-피스토이아를 잇는 넓은 구릉지대의 도시들이 한 생활권으로 연결되어 약 150만 명이 피렌체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피렌체는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A1 고속도로와 철도의 주요 거점이다.

건축과 예술의 요지로 알려진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타크로체성당,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우피치미술관, 베키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피티 궁전 등은 세계적인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비롯하여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산드로 보티첼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알리기에리 단테,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천재적인 과학자와 문학가, 예술가들을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며, 세계 예술 작품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피렌체 지방의 언어는 이탈리아 표준어로 인정되고 있다.

피렌체는 로마제국에 의해 군사도시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역사지구는 바둑판 모양의 도로를 가지고 있다. 역사지구에는 아르노 강을 관통하는 베키오 다리를 건너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Repubblica)에 이르는 길을 따라 두오모(Duomo) 광장까지 이어진 거리를 중심으로 고대 로마와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펼쳐져 있다. 198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매년 수백 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렌체 [Firenz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피렌체 핵심내용 정리
1. 1982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2. 과거 피렌체를 호령했던 메디치 가문의 예술 애호사상에 입각하여 배출된 수많은 르네상스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이 피렌체 곳곳에 널려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
 1) 대표적인 피렌체 예술가의 명단
 - 레오나르도 다빈치
 - 미켈란젤로
 - 라파엘로
 - 보티첼리
 - 도나텔로
 2) 기타 유명인
 - 갈릴레오 갈릴레이
 - 니콜로 마키아벨리

3. 역사
 1) 기원전 8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아르노 강가에 자신의 병사들을 위한 정착지를 세울 때 "두 강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플루엔티아"라는 도시를 세웠는데 이 명칭이 후에 "플로렌티아"로 바뀌었다. 그러나 술라의 퇴역병들은 곧 도시를 방기하여 이때의 식민지 건설은 실패했고,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 퇴역병을 이주시켜 건설한 것이 현재 피렌체의 시작
 2) 11세기부터 상업과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국력이 발전, 몰락한 항구 도시 피사를 내륙 도시인 자신들의 외항으로 접수하며 이탈리아반도의 경제·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1152년 도시국가인 피렌체 공화국이 수립
 3) 르네상스 시대에 여러 유력 가문이 정쟁을 벌이다 1434년부터 메디치 가문이 완전히 정계를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지배 시기는 사실상 피렌체의 최전성기로, 메디치 가의 강력한 후원 덕에 무수한 학자와 예술인의 작품들이 만들어졌고, 메디치 가가 자랑하는 정예군 검은 군단 등의 강력한 군사력 또한 위용을 뽐냈다. 더구나 이 시기는 피렌체뿐 아니라 인근의 밀라노, 나폴리, 베네치아 등 북이탈리아 전체가 흑사병을 견뎌낸 이후의 산업의 호황과 각지에서 몰려든 인재들의 역량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상을 구가한 황금기
 4) 이후 강대국 프랑스 등 사이에서 1737년 메디치 가문이 끝내 단절되자 피렌체를 비롯한 토스카나 지방은 오스트리아의 속령이 되었다.
 5)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개입을 통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1865년 잠시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가 1871년 수도의 지위를 로마에 내어 준 후 현재에 이른다. 그래도 잠시 수도로 있을 때에 구축된 인프라 덕분에, 단순한 지방 도시로 남을 뻔한 이곳이 관광도시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6) 2차 세계대전 후기, 북이탈리아에서 영국군과 싸우던 독일군은 피렌체에서 퇴각하면서 모든 다리를 끊으려 했지만 히틀러가 베키오 다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포격을 거의 받지 않은 도시라 다행스럽게도 많은 문화유적들이 온전한 채로 남을 수 있었다.
 7) 북부 이탈리아 부자도시답게 많은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구찌, 페라가모, 토즈 등의 브랜드가 이 도시에서 시작한 브랜드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명품관 느낌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다고 함

4. 그밖에
 1) 물가 - 밀라노만큼은 아니나 로마에 비해서도 많이 비싼데, 특히 성수기에 음식점, 젤라테리아나 가죽 시장 등지에서 교묘하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단가를 낮춰서 제공하는 집이 많으니 주의하자.
 2) 가죽 제품이 이곳의 대표 특산품. 괜히 여기에 명품 본사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니다 북쪽의 밀라노도 명품으로 유명하지만, 굳이 명품에 관심이 없다면 이곳에서 적당한 것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3)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남자 주인공 준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가 복원사로서 경력을 쌓으며 거주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구 여친 아오이와 만난 곳이 바로 피렌체의 두오모 돔 꼭대기다.
 4) 아동소설 <피노키오>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 카를로 콜로디도 피렌체 출신이다.
[피렌체 - 나무위키]


피렌체에서도 한인 민박으로 예약하고 갔었는데, 여러 이유의 장점이 있다. 먼저, 내가 해외여행 초기 때이고 인터넷 검색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아 정보 습득이 용이하지 못해 숙소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둘째, 물가가 다소 비싼 유럽에서 한식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으며 오전 식비를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으며 셋째, 한국인의 인연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중요했다. 실제로 유럽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중 아직도 연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해외 친구들이었다면 온라인으로 교류한다 해도 한계가 있기에 난 특히, 해외여행 초창기인 사람들에겐 한인 민박을 권장한다.


여기선 동갑의 여성분이 민박 대표였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녀는 내게 말을 놓으라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리곤 베네치아에 이어 또 만나게 된 남자 동생 둘까지 같이, 그날 비도 많이 오고 있어서 특별한 관광계획을 정하지 않은 난 오후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전엔 장을 보는데 도와주었고, 오후엔 시내를 둘러보다가 숍에 들어가 쇼핑도 했다.

장 볼 때 짐을 들어줘 고맙다며 대표가 사줬던 이탈리아 커피(카페라테, 카푸치노인 듯). 현지에서 맛본 커피 맛!
비가 많이 왔던 시내였지만 유명 건축물과 작품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은 붐볐다. 따로 건축됐지만 연결된 듯한 이 건물들이 그 유명한 두오모 대성당
두오모 성당 내부 천장화(사리의 작품이지만 추카피에 의해 완성)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두오모 대성당) [ Santa Maria del Fiore ]
요약: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대성당

아르노강(江)의 북쪽, 피렌체시(市)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지도적 구실을 한 피렌체에 어울리는 대성당의 실현을 대망하던 시의 결의에 따라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되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三廊式) 회당부(會堂部)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內陣),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祭室)을 완성하였다.

한편 시민의 기대를 모았던 대원개(大圓蓋)의 공사는 그것이 광대한 내진 전체를 덮는 구상이었던 만큼 많은 기술적 어려움을 수반하여 착공이 늦어졌는데, 겨우 현상설계의 응모작품 가운데서 뽑힌 F.브루넬레스키의 설계를 바탕으로 그의 지휘하에 1420년에 작업이 개시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우선 내진 위에 지름이 이와 맞먹는 8각의 탕부르(開口部가 있는 圓筒部)를 두고, 그 위에 8각 첨두형(尖頭形)의 독특한 2중 구조를 가진 대원개(大圓蓋)를 올리는 방법을 고안하여, 1434년에는 정탑(頂塔:란테르나) 부분만 남기고 이 난공사를 마쳤다.

바닥에서 91 m의 높이에 이르는 이 거대한 원개는 고딕의 늑골(리브) 궁륭(穹窿)의 구조에 브루넬레스키의뛰어난 창의가 곁들여 비로소 실현된 것으로 기부(基部)에서 탑 꼭대기에 이르는 굵은 8개의 대리석 리브와 그 사이를 메우는 벽돌로 된 8쌍의 구면(球面) 삼각형이 멋있는 대조를 이루는 풍부하고 힘찬 외관은 그야말로 피렌체시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건물 전체를 덮는 대원개의 프로포션은 전성기(全盛期)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원개(쿠폴라)중심의 구성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당내(堂內)에는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대성당에 어울리게 부속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조각과 회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베첼로와 카스타뇨 등의 프레스코 벽화, 기베르티의 성유물(聖遺物) 상자와 미켈란젤로의 조상(彫像) 《피에타》 등이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유명 건물들이 아닌데도 그냥 시내 전체가 예술이다
이젠 이런 그림 작품들을 소장하고 싶게 되었다
cf. 맑은 날 위에서 촬영한 피렌체 시내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왼쪽에 우뚝 선 탑은 지오또의 종탑(Campanile di Giotto). 성당 건축이 한창이던 1334년 건축가 지오또에 의해 이 종탑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이탈리아 커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비알레티>의 본점


비알레티 [ Bialetti ]
요약: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 필수품인 모카포트를 만나볼 수 있는 곳.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 필수품인 모카포트를 만나볼 수 있는 곳.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을 좋아한다면 수동이지만 의외로 쫀쫀한 우유 거품이 만들어지는 거품기도 잊지 말자.

모카포트로 만든 커피는 에스프레소보다 약간 옅은 맛이 나 부드럽다. 모카포트의 대명사 비알레티 상점에서는 모카포트와 더불어, 카푸치노를 좋아한다면 우유 거품기까지 추천한다. 비알레티의 수동 우유 거품기는 뚜껑에 달린 손잡이를 펌핑해주면 되는데, 신기하게도 카페에서 마시는 카푸치노 만큼의 쫀득쫀득한 폼이 만들어진다. 홈카페를 멋지게 완성해 줄 두 요물.
[네이버 지식백과] 비알레티 [Bialetti]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이지 유럽, 고영웅)
당시 나도 구매해서 바리스타를 꿈꾼다는 친구에게 선물해 주었다
그 유명한 <페라리> 브랜드 매장
페라리 [ Ferrari ]
요약: 엔초 페라리가 설립한 이탈리아의 고성능 레이싱카 제조사

엔초 페라리는 1920년대 알파 로메오의 레이서로 활동하다가, 1929년에 자신이 직접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라는 팀을 창설하였고, 이것이 페라리의 전신이다. 페라리의 엠블렘에서 볼 수 있는 'SF'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머리글자에서 온 것이다. 팀에서 레이스에 참가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아들 알프레도 페라리(별명 디노)가 태어난 1932년까지만 활약하고 그만두었다.

1939년 알파(ALFA)가 자신의 레이싱팀 스쿠데리아를 흡수하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의도를 알아챈 페라리는 알파와 결별했다. 이후 페라리는 자동차를 설계, 생산하기 시작하여 1940년에 티포 815(Tipo 815)를 완성했다. 1947년에는 최초로 페라리라는 이름을 달고 티포 125S가 생산되었다. 페라리는 스쿠데리아의 자금 조달을 위해 마지못해 차를 생산했지만, 뛰어난 성능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1956년에 아들 알프레도가 24살에 지병으로 죽자, 알프레도를 끔찍히 여겼던 페라리는 그 이후에 나온 자신의 모든 V6 엔진 차종에 알프레도의 별명인 '디노'란 이름을 붙였다.

모데나시(市) 교외에 소규모 공장을 가지고, 초고성능이며 값이 비싼 스포츠카를 소량생산(연간 생산 1,000대 미만)하는 한편, 스포츠카의 각종 경기에 고성능차를 참가시키고 있다. 세계 자동차경주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획득한 차종으로서, 이탈리아 자동차계의 지보적 존재이다. 1969년에 피아트사(社)의 산하로 들어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라리 [Ferrar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브랜드는 이탈리아에서 설립됐으나, 현재 법률상 본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는 레이싱카 제조사이자 명품 브랜드인 페라리. 자동차 경주인 레이싱 경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지 않을지. 하지만 너무나 유명한 브랜드이기에 한 번 들어가 보았고, 이렇게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전시돼 있는 것을 종업원의 방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숍들도 있다. 오히려 이런 곳이 편하게 구매할 수도 있을 듯.


알비에로 마르티니-프리마 클라쎄(Alviero Martini - 1'CLASSE) 피렌체 매장(본사는 밀라노에 있는 듯함)
알비에로 마르티니-프리마 클라쎄(Alviero Martini - 1'CLASSE)

역사
Alviero Martini SpA는 1991년 밀라노에서 설립되었으며 Navigli의 멋진 환경에 본사가 있습니다. 2003년 Alviero Martini SpA는 Final SpA Group에 인수되어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미래 지향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추구했습니다.

회사는 창립 이래로 아이코닉한 지리 지도가 특징인 명백한 스타일의 가방과 액세서리 생산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밀라노와 로마에 두 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전국의 다른 단일 브랜드 부티크가 있으며, 그 옆에는 자격을 갖춘 멀티 브랜드 스토어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유럽, 중동 및 극동은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 덕분에 참조할 해외 시장입니다.

브랜드 - Alviero Martini 1ª Classe
아이코닉한 지리 지도 덕분에 세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Alviero Martini 1A Classe는 액세서리 부문의 선두 브랜드 중 하나로서 확실한 이탈리아 스타일을 표현합니다. 오늘날 이 브랜드는 고급 가죽 제품, 여행 제안서, 신발 및 섬유 액세서리, 남성, 여성 및 아동용 의류 컬렉션과 같은 다양한 제품 범주에 존재합니다. 도시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컬렉션은 이탈리아에서 손으로 디자인 및 디자인되었으며 스타일리시한 경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창조된 각 제품은 독창적인 독창성, 장인 정신의 우수성 및 생산 아방가르드의 완벽한 합성입니다.

우리의 Geo Classic 패브릭은 독특하고 흉내낼 수 없는 공정에서 나옵니다. 고대 지리지도의 양피지를 재현하여 상징적 인 지도를 장인의 솜씨로 그리고 채색했습니다.
우리의 컬렉션은 날마다 시대를 초월한 스타일의 상징이 되고 비범한 아름다움의 흠잡을 데 없는 모델이 됩니다.
www.alvieromartini.it (알비에로마르티니 이탈리아 공식 홈페이지)


그때 이 매장에도 들어갔었는데, 난 명품 브랜드류에서 소지할 만한 제품으론 이 브랜드를 참 좋아하고 몇 제품을 갖고 있다. 세계 고지도의 패턴이, 여행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내 취향과 잘 맞아서일까? 아무래도 브랜드가 선호하는 방향이 구매자와 일치하면, 구매자는 그 브랜드를 더 좋아하게 되는 거 같다. 이렇게 특히 끌리는 건 개개인마다 성향별로 대체로 다르다.


또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이 즐비한 것은, 결국 그 나라가 보유한 역사 및 예술인들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이 두 나라 주변국에 몰려있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쇼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배가 고파왔다.


민박 일행 중 한 친구가 컵라면을 많이 사들고 왔다며 나눔 하여 단체로 귀하게 맛있게 먹었다

이런 것 또한 배낭여행을 하면서 민박으로 오면 누릴 수 있는 재미. 대부분이 대학생이었지만 가끔 가족과 오셨거나 출장으로 오신 분들도 만나곤 했다.

피자 제조 1_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피자 제조 2_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이후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몇 친구들과 나갔다.

그 사이 낮과 다르게 하늘도 예술을 부렸다
세계 3대 미술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우피치미술관
우피치미술관 [ Galleria degli Uffizi ]
설립일: 1584년
주요 소장품: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 및 바로크와 로코코시대의 중요작품

르네상스 회화의 컬렉션으로는 질이나 양적으로 세계 제일의 미술관이다. 건물은 초대 토스카나 대공이 된 메디치가(家)의 코시모 1세(1519~74)의 정청(政廳)이며 우피치궁(宮)이라고도 한다. 미술관의 역사는 이 건축이 완성된 1584년에 시작되나, 미술품 수집의 역사는 더 오래 되어, 15세기 전반부터 피렌체에 군림한 메디치가의 코시모 일 베키오(1389∼1465)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디치가의 최후의 6대 토스카나대공 잔 카스토네(1671∼1737)까지 거의 200년간에 막대한 미술품 제작을 예술가들에게 의뢰하고 또 작품이 수집되었다. 코시모 1세의 시대부터,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메디치가와 그 집에 연고가 있는 미술품을 여기에 모으기 시작하여, 1737년 메디치가의 최후의 사람으로서 우피치궁의 미술품을 계승하고 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하였고, 그녀의 뜻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 통일에 의하여 국립미술관이 되어 1800년에 조각류가 국립바르젤로미술관과 국립고고미술관에 분할되었다. 현재 3층에 회화, 2층에 소묘와 판화, 1층에 고문서류를 수장하고 있다. 회화에는 14∼16세기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가, 독일과 플랑드르의 북방 르네상스 화가들의 중요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조토의 《성모자(聖母子)》, 마르티니의 《수태고지(受胎告知)》,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다 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검은 방울새의 마돈나》, 티치아노의 《울비노의 비너스》, 카라바조의 《바커스》, 뒤러의 《삼박사(三博士)의 예찬》, 휘스의 《목자(牧者)들의 예배》 등이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피치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베키오 다리> 야경
베키오 다리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베키오 다리 [ Ponte Vecchio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982년 지정
저자: 로빈 엘람 무수메시

14세기에 지어진 다리이자 피렌체 시를 상징하는 아이콘

14세기부터, 베키오 다리(오래된 다리)는 상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장소였는데, 그 큰 이유는 이곳에 가게를 차리면 세금 면제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까지 주로 식품을 파는 노점, 특히 푸줏간 노점이 주를 이뤘다. 코시모 데 메디치가 1565년 조르조 바사리에게 다리 위쪽으로 베키오 궁전과 피티 궁전을 연결하는 통로(코리도이오 바사리 아니)를 만들어 두 궁전을 오가는 동안 평민들과 뒤섞일 필요가 없도록 하라는 명을 내린 이후, 이러한 노점들도 끝나고 말았다. 푸줏간에서 풍기는 냄새를 견딜 수가 없었던 코시모는 1593년 그들을 내쫓아 버렸다. 대신 좀 더 고급스러운 업종인 금 세공인과 귀금속 상인들이 다리 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종류의 상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피렌체 출신의 가장 유명한 금 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기념비가 서 있어 이러한 전통을 인정하고 있다. 근대의 이 지방 전설에 따르면, 첼리니의 흉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져 버리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로 다리가 손상을 입게 되었으므로, 이 전설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이제 벌금을 물게 된다.

베키오 다리는 여러 구간으로 이루어진 다리 중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이 다리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아마 히틀러 자신이 내렸을 거라 추측되는데–1944년 8월 독일군이 이 도시에서 퇴각할 때 피렌체에 있는 다른 모든 다리를 파괴하면서도 이 다리만은 남겨두라는, 놀라우리만큼 자비로운 명령 덕분이다.

"가장 좁은 길 … 폰테 베키오에서 피아차로 가는 길은 무척 붐볐다."
토머스 A. 트롤럽, 『내가 기억하는 것』(1887~1889)
[네이버 지식백과]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 상>

아까 함께 라면을 먹은 민박의 몇 친구들과 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면서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같이 올라왔다. 이후 가져간 맥주들을 꺼내어 그곳에서 처음 만난 우리들은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연애, 학과, 과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었을게다. 아, 하나 생각난 걸 솔직히 적어본다면 여행 중 인 외국인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썰! 어찌 이런 게 남자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있나?! 마치 여성분들이 백인 외국인 남성에 환상이 있을 것처럼 말이다. 다들 그 판타지에 귀를 쫑긋했던 게 기억난다. 문득, 그 얘길 한 친구가 잘 사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지금 가정을 이뤘을 수도 있는 그 친구를 지켜주고 싶다...


여행이 가진 매력 중 또 하나의 큰 것은,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식과 손해 볼 일이 웬만해서는 없을, 계산적인 관계는 필요 없이 솔직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맘껏 꺼내어 다른 환경에 있던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고,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답답함도 풀리고 또한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지.

이런 환상적인 야경이 있었으니, 어찌 그날 밤에 잠이 들 수가 있으랴! Ⓒ서제우 촬영, 희랑 보정

단 하루를 머물렀으나, 밤까지 있으면서 내가 이 도시에서 느꼈던 것이 있다.

여기 꼭,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 곳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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