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진 저, 채륜서(출판사), 2025.05.30, p.251
브런치스토리 작가 필명 : 소위(소소한 일상의 위대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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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라니?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부사라면? 사과? 일본 아오모리 산 빨간 '부사(富士)'말인가?
'사과가 없다.' '사과가 없는 삶은 없다? 아무래도 제목이 좀 이상하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넘기자, 차례에서 뭔가가 사방으로 굴러 떨어졌다.
어! 이게 뭐지? 사과는 아니었다.
"너네들 뭐니?"
"우린 부사(副詞)라고 합니다."
"부사라니? 부사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다시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전, 대체로라고 해요."
"전, 너무예요."
"전..."
저자가 소개해 준 부사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례에만 나와있는 부사를 모으니 모두 57개였다.
그건 먹는 부사가 아니라,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선생님께 배운 8 품사 중 하나, 그 '부사'였다.(참고로 저자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7년 넘게 근무하였다). 무식이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그러게 국어시간에 졸지 않았어야 했다. 아뿔싸! 국어 선생님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부사(副詞)'는 용언(형용사, 동사)이나 부사, 다른 말 또는 문장 등을 폭넓게 꾸며 주는 8 품사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나무위키)_ 어쩌면, 차마, 미처, 무심코, 설마, 혹시, 괜히, 솔직히, 갑자기, 잠시, 오직...
출판사 책 소개글을 보면 "부사는 문장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는데, 사실 문장에서 힘을 실어 주고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므로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이 그처럼 솔직하게 드러나는 단어도 드물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렇게 부사를 주목한 것은 그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삶의 이면에 수많은 부사가 숨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부사들을 삶으로 초대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왔습니다. 우연처럼 다가와 가슴에 진하고 깊은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 부사들."
부사를 통해서 그녀는 찾으려고 하는 것이 있었다.
"수많은 부사 속에서 울고 웃으며 제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저자는 '나'라는 존재를 찾고 싶어 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녀를 삶의 여정 속에서 찾고 싶어 했다. 그리고 기억은 그녀를 어릴 적 모습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거기서 부사들을 만났다. 부사들은 그런 그녀를 보자 오랫동안 기다리다 만난 사람처럼, 숨박꼭지를 풀고 숨었던 곳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말없이, 정말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울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며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이내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녀는 엉엉 소리를 내어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런 그녀의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그건 사랑하는 엄마였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삶의 여정을 어릴 적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글을 써내려 간다. 그 여정에서 부사들을 만난다. 여러 생각과 말이 교차한다.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때는 왜?'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매몰차게 뿌리치기도 한다. 그녀는 꾸역꾸역 올라오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해한다'라는 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건 그녀를 더 서럽게 만들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꾹 꾹 짚어가며 읽어야만 부사를 느낄 수 있고, 그때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글이 무게를 지니고 깊이가 있다는 말이다. 덕분에 속독으로 책을 읽는 나는 매번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저자는 '대체로, 나의 결혼은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결혼했고, 결혼 생활은 평범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 부부라는 형태로 살고 있다."
*대체로 : 요점만 말해서, 전체로 보아서, 또는 일반적으로
'너무, 미안해하지는 않을 거야. 아빠!'에서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아빠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아빠에게 '너무'미안해하지는 않으려 한다. 오랜 시간 아빠를 외면하면서 나를 미워한 만큼, 아빠에게 미안해하면서 또다시 나를 미워하며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너무 :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통해 아들을 향한 마음과 행동을 읽고, 아빠가 나에게 품었던 '아무리'를 떠올린다. "아무리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도 그 마음을 멈출 수는 없으며 영원히 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아무리 힘들어도 난 너를, 아무리 멀어져도 난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 정도가 매우 심함을 나타내는 말, 바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어린 여동생 소정이가 있었다. "결코, 너를 보낼 수 없어." 그녀는 자신이 엄마가 된 후에야 동생의 죽음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엄마의 상처와 고통, 절망과 한을 아주 뒤늦게 알아본 것이라 했다.
*결코 :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외동딸로서 경제적, 정신적 책임에 지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해 버린 순간이 있었다. 그것이 삼십 대에 감행한 가출이자 탈출이었다. 그때 집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즈음 나는 삶이 허무했다. 미치도록 허무해서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견달 수가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무턱대고 수녀원으로 메일을 보냈다. 서른두 살 어느 초여름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수녀가 되지 못했다. 이미 학교는 의원면직된 상태였고 모든 것을 정리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진짜 '나'로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순간을 그녀는 걸으며 버텼다.
저자는 책에서 삶의 굴곡마다 부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유와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고 말한다.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가면 뒤에 숨지도 않았다. 드러나면 드러나는 대로, 알게 되면 알려지는 대로,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었다. 그게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녀는 맞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구도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렇게 보였다. 때로는 폭풍으로, 때로는 햇빛으로, 그리고 안개와 바람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잊은 채 다른 것에 혼재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그녀는 책에서 "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했던 숨바꼭질은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은 채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삶에서도 저만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어야 하겠지요."라고 말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탄생한 이 책이 누군가에겐 위로와 공감이 되고 누군가에겐 이해와 수용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제가 건네는 부사들을 다릿돌 삼아서 맞닥뜨리는 고통의 순간들을 조금은 가벼이 넘어가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삶의 민낯을 다정히 쓰다듬을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에서 고전이라 일컫는 어거스틴이 쓴《참회록》이 생각났다. 《참회록》은 사람들이 그를 "성자"라고 부르지만 그 자신은 정작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한 인간에 의해 쓰인 매우 인간적인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실망과 실패, 진리 추구를 위한 방황과 자신의 죄,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저자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가지게 한다. 가족, 가정, 일, 생활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런 것들이 어떤 때는 고민으로 나타나고, 또 어떤 때는 삶의 짐으로 무겁게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을 사는 이유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기억할 것은 삶의 언저리에 걸쳐있는 많은 '부사'다.
명사처럼 드러나지 않고 그들을 만나야 겨우 드러나는 부사들이다. 부사들은 혼자서는 못 산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삶이 일을 저지르면 부사는 수습하느라 바쁘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같다. 반전을 만들어 내고, 토닥거려 주고, 같이 걸어주고, 기다려 주는 부사는 우리가 삶에게 '안녕!'하고 마지막 인사할 때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곤고한 삶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만 그런 것 같지만, 그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다. 인생 여정길에 작가가 만난 부사를 우리 역시도 만나고 만났을 것이다. 그들이 내 삶에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궁금한 이들에게 오늘 아침 이 책을 조용히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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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6월 16일(월) 소개해 드릴 책은 박선이(필명 : 선이) 작가님이 쓰신 《초등 아들 공부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