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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Apr 18. 2019

여행자 / 김영하


꽤 오래 전부터 꽂아두기'만' 했던 책을 이번에 꺼내 펼쳤다. 언젠가 하이델베르크를 가게 되면 그때 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냥 읽는 게 빠를 것 같다. 


p.150

이렇게 하이델베르크를 세 번 여행했다. 언젠가 불문학자인 김화영 선생님의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 있다는 것, 내가 늙어간다는 것, 그런 달콤한 멜랑콜리에 젖어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조라는 뜻일 것이다.

콘탁스G1과 장 보드리야르


프라하를 2011년에 가고, 2017년에 다시 갔었다. 2011년에는 2박 3일만 머물러, 그토록 가고 싶었던 카프카 박물관과 스메타나 박물관을 빠트렸다. 그래서 2017년에 다시 갈 때는 마음먹고 프라하에서만 9일을 보냈다. 늘어난 일정만큼, 걸음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오는 '내'가 달라져 있단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프라하를 다시 갈 마음이 아직 안 드는 건, 그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하이델베르크를 세 번이나 간 김영하가 대단하다.



p.152

나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시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를 찾아갔다. 숲처럼 나무가 우거진 묘지에는 먼저 죽은 자를 기리러 온 늙은이들만 서성대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걷고 말이 없었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미 죽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콘탁스G1과 장 보드리야르


프라하에서 9일을 머물다보니,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시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도 찾게 됐다. 실은 비셰흐라드라는 옛 성터가 시간이 흘러 공동묘지가 된 거다.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얀 네루다... 잠들어 있는 인물들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죽은 자가 산 자 같고 산 자들이 죽은 자 같았다.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야겠다. 뒤늦게 이 책을 보며, 비셰흐라드를 떠올리며, 괜스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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