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억하다. 휴먼의 2018 유럽여행
24살의 나는 50일의 계획을 잡고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어 확인 해 보니 여정의 39일째 되는 날 인터라켄에서 라우터브루넨으로 가는 열차를 탑승했다.
숙소 예약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아무 게스트하우스에 침대가 남으면 들어갈 생각이었다.
결국, 우연히 열차 안에서 만난 분이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인 Stoki House로 따라가서 남은 침대를 얻었더랬다.
그리고 2박 정도를 생각했던 그곳 생활이 하루를 늘리고 또 하루를 늘려서 4박 5일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런 기억.
그곳이 라우터브루넨이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스위스 패스와 현금 조금 그리고 작은 카메라만 가지고 숙소를 다시 나섰다.
열차시간은 밤 10시 2분, 아마 돌아올 때는 열차가 끊길 것 같았다.
이 시간에 올라갈 수 있는 건, 꽤나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라켄을 출발하여 올라가는 거의 마지막 열차였으나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이미 여행자들은 여행을 마친 시간이었고,
이 여행자의 마을에서 현지인들은 하루를 마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두어 명의 여행객들이 열차를 기다렸을 뿐 그 이상의 인기척은 없었다.
보통 이 역은 그린델발트(Grindelwald)와 융프라우를 가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아침부터 북적이는 곳이다.
내가 갔던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은 보통 쉴튼 호른(Schilthorn)을 가기위한 거점 정도로만 인식되는 마을이다.
그런데 그 마을에 4박 5일이나 있었으니 오래 기억에 남을 만도 하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려니 옛날의 기억들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았다.
하루는 폭포를 구경하러 갔고,
하루는 쉴튼 호른을 케이블카가 아닌 두 발로 오르고 내렸다.
하루는 삼계탕을 해 먹는다고 부산을 떨었고,
그 동네의 55센트짜리 맥주는 죄다 쓸어왔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오가는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직접 만든 요리로 이야기를 하며 보냈었다.
밤늦게 시골마을에 가 봐야,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돌아다니지는 못 할 것이다.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을 했다.
도심지 같이 이곳저곳에 가로등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곳을 오랜만에 걷고 싶었다.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어 추억하고,
‘그땐 참 좋았지’ 라며, 되뇌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했다는 방송을 해주고 있었다.
역 주변은 사실 크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맥주와 식재료를 샀던 슈퍼인 COOP 정도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깜깜한 마을을 홀로 깊은 곳까지 걸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적당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지금 시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던 작은 바가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500~6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적당하게 쉬어 갈 만한 바를 찾았다.
맥주 한 잔, 작은 햄버거 하나.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참 좋은 장소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오늘의 일들을 몇 가지 적어 본다.
맥주 한 모금으로 한 줄 한 줄 정리해 본다.
어느 날 보다 기나긴 이 하루를 정리해 본다.
그러다 영국에서 바이크 여행을 온 둘을 만났는데...
영국에서 시작된 이들의 여행은 유럽 대륙으로 이어져 몇 날 며칠을 여행 중에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다양한 문화와 국가가 엮여있는 유럽이 부럽기도 하다.
마이크의 SNS 에는 온통 바이크로 하는 여행에 관한 찬사와 이야기가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보면 언젠가는 이런 형태의 여행도 꼭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들과는 짧은 인연이었지만, 언젠가 서로의 국가를 방문하리라 약속을 하고, 지금도 SNS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짧은 라우터브루넨의 방문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
‘지금보다 젊었기 때문에 즐거웠을까?’
‘지금보다 걱정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즐거웠을까?’
‘지금보다 자유로웠기 때문에 즐거웠을까?’
‘그러면 즐거움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도 저도 따지지도 않고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 때로는 그립다.
기차가 모두 끊긴 시간 나는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어느덧 자정까지 10분이 남았다.
아침 4시에 일어나 20시간의 기나긴 하루를 꼬박 보낸 이날 하루.
잊혔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날의 추억 마져도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그때 4박 5일간 만났던 이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었던 그럼 밤.
이 작은 마을의 소중한 기억이 오래오래 남길 바라며.
2018년 휴먼의 유럽 여행 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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