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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말레이시아3_쿠알라룸푸르(2) 출발하면 된다

쿠알라룸푸르 2일_ 여행에선, 실패하는 시간이란 없다.

그날 새벽 1시쯤 잤었나. 맘 편하게 자고 일어나 보니 10시였다. 이 초짜 해외여행자가, 유럽으로 향하기 전 2박 3일간의 말레이시아 맛보기 여행이었기에 꼭 어디에 가야 할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이렇게 워밍업으로 해외여행을 체감하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달까.


실제로 그랬다. 동남아시아의 선진국이라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치안도 다소 안정돼 있고 2위권의 경제력을 가졌다는 말레이시아. 여기서 유럽여행 전의 전초전을 경험하려는 계획이었다. 선진문물들이 있는 대륙인 유럽을 경험하기 전, 덜 발달한 나라에 먼저 가보고도 싶었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다녀온 사람들 중 그 후로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개도국까지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감흥이 덜하고 재미가 없다고들 했다. 그래서 난 그 반대로, 유럽을 거쳐가는 길에 스톱오버로 무료이기도 하고 동남아를 경험할 요량으로 말레이시아를 택했던 것. 그 이후로 유럽을 가면, 동남아와 한국을 경험한 시각에서 유럽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을 거 같았다. 결과적으로 계획적으로 택했던 이 방법은, 여행을 질리지 않게 잘할 수 있었던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다음 숙소 정보에 대해 듣고, 재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때 여행책은 몇 년 됐었기에 숙소 정보도 최신이 아니었고, 스마트폰과 인터넷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사장님의 정보는 참 유용했다.


그때 기록한 글로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니, 정말 나는 초보 중의 초짜 여행자였다. 그러면 영어는 잘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대신 명사들과 동사들은 알았고, 가진 것이라고는 모험심밖에 없었기에 원하는 것과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할 수는 있었다. 이제 링깃도 더 필요했기에, 그 유명한 시티은행부터 길을 물어가며 찾아가 쌈지로 모아둔 US 달러를 주섬주섬 꺼내 환전부터 했다. 그리곤 추천받은 China Town의 Red Dragon Hostel로 찾아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쇼핑 등으로 유명하다는 KLCC Suriya Town을 들렀고, 식사와 아이쇼핑도 했다. 음식도, 외국의 쇼핑몰도 익숙지 않은 타국의 대학생에겐 그저 모든 게 호기심 천국이었다. 말레이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후 2시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숙소에 가지 못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무거운 배낭부터 숙소에 두고 다니던가 해야 하니 말이다. 어느덧 목적지인 China Town에 도착했고 Red Dragon Hostel을 찾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알려준 주소지는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 호스텔을 잘 몰랐다. 물어보면 "Red Dragon Hotel?"을 연발하며 그 주변을 몇 번이나 맴맴 돌았던 거 같다. 난 그때 정말 민박 사장님이 Red Dragon Hotel을 호스텔로 잘못 알려주셨나 싶었다.


그러다가! 뒤에서 날 보신듯한 어느 어르신 한 분이

"Maybe I know that hostel. Go with me."

하며 손짓을 하시는 거였다. 반신반의하며 난 그분을 따라갔고,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호스텔을 열심히 찾았다. 그리곤 마침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난 그분께 찾아주신 노력에 대한 답례로 한국서 가져간 식품과 기념품을 드렸다. 이분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게 그 나라의 이미지로 각인이 되어버렸다.




하루 4천 원으로 묵을 수 있는, 40여 명 이상은 되는 여행객들이 사각형의 구조로 다닥다닥 붙어 운영되던 Red Dragon 호스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곳에 가서 잠까지 잤을까도 싶지만, 당시 난 아주 편하게 잘 쉰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의 젊음, 열정, 패기란, 그런 것 같다. 잠도 아무 데서나 잘 수 있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이런 내용을 떠올려서 적고 싶었다.

5년 뒤 다시 와서 찍은 부킷빈탕의 모습

이후 해가 질 때쯤 나가서, 말레이시아 및 쿠알라룸푸르의 상징 Petronas Twin Tower(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유명한 번화가 Bukit Bintang(부킷빈탕) 등을 둘러보았다. 그때까지도 피곤해서 숙소에서 쉴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트윈타워는 봐야지!' 하는 일념으로 나섰던 야행이었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라면, 다시 보기는 거의 불가능한 법이다. 그날 본 트윈타워는 참 멋졌고, 앞으로의 여행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정말, 사진을 제대로 못 남긴 게 참 아쉽다면 아쉽다.


그날, 대중교통이 끊기는 늦은 시간까지 야경을 충분히 감상하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택시비를 몰랐기에, 적정한 가격을 확인하려 택시를 잡은 후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숙소까지 얼마 드는지 확인하였다. 난 곧 숙소에 도착해 비용을 기사에게 지불 후, 씻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5년 뒤, KLIA 익스프레스 열차 안에서

3일째 되는 날 아침. 드디어 오늘! 유럽, 런던으로 넘어간다. 그날, 참 많이 설렜던 것으로 기억한다. '런던행 보딩 탑승 티켓'에 적힌 시간은 09:30. 현재 8시이고, KLIA 국제공항까지는 여유 잡아 1시간이니 그저 가면 됐다고 생각했다.


난 왜 이렇게 생각했었을까? 멍청했지만, 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패기는, 내게 보답으로 돌아왔다.


글을 자세히 보셨다면 알아차리셨을 수도. '보딩패스' 시간이 아닌 스톱오버를 거칠 때 받는 '보딩 탑승' 시간이었다. 그러니 최소 30분, 1시간 이상 일찍 왔었어야 했다. 그렇게 눈앞에서 런던행 티켓을 날렸지만, 담당자에게 패기 있는 태도로 부탁을 해서 어떻게 무료로 다음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국적기여서 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제 다음 런던행 비행기는 12시간 뒤였고, 난 그 시간을 후회로 보내는 대신에 유럽여행 공부 시간으로 삼아 책을 보면서 부족한 여행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지난 것은 지난 것이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내면 된다.


12시간이 지났고,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드디어 정말 꿈에 그리던 유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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