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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Oct 29. 2022

애를 낳아도 소심한 여자

돈 내고 사서 피곤한 스타일

220826 +65 ()


요 며칠 사이에 아기는 옹알이가 늘었다. 아침에 기분 좋게 밥을 먹고 나면 귀여운 소리를 내고,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배냇짓의 미소가 아닌 뭘 알고 하는 웃음은 또 다른 충만함을 안겨준다.

그 작은 눈 안에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는듯한 빛이 담길 때면, 피곤함이 씻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서 하는 모든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주리라 다짐하게 된다.





그건 그거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동일하다.


오늘도 저녁에 1일 시터 의진이에게 아기를 맡기고 ‘발마사지 샵’을 다녀왔다.

회원권을 끊었을 때와 일반 결제 시의 가격 차이가 많이 나서 큰맘 먹고 회원권을 끊었는데, 마사지 베드에 눕자마자

범죄도시에 나올 법한 비주얼의 아저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뭐가 단단히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문도 활짝 열려있고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혹시라도 있을 비상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느라 어깨가 도리어 단단해지고, 피로가 쌓이는 기분...

아주 자연스럽게 허벅지까지 손을 올리기에, 종아리까지만 받겠다고 하고 손에 핸드폰을 꼭 쥔 채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 자연스럽다고?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내 몸을 주무르고 있다니.


분노와 긴장으로 뒤섞인 마음과는 다르게 발바닥을 괄사로 누를 때마다 간지러워서 움찔거리며 (세상 친절하고 착한 목소리로)

‘아 거긴 간지럽네요 ^^; 죄송해요’라고 사과가 연신 나왔다.

아저씨는 ‘그렇게 간지럼을 잘 타면서 뭐하러 마사지를 받으러 왔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고…

긴장되는 마음과는 반대로 자꾸 죄송하단 말이 나오는데…


‘아니 간지러운데 어떻게 해. 이게 죄송할 일인가? 아니 발바닥 간지럼 타는 사람 처음 만났나?

내 주변엔 발바닥 간지럼 타는 사람 엄청 많은데 왜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보는 거지?

역시 잘못 왔다. 말세다 말세야...


그나저나 남은 회원권은 어떻게 할까. 당근 마켓에 올릴까. 이 돈이면 그냥 산후 마사지를 한 번 더 받을걸.

아 근데 시원하긴 시원하다. 근데 비슷한 금액이니 지난번에 갔던 1인 세신 샵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오 근데 어깨도 해주네. 다음엔 건식으로 받아볼까. 아니야 다신 오지 않겠다고 했잖아.

이 회원권 얼마나 손해를 보고 팔 수 있을까. 어쩌자고 회원권을 덜컥 끊었을까.’



마사지를 받았는데 더 피곤해진 느낌, 후회로 얼룩진 마음을 애써 숨기며 마사지를 끝내고 나오니 사장님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다.



“예쁜 다리 마사지 코스 받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압이 세게 들어가는 걸 좋아하셔서…

마사지사를 순서대로 배치해드렸는데 다음에 말씀하시면 여자분으로 해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아 여자 마사지 분도 계시는구나. 말하면 되는구나. 물어보면 되는 건데…

애 낳고 나면 좀 더 뻔뻔하고 용감해질 줄 알았는데 애를 낳아도 소심한 건 똑같구나.


마사지 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다가 신발을 갈아신으며 드디어 긴장이 풀리고 공간이 친숙해지는 기분.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머쓱해서 물 한잔을 들이켰다.

무엇보다 또 올 수 있다는 생각, 돈을 허투루 쓴 건 아니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비로소) 상쾌!!



밖은 해가 뉘엿 뉘엿 지는 퇴근 시간. 건물 앞에 파는 트럭에서 파는 닭꼬치 하나 해치우고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배운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불편하면 이야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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