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지도 호쾌하지 않은 필라테스
임신을 하고 배가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운동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오래 하게 되면서 몸 여기저기에 군살이 붙고 임신까지 하고 나니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게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마침 집 바로 앞에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있는데, 기구 필라테스에 1:1 강습 위주이다 보니 회당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 까진 엄두도 못 내다가 임신 축하금으로 받은 용돈을 야금야금 모아 드디어 등록했다.
필라테스. 필라테스는 이름에서부터 뭔가 간지러운 부분이 있다. 게다가 날씬하고 마른 연예인들의 운동이라는 느낌이라 친해지기 어려운 느낌.
그보다는 신나고 화끈하게 춤 한바탕 추고 땀 흘리면서 얼큰하게 ‘운동 자알 했다!’ 하고 외칠 수 있는 방송 댄스, 줌바 댄스 같은 쪽이 훨씬 잘 맞았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문화센터에서 댄스 수업을 계속 들었다.)
헬스장을 잠깐 다닐 때 그룹 필라테스 강습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오히려 다녀오면 온 몸이 쑤셨다. 특히 안 되는 동작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아득 바득 따라 하고 있을 때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한심스러운 표정……. 에 마음의 상처를 두어 번 더 다닌 후에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때 몇 번 해본 경험으로 ‘필라테스 같은 운동은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하여튼 뭐가 됐든 ‘잘 맞는다’, ‘안 맞는다’고 판단하기에 나는 너무 인내력이 약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쉽게 오해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필라테스를 평생 하고 싶다.
하여튼 겪어보지 않고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어쨌든 갈 때마다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게 나 같은 변덕쟁이에게 아주 맞춤인 운동이다.
무엇보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편한 근육만 사용하는지 몰랐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도, 엉덩이에 힘을 줄 때도, 복근 운동을 할 때도
어깨, 어깨, 그놈의 어깨만 쓰고 있다니!
승모가 이렇게 올라온 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터프하고, 집중력이 필요한 운동이었다. 허벅지 사이에 링을 끼우고 조이는 동작을 하고 기구의 힘을 빌려서 몸을 들어 올리고, 코어 근육을 사용해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분명히 이 작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장 열 바퀴는 뛴 것처럼 미친 듯이 힘들었다.
첫날 완전히 녹초가 되어 배드에 드러누워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필라테스 우아한 운동인 줄 알았죠? 이것이 필라테스입니다.”
어떤 동작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할 때마다 아픈 느낌이다. 집에 가서 내가 얼마나 힘든 동작을 했는지, 필라테스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온갖 생색을 내며 말하고 싶다.
필라테스 기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몸매 자랑, 돈 자랑, 운동 패션 자랑하는 사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엄청나게 어려운 자세라서 올리는 거였구나. 숱한 연습과 노력으로 할 수 있게 된 거구나… 역시 뭐든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한창 고통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 조산 기운이 있어 입원을 두 번이나 하는 바람에 출산을 하고 나서 다시 다니게 되었다.
그나마 붙어있던 코딱지만큼의 근육들이 누워있는 동안 다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신생아를 돌보는 일이 이렇게 근력과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일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몸이 뻐근할 때는 마사지를 받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루 이틀만 지나면 몸이 다시 뻐근했다.
스스로 몸을 풀지 않으면, 올바로 근육을 쓰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다시 시작한 필라테스는 역시나 하는 동안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지만… 내가 나를 마사지하는 느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라고 쓰고 싶지만 선생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빈약한 근력에 경악하고 한숨을 쉰다.
‘와 어떻게 이렇게 척추 기립근이….. 하나도 없을 수 있죠?’
출산을 하기 전에는 선생님이 분명 ‘임신한 분 치고는 굉장히 유연하고 잘하고 계세요’라고 했는데 …..
아기를 낳고 나니 핑계 댈 것이 없어졌다.
그나저나 센터의 회원들이 어떤 사람들이길래 선생님은 나 정도의 사람에게 놀라는 걸까. 내 주변에 나보다 더한 애들 많은데. 격하게 놀라게 해드리고 싶다. 그래서 나를 보며 ‘아 얘가 아주 최악은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안타깝게도 방법은 없다. 이게 다 강습료가 비싼 탓이다.
운동인지 재활치료인지 모를 동작들을 기를 쓰고 하는 동안 옆에서 누군가가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다는 것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지만 사람의 근육과 뼈의 움직임을 잘 아는 선생님 덕분에 잘못된 힘의 분배를 의식하고, 안 쓰는 근육 쓰는 법을 배운다.
익숙한 것일수록 경계하는 연습을 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말이든 일하는 방식이든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편하고 쉽게 움직이는 길이 생긴다는 것.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세와 동작들을 편하고 쉽게 하느라 원래 써야 할 것을 쓰지 않고 다른 것을 끌어다 쓰고 있었을까.
모른 채 살았다면 내 승모는 도대체 얼마나 올라갔을까.
출산을 한 이후에는 잔뜩 늘어나고 약해진 골반 근육과 아랫배 근육, 짧아진 햄스트링을 강화시키고 늘리는 동작을 한다. 원래도 안되던 동작들이 애를 낳고 나니 더 안된다. 이게 내 몸이 맞나 싶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필라테스는 왠지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 내고 고생하는 이놈의 필라테스를 계속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 빨리 복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역시 가기 전 1시간 전부터 불행해진다. 오늘도 아프겠지, 가지 말까, 어디가 아프다고 해야 자연스러울까, 몸살이 났다고 할까? 아니 왠지 그럼 더 오라고 할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가서 아프다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