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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Mar 08. 2023

아침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수영장이 주는 쓸쓸함에 대해


오늘 드디어 아침 수영을 가는 날.

월/수/금 아침 7시 클래스인데 지난주 금요일, 이번주 월요일은 못 갔다. 못 간 날 아침, 침대에 누워있는 날 보며 남편이 얼마나 비웃던지 오늘은 꼭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일단 기상까진 성공이다.

어제 1시 반에 자서 일어나는 게 힘겨웠다. 침대 맡에 걸터앉아 ‘가지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편의 비웃는 얼굴이 떠올라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바이크를 타고 도착하니 6시 45분. 날씨가 많이 풀려서 달리는데 기분이 좋았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수영을 하는 건 몇 년만이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까지 줌바나 방송댄스는 꾸준히 했었는데 수영은 그보다 더더더더 몇 년 전의 일이다.

늘 느끼지만 오랜만에 수영장에 가면 바보가 된 느낌이다.

열쇠를 받는 단계부터 탈의실에 입성할 때까지 노련한 아주머니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는 게 외롭다.

그래도 와본 곳이니 최대한 덜 헤매는 척하면서 길을 찾아갔다. 락카를 찾아서 옷을 욱여넣고 수영복을 챙겼다.

탈의실 한쪽에서는 역시나 베테랑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아니 내가 어제 걔한테 전화했잖아”

“뭐래?”

“자기는 몰랐대~”

“어머 미 X 년~

“아 운동하기 싫다. 오늘 좀 놀다 들어가자”

“아이고 나도 하기 싫다. 오늘 좀 놀다 들어갈까?”

뭐지…? 왜 수영하러 오셔서 여기서 논다는 거지? 뭘 하면서 노시는 거지?

엉망진창인데 부러워. 저런 노련미, 자유로움..

샤워도구를 지금 가져가야 하나? 샤워타월을 안 가져왔네, 아 맞다 칫솔 치약도 안 가져왔네. 그냥 일단 수영 용품만 가져가자. 이번에 새로 산 수영복은 5부 수영복인데 혹시 5부를 입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온갖 불안과 염려를 가지고 샤워실에 들어가니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내 앞의 아주머니가 마침 5부 수영복을 갈아입고 계셔서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저 분만 따라가자’

샤워도구를 안 가지고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물로만 몸을 씻고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5부 아줌마를 따라가고 싶었는데 딱 봐도 그는 나와 다른 레을 달릴 것 같았다. 수영장 들어가자마자 사라진 5부 아줌마..
 


수영장 한쪽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권태로운 표정의 강사님이 앉아계셨다.


“저… 처음 왔는데 어떻게 하면 되죠?”

“일단 물에 들어가 계시다가 준비운동 하면 따라 하시면 돼요.”

그렇게 7시 정각이 되자 스물스물 사람들이 모여서 물에 들어왔고, 물 안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나 때는 모두 밖에 나와서 했는데 요새는 이렇게 하나 보네. 덜 부끄럽고 좋다.

본격적으로 강습이 시작되고 강사님이 나를 보며


“어디까지 하셨죠?”라고 묻길래

“아… 저 오늘이 처음인데 예전에 배우기는 배웠어요.”

“어디까지 배우셨어요?”

“그때 배우기는… 접영까지 했는데…”

“회원님은 2번~”

아니 잠시만 이 양반아, 배우기는 배웠는데 기억 하나도 안 난다는 말 하려고 했단 말이야!

나 2번 아니야!

이미 변명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초조하게 2번 타자가 되어서 자유형을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한 바퀴 돌자마자 집에 가고 싶었다. 숨은 왜 이렇게 차고 몸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뒤 이어 평영, 배영… 뭔가 진행될수록 몸이 풀리는 게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게다가 내가 수영하는 것을 본 강사님이

움직임이 작다, 더 깊게 들어가라, 어깨를 써라, 고개를 더 넣어라, 손가락에 힘 빼라 등등 조언을 시작했고, 마침내 반접영 타임이 되어갈 때쯤 난 5번 타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2번 아니라고 했잖아요!!! 속으로!!

(아까 탈의실에서 ‘좀 놀다가 들어간다.’ 던 아주머니들은 저 쪽에서 훨훨 날고 계셨다. 아 놀아도 되는 분들이셨구나.)

뭐든 처음은 서툴고 어설프지만 수영장은 뭐랄까. 더 우주의 바보가 된 느낌이다. 실패와 좌절의 연속. 돈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

그래도 대체불가한 행복이 있으니, 수영장을 나왔을 때의 상쾌함… 그래 이거다. 이 맛에 아침수영 하는 거지!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된 기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고 있고, 보니는 아침을 먹고 놀고 있었다.

“어땠어?

“나 양지바른 곳에 묻어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힘들었어?”

“아니 그냥 생각보다 괜찮은데 팔이 안 올라가네. 오늘 회사 못 갈 것 같아.”

어영부영 안 올라가는 팔로 운전을 해서 출근을 하니 10시.  깨어있은지 4시간 가까이 되어간다. 출근밖에 안 했는데. 이게 말이 돼?
하루가 이렇게 길다고?
그리고

출근을 하고 생각이 났다. 아 맞다. 나 양치 안 했네…. 양치나 하러 가야겠다.


과연 금요일에 갈 수 있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나 다시 2번이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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