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친절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안다.",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안다", "직장에서 친절하면 호구 잡힌다"
이제는 익숙해진 21세기의 직장 내 격언들이다. 어느 새 직장 생활 10년 차가 넘어가고 있지만 이런 격언을 접하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자니 때론 너무 맞는 말이고, 그렇다고 긍정하자니 이런 말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한창 어렸을 때는 나도 "내 사람들만 챙겨"라는.... 지금 들으면 '웃기고 있네' 싶은 태도로 회사 생활을 하기도했었다. 그 때는 내가 회사에서 베푸는 친절은 오로지 '나와 친한 사람들만의 것'인 유니크한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아....... 어린 날의 나는 어쩜 그렇게 시야가 좁고 생각이 짧은 데다가 부끄럽기까지 했단 말인가......
그런 싸가지가 바가지였던 나는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 싹바가지 종합 패키지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야 사람이 왜 회사에서 친절해야 하는 지, 뼈 저리게 깨달았다. 그것은 친절함이 오래도록 지속하기 어려운 끈기와 인내와 체력을 요하는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고 사람은 어렵고 귀한 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소중한 깨달음을 나에게 전해준 그 회사의 동료들은 어느 정도로 싸가지 없었냐면 아침 출근 길이나 엘베에서도 만나도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회사에는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 매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싸가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냐면..... 먼저 인사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면? 그걸 배려가 아니라 챙기는 상대방이 '자신한테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싸가지 없고 멍청하기까지 한 그들은 하다하다 삼복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을 방문한 거래처 사람에게 물 한 잔 내밀지 않았다. 내가 주관한 회의도 아니었지만 창피하기 그지 없어서 사무실에 항시 자리하고 있고, 심지어 미팅 용으로 테이블에 올려져 있기 까지 했던 상품(심지어 그 상품이 물이었다! 물을 파는 회사에서 물을 팔려고 만난 거래처 사람이 더워하고 있는 데 물 한 병 내밀지 않는 기가 막힌 광경) 을 내밀었다. 가실 때도 한 가득 싸드렸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혼자 정상이기는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법이다. 혼자서만 얼굴이 시뻘개지기를 몇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꼬박 꼬박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고 기분 좋아하는 (이겼다는 생각에) 이상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점점 치밀기 시작했다. 나도 '저렇게! 나쁜 사람이 되자! 할 수 있다! 노 싸가지! 할 수 있다! 직장 내 일진 세력!' 을 되뇌이며 흑화해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 때 쯤에는 사람을 보아도 후딱 인사하지 않는 버릇과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타자마자 누르는 버릇, 그리고 저 멀리서 회사 사람이 뛰어오는 것이 보여도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절대로 힘을 풀지 않는 연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걸 연습해야 하다니 정말 부질없지만 그 간단한 예의를 지킨 것 하나로 나를 이겼다고 기분 좋아하는 동료를 생각하니 나도 지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쓰레기더미 + 악취에 눈을 찌푸리는 인간 1명이었다면 어느 새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냥 다 같이 쓰레기더미가 되어 있는 꼴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쓰레기더미에서 인간이 늘어나는 경우는 없다. 인간은 놀라울만큼 쉽고 빠르게 쓰레기화 된다.
고양이와 토끼의 신체 언어 중 서열에 관한 것이 반대라고 한다. 고양이는 핥아 주는 쪽이 서열이 높고, 토끼는 핥음을 받는 쪽이 서열이 높아서 서로 "내가 위군?" 생각하면서 서로 만족한다는 귀여운 이야기. 물론 회사에서 이런 귀여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시간을 저 사람들'만큼은' 구려지기 위해 애를 쓰다니 이게 무슨 낭비란 말이야!!!!
시간이 아깝고 이런 상황이 얼척 없고 저런 사람들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기는 정말 정말 싫었기 때문에 호구가 잡히더라도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물어본 타 팀의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해 줬다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쟤는 좀 맹해" 라고 소개했다는 타 팀장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팀장는 부서도 다르고, 층도 다르고, 업무 연관성도 전혀 없으며 그 팀장이 나에게 물어본 것은 심지어 업무 이야기도 아니었다. 타인의 질문에 상냥하게 답해주기만 해도 "맹하다"는 레퓨테이션이 쌓이는 업계라니. 하지만 그래도 계속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들과 절대로 죽어도 같아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구렁텅이를 벗어났고 친절하지도 않아서 맹하다는 평가도 받을 일 없었을 그 사람들은 여전히 그 회사에 같이 모여있다. 비지니스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를 걷는다는 소문이 업계를 아주 멀리 떠나있는 내 귀에도 허구헌 날 들려온다.
어느 회사를 가면 당신의 친절이 당신을 비난하는 원인이 된다. '맹하다, 순진하다, 곱게 자랐다,일이 덜 힘든가봐? 이것 좀 더 할래?(업무 얹어주기), 너가 잘못한 것 아니야?(잘못 뒤집어 씌우기)' 등. 어떤 동료는 당신의 친절을 "얕잡아봐도 괜찮아"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잊지 마라. 친절을 업신여김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이 멍청하고 불행한 것이다. 당신의 친절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보내는 일터에서 타인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당신이야 말로 강한 사람이다. 당신의 친절함을 간직하고 그것을 당신의 카나리아로 여겨라. (* 옛날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산소 포화도에 민감한 새인 카나리아를 데리고 일을 나갔다고 한다. 카나리아의 움직임이 둔해지면 산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라고)
당신의 친절함은 어떤 회사에서는 '어디서 이런 인재가' 싶을 만큼의 귀하고 귀한 자산이고, 어떤 동료에게는 고단한 업무에서의 유일한 숨쉴 구멍이다. 그런 회사에서 만난 동료라면 절대로 당신의 친절함을 우습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그런 동료가 있는 회사라면 적어도 당신이 하향 평준화를 위해 노력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의 친절함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회사와 동료의 '맑음 지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해라. 당신이 항상 친절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런 당신의 마음 속 카나리아의 움직임이 둔해진다는 것만큼 그 회사나 동료의 탁함을 정확하게 판단해주는 지표는 없을 것이다.
WORK HARD. BE KIND. THEN AMAZING THING WILL HAPPEN
열심히 일하세요. 사람들에게 친절하세요.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직장에서 친절하면 호구 잡히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네, 그럴수도 있습니다" 다.
하지만, 친절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