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회사 사옥 지정 주차 신청을 놓쳤다. 신청서를 작성해놓고 마지막에 제출을 안 눌...
덕분에 차를 못 가지고 다녀 오랜만에 대중교통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돈도 아끼고 걷기도 하고 오히려 좋아 라고 위로를 하고 있지만 이방인처럼 지하철 환승 구간을 헤매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 지하철과 버스는 거의 2-3년 동안 타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한들 이렇게 헤매고 낯설고 긴장될 일인가.
오늘 저녁에는 회사 송년회 겸 컨퍼런스가 있어서 메리어트 호텔에 갔다가(얼큰하게 취하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을 여러 번 헤맸다... 라기보다 그냥 고속터미널 역 안을 계속 빙글빙글 돌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지하철 역 안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다짜고짜 길을 물어올 때 '저기 써져있는데 왜 안 보고 물어보시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다짜고짜 아무나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어졌다.
요즘은 종종 '보니가 커서 내게 길이나 새로운 기계나 기술을 가르쳐줄 때가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지금 아주 쉬운 것도 못하는 보니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워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보니가 아직 서툰 것들,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떡 뻥을 못 집어먹거나, 손가락으로 딸랑이를 잡지 못해 버둥거리는 모습은 너무 귀여워서 가르치는데 인내심까지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반면 엄마에게도 동일한 생각을 갖지만 매번 실패한다.
그 사실 때문에 내가 싫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위로 아래로 도움이 필요한 소중한 존재들 사이에 끼어 가르쳐주며 살아가야 하는 위치는 분명 소중하고 과분한 역할일 텐데 순간순간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보니를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키운 모습을 상상한다. 다 까먹었다고 하시면서도 자동으로 나오는 어떤 노래나 몸짓, 표정들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서 짠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가정어린이집과 공부방을 운영했다. 집에는 늘 또래 아이들이 바글바글했고 한 달의 한 번은 꼭 시내로 나가는 날로 지정해서 주말에 다 같이 움직였다. 엄마는 적게는 두 세명 많게는 대여섯 명의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광화문 광장이나 우표 박물관, 남산타워, 사이언스 박물관, 시립미술관, 롯데월드 같은 곳을 갔다. 40대의 엄마는 무슨 에너지가 있어서 애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체험학습까지 데리고 다닌 걸까.
보니를 키우면서 과거의 엄마를 자주 떠올린다.
이제는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더 이상 노련하지 않은, 다짜고짜 길을 묻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저물어버린 슈퍼 우먼.
지하철 환승구간을 헤매면서 생각해보니
사실 엄마는 그때도 노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 지금보다 안내 표기가 친절하지 않던 시절. 초등학생들과의 서울 나들이가 쉬웠을 리 없다.
그래도 나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걷는 엄마가 길을 잃어버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눈빛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엄마 뒤를 엮고 있어 엄마는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이곳저곳을 누비고 싶다. 그땐 기술이 발달해서 애들이 나에게 길을 가르쳐줄 것 같기도 한데... 멋모를 때 부지런히 데리고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