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의 밤 Oct 07. 2022

자유부인! 뭐하고 놀지?

네일숍에서 세신샵까지.


220812 +51일 (금)


술 약속이 있어서 11시에는 오겠다는 남편이 밤에 약속을 추가로 잡는 바람에 더 늦을 것 같다고 했다.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는 대신 공금으로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

시험기간이 끝나 한가한 대학생 의진이. 당일에 말했는데도 바로 와준 고마운 의진이.


5시 조금 넘어서 온 의진이에게 분유 타는 법을 대충 설명해주고 바람같이 빠져나왔다. 아니 사실은 조금 미적거리다 나왔다. 이대로 나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어서.

나오는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부터 의진이 타임인걸. 미안, 나는 나가야겠다.


바이크를 타고 나와서

제일 먼저, 오랫동안 반납하지 않아서 연체된 도서를 도서관에 반납하고 (경찰서에 가는 기분으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옆 동네에 가서 네일 케어를 받았다.

결혼 준비 때 이후로 처음 하는 네일 케어. 기왕 하는 거 티 팍팍 나는 확실한 레드 컬러로. 하고 나니 너무 색스러운가 생각이 들 정도로 빨갛다. 그래 이런 걸 원했다. 최대한 색스러운 거.


대기하면서 옆 가판대에서 산 2천 원짜리 반지까지 끼우니 다른 사람 손을 빌린 기분이다. 이게 뭐라고 기분 전환 제대로 된다.


그다음은 바이크를 타고 주변을 돌다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페에 왔다.

식물이 많아 싱그러운 공기와 따스한 색감의 조명으로 채워진 곳.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콘센트와 깨끗한 화장실 깔끔한 커피와 디저트들.

심지어 잔잔한 반주 음악이 나와서 집중이 잘 되네.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렇게 모든 박자가 잘 들어맞는 완벽한 휴식이라니...



이런 기분으로는 오늘 밤새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야지.





위의 글은

출산 후 50여 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쓴 일기다.

그때는 네일 관리와 카페 방문 정도도 엄청나게 리프레시가 되었다. 순수했구만.

그러나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


더 격정적인 휴식을 원하게 되는데 …


아래는 그로부터 딱 열흘 뒤에 쓴 일기다.




220822 +61일 (월)


오늘부터 아기가 일주일에 세 번씩, 세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간다.

바로 옆집으로. 아니 사실 옆방이라고 해야 더 맞다.

지금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빌라 두 동을 터서 한 집으로 만든 구조라 집 안의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옆 집이다.

우리 부부가 사는 곳은 2호, 저쪽은 1호라고 부른다.

지금은 1호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셋에 어른 셋. 옹기종기 모여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날!

5시부터 8시까지 자유시간이다! 너무 행복해!

어린이집을 맡기기에 너무 어린아이지만, 익숙한 환경과 친숙한 이모들이라 걱정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바람같이 나와서 시동을 건다.


오늘 예약해둔 곳은 처음 가는 1인 세신샵이다. 오토바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상가 안에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속눈썹 시술 샵 같이 생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훅 - 느껴지는 목욕탕 특유의 냄새와 습기. 완전 다른 세상이다!

정식으로 세신을 받는 건 태어나서 이번이 두 번째인데, 1인 세신샵이라고 하니 더 기대가 됐다. 이거 이거 자유부인에게 너무나 걸맞은 스케줄이 아닌가.


탈의를 하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이 쓰는 공간치 고는 꽤 넓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1인 욕조에서 냉차를 마시며 뜨끈하게 몸을 불리고 (아 행복하다…)

10분 정도 후에 배드로 옮겨 눕는다. 세신사 분께는 출산한 지 두 달밖에 안되었음을 알리고 복부 쪽만 주의해주시길 부탁드렸다.


드디어 세신 시작. 나는 때를 세게 밀면 아파하는 체질인데, 나에게 딱 맞는 세기와 강도였다.

세신이든 마사지든 나에게 잘 맞는 정도를 찾는 것은 은근히 엄청난 행복이지 않나?


그렇게 두 눈을 꼭 감고 행복하고 시원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

옆으로 돌아 누우라는 말에 눈을 떠보니

맙소사!

배드에 나의 몸에서 나온 게 맞을까 싶은 때가 가득하다. 아 이거 되게 부끄러운 거구나…. 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는데 공중목욕탕에서는 모두가 같은 처지라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이렇게나 집중적이고 프라이빗한 수치라니…



이후로는 아무리 세게 눈을 감아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아서, 내가 세신 배드에 누워있는 건지,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는 건지 어질어질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부끄러움과 시원함을 반복적으로 느끼다가,

어쩐지 오히려 덤덤해져서 ‘조명이 조금  어둡다면 장사가  잘되지 않을까, 음악이라도 나오면 덜 민망할텐데.  조언을  말어?’ 하는 고민에 빠졌다.


어쨌든 이번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또 오지는 않을 것 같아.


내 고민과는 별개로 프로페셔널한 세신사는 빨개진 내 몸의 모든 때를 밀고 부드럽게 거품을 칠하고, 헹궈주기까지 했다. (뜻밖의 신생아가 된 기분…)

이제 그만 끝내도 될 것 같은데… 싶은 그때,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머리까지 감겨준다! 와 뭐야 머리도 감겨주는 거였어? 너무 좋아. 특히 샴푸를 하면서 두피 마사지를 해줄 때 생각했다.


‘돈 많이 벌어야지. 많이 벌어서 여기 또 와야지. 친구들한테도 꼭 알려줘야지.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사람들 참 똑똑하다!’


세신을 마치고 나와 여유롭게 머리도 말리고, 로션도 바른 후 햄버거 하나를 허겁지겁 먹은 후 집으로 출발.

아 바쁘다 바빠.

참으로 짧고, 바쁘고, 노곤한 행복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씩씩하고 슬기로운 산후조리를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