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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현 May 15. 2024

빨간 원피스-4장

스물 한 살의 이현수는 대학생이랬다. 서울 안에 있는 좋은 대학이었다. 이름을 대면, 물론 서울에 있는 대학 이름이야 누구나 다 알지만, 그래도 이름을 대면 끄덕끄덕하는 그런 대학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이 일을 한다고 했다. 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다. 선희는 대학 문턱에도 안 가봤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도 안 썼다. 대학은 못 생긴 애들이나 가는 거야. 선희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러나 애인이 대학을 다니니까,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했다. 돈은 나한테 많아.

“너, 누나 사랑하니? 아니, 사랑할거니?”

선희의 눈동자를 보면, 남자라면 어느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 같이 살까?”

현수는 동의했고, 선희는 회사로 박송운을 찾아갔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 남자는 선희를 이해한다고 했다. 대화가 끝났으나, 선희는 회장실을 안 나갔고, 그러자 남자는 금고를 열더니 수표 한 장을 주었다. 선희는 동그라미를 세어보았고, 그런대로 만족했다. 아마 내가 살던 그 빌라에는 새 여자가 들어오겠지.

“집에 있는 물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송운의 질문에 선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전부 버려.”

이현수는 대학생이고, 이제는 술집도 그만두었기 때문에, 당장 돈이 궁했다. 선희는 수표를 은행에 가져가 현금으로 바꾸었고, 절반은 다시 은행에 예금을 했다. 이 정도면 이 년은 버틸 수 있어.

한 달에 삼백만 원 정도만 쓰면서 둘이 알콩달콩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좀 있으면 아이도 생길 것이고. 선희는 마트에 가서 장을 직접 보았고, 음식을 준비한 다음, 남자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선희는 어서 빨리 아이가 생기기만을 기대하며, 밤마다 현수를 보챘다. 현수는 졸린 눈을 겨우 뜬 채, 선희의 요구를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일 년이 지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결국 선희는 강남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산부인과에 갔다. 깔끔하게 지어진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1층에서 접수를 하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선희를 보자마자, 나이가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선희는 이때만큼은 자신의 미모가 저주스러웠다. 의사의 탐욕스러운 눈초리가 선희의 얼굴에서 가슴을 지나 다리 사이로 지나갔다. 꿀꺽 하고 침을 넘기는 소리가 선희의 귀를 때렸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저, 임신이 안 되서…….”

“그럼, 내진을 해야 합니다.”

의사는 선희의 말도 안 듣고, 장갑부터 찾았다.

선희는 진료실의 의자 비슷한 것 위에 누웠고, 물론 아래는 다 벗은 채로. 그러자 의사가 오더니 선희의 진찰복을 위로 걷었다. 허리 아래쪽으로 찬바람이 쌩 하고 지나갔다. 잠시 후 의사의 손이 아래를 만지기 시작했다. 온 정성을 들여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갑자기 손가락 하나가 몸속으로 쑥 들어왔다. 헉! 손가락은 몸속 여기저기를 쑤시더니, 휘젓기까지 했다. 선희는 신음 소리가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이런 모욕까지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진찰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의사는 정말로 꼼꼼히 선희를 검사했고, 선희는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진찰이 끝나고 옷을 입고 나오자, 의사의 얼굴이 심각해 보였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기가 참으로 그렇습니다만…….”

선희의 얼굴이 긴장으로 바짝 얼어붙었다.

“예전에 몇 번 중절 수술을 하셨더군요.”

선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다 이기적인 남자 놈들 때문이다. 콘돔을 끝끝내 거부하는 남자들은 차라리 애교였다. 하다가 중간에 콘돔을 빼버리는 놈들도 있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임신이 상당히 힘들겠습니다.”

선희의 마음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험관 아기를 하면 어떨까요?”

다 죽어가던 선희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은 것만 같았다.

“그거를 하면 될까요?”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의학 기술이 완전하지 않으니까요.”

“선생님, 하고 싶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선희.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좋습니다.”

남자의 눈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비용은?”

“시험관이 그리 싼 편은 아닙니다. 한 번에 삼사백 만 원 정도 합니다. 하지만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정부 지원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선희는 수표를 떠올렸다. 생활비로 절반을 떼어놓은 것이 아직은 남아 있었지만, 비상금으로 저금해 놓은 절반을 이제 꺼내올 때가 된 것이다.

병원을 나선 선희는 현수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 진찰 받았어.”

“뭐래?”

현수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아득히 들려왔다.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해 줄께. 어디야?”

“학교.”

선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얀 구름들. 너희는 좋기도 하겠다. 그렇게 걱정 없이 흘러가니까.

“현수야, 나, 엄마 보러 갔다 올께.”

“그래. 그럼 나도 오랜 만에 친구들 만나고 싶어.”

“내일 보자.”

선희는 전화를 끊고, 연락처에서 엄마 번호를 찾아 눌렀다.

리리링~ 리리링~ 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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