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 옴므(Arenna Homme) 2018.12 기고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힙스터 아이템인가?
진짜 힙스터는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걸 경멸하는 이라는 농담이 있다. 어느새 자연스레 마케팅 용어로 쓰이게 된 힙스터라는 표현이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은 이에게 더는 ‘힙’하지 않은 것이다. 힙스터라는 표현은 부정할 수 있어도 힙스터 시장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시티팝 열풍이 대표적이다. 아무도 저성장 시대, 1980년대 일본 버블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 30년 만에 다시 유행해 케이팝에서까지 재현될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거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를 사는 청년들이 겪지 못한 노스탤지어를 그리는 형태로 시티팝을 소비할 수도 있고, 패션, 디자인,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80년대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시티팝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음악 중 하나라는 점이다. 시티팝도 일부 음원은 유튜브에 존재한다. 그 덕분에 1년 전 업로드 된 마리야 다케우치의 “Plastic Love”는 현재 2,200만이라는 재생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 시티팝 음반은 음악가의 의지 또는 여러 이유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에 LP 레코드 시장까지 커지며 시티팝 LP 레코드는 근 몇 년 사이 가장 시장가격이 오른 품목이 됐다.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힙스터 아이템인가?
남들과 다른 음악을 듣고자 하는 힙스터가 최근 관심을 보이는 음악은 아시아 음악이다. 홍콩 영화나, 제이팝 열풍 정도를 제외하고 아시아는 서로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각자 쓰는 언어는 영어보다 멀고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다. 정치 상황도 다르고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서구권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 공통된 문화라 부를만한 것도 없다. 근데 왜 갑자기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지금까지 탄생한 거의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만큼 개인이 소비하는 음악 취향도 다양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모아 놓은 플레이리스트, 즐겨 듣는 음악을 바탕으로 좋아할 만한 음악을 추천하는 개인화 AI 서비스는 이를 부추겼다. 여기에 음악 유통의 국경도 허물어졌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동시에 같은 음악을 소비할 수 있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처럼 국가와 관계없이 같은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 전에 없던 동시대의 감각이 생겨나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은 반대급부로 위에서 언급한 LP 레코드 시장과 공연 및 페스티벌 시장의 규모를 키웠다. 지금 한국이 내한 공연 불모지였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이제 전 세계의 동시대 음악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듣고 좋아하는 음악은 LP 레코드를 사거나 공연을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아시아 음악 신이 탄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의 음악가는 음반을 발매한 후 유럽 투어를 돌며 공연과 굿즈 판매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수입을 얻는다. 미국의 음악가는 전미 투어를 돈다. 한국, 대만, 홍콩, 태국의 음악가는? 어쩌면 아시아 음악가가 아시아 투어를 도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음반 시장이 붕괴한 지금 자국 시장에서만 성과를 거두기엔 한계가 있다. 지금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음악가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다. 영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들었던, 또는 유행하는 영미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교류할 여지가 전보다 넓어진 것이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고 소셜 미디어로 알리고 소통하며 서로의 나라에서 공연하고 팬덤을 늘린다. 어쩌면 이는 아시아의 음악가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일 수도 있다.
그게 힙스터의 남들과 구별짓기위한 취향이든, 아시아 음악가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든. 아시아에서 아시아 음악을 소비하는, 아시아 음악 신(scene)이 탄생하고 있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이 소속된 범아시아 레이블 88라이징(88rising)는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힙합을 중심으로 한 미국에서 유행하는 문화를 아시아식으로 재해석한 영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이들의 컴필레이션에서 하이어 브라더(Higher Brothers)와 함께 부르기도 한 태국의 품 비푸릿(Phum Viphurit)은 “Lover Boy”의 히트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만 수차례 공연했다. 대만의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는 <Jinji Kikko>와 함께 한국에 알려진 후 수차례 공연하고 한국의 노퓨쳐프로덕션(nofuture PRODUCTION)이 신곡 “Slow”와 “Oriental”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의 아티스트를 위한 페이지에서 영기획에서 발매한 룸306(Room306)의 음원을 가장 많이 들은 도시는 타이베이(대만), 싱가포르(싱가포르),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등 모두 아시아 도시였다. 아시아는 분명 좁아지고 있다. 그게 힙스터의 남들과 구별짓기위한 취향이든, 아시아 음악가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든. 아시아에서 아시아 음악을 소비하는, 아시아 음악 신(scene)이 탄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