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12월, 서울보다 따뜻했지만 바람은 셌다. 모든 불이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파도 소리인가 했던 소리. 그 뒤엔 바람인 걸 알면서도 파도인가 가만 들어 보곤 했다. 바다가 좋아서 파도이길 바랐는지.
한번은 자다 깨서 눈을 멀뚱히 뜬 채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한숨처럼. 마음에 뭐가 걸린 게 있었나. 호흡이 만든 소리가 귀에 걸리는 바람 소리처럼 파도 소리랑 닮아 있었다. 그 순간엔 파도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파도처럼.
파도 같은 숨을 쉬고 보니, 파도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 들이치는 걸 막을 수 없고 빠져나가는 걸 가둘 수 없다. 파도에는 뜻이 없다. 다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다가 잠으로 흘러들었다. 뭍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