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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박국 May 24. 2016

공정도 경쟁도 필요 없는 아이돌의 탄생 - I Of I

나일론 5월호 기고 - 프로듀스 101 베스트 11


프로듀스 101 제작진이 출연진에게 가장 먼저 한 건 A부터 F까지 실력으로 등급을 나누고 무대에 설 자리를 배치하는 일이었다. 멤버 선정은 등급이 아닌 투표로 결정됨에도 말이다. 한국 아이돌에게는 고 스펙을 요구하는 신입사원처럼 유독 실력이 요구된다. 이들은 중간 경연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듯 고음이 성공하면 환호를 지르고 고음에 실패하면 안타까워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실력은 차별화의 주요 수단이다. 한편으로 제작자는 립싱크 금지 파동부터 이어진 질 낮은 음악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청자는 젊음과 성적 매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위한 수단으로 실력을 사용한다. 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매일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 이들의 모습은 노력과 열정이라는 단어로 포장된다. 70년대 펑크(Punk)의 등장으로 실력과 음악의 매력과 무관하다는 게 증명된 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팝 시장에서 누구도 리안나(Rihanna)의 가창력을 논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실력이나 기존의 아이돌에 요구되는 미학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기준으로 멤버를 꾸려봤다.  



김소혜와 아리요시 리사가 센터를 맡는다. 멤버들의 실력은 모두 이들을 기준으로 한다. 이들이 부를 수 있는 만큼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만큼만 춤춘다. 고음은 윤서형을 기준으로 한다. 3단 고음 같은 거 낼 필요 없이 자기 음역에 맡는 노래만 부르면 된다. 프로그램에서 다이어트 대상자로 낙점됐던 강미나는 이 그룹에서 체형 표준을 맡는다. 모두 무리한 다이어트 없이 자신의 체형 그대로 무대에 서면 된다. 인터뷰는 홍콩 출신의 응 씨 카이가 맡는다. 다른 걸 그룹처럼 리더가 또박또박 뻔하고 힘찬 이야기를 하는 대신 서투른 한국어로 솔직하게 대답한다. 라디오스타에는 임나영이 출연한다. 애교를 보여달라는 아저씨 패널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무표정으로만 대응한다. 보컬 톤은 김주나를 기준으로 한다. 이 그룹은 밝고 희망찬 노래 대신 21세기 한국의 현실과 구성원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노래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황인선은 그룹의 평균 나이를 높인다. 이모 캐릭터로 사랑을 받은 것처럼 젊음이 아이돌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걸 대변한다. 자신밖에 모른다며 네티즌의 질타를 받은 유연정과 오서정은 이 그룹의 인성 기준이다. 이들의 나이는 겨우 각각 17세, 21세다. 좀 철없게 굴면 어떤가. 인성이 비뚤어진 건 그들이 아니라 카메라 앞의 모습만 보고 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고 공격을 퍼붓는 이들 아닌가? 마지막 멤버는 건강 문제로 조기 탈락한 마은진이다.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다. 한 멤버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모든 이가 활동하지 않으며 자신의 건강을 돌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걸그룹의 이름은 "I.O.I"라고 한다. 외부의 공정한 판단 따위 필요 없고 경쟁하지도 않는, 자신 그대로를 보이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은 "I Of I"의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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