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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om Feb 01. 2024

8분 47초간의 여행

#PatMethenyGroup

결국은 재즈!


  20대 초반에 들었던 말이다. 음악을 듣다가 결국 마지막에 찾게 되는 장르는 재즈라고. 십 대 시절에는 나름 다양한 음악을 편견 없이 들었다 생각했는데 그때의 나에게 재즈는 무질서하고 정돈되지 않은 듣기 불편한 음악이었으며 먼저 찾아 듣기는 힘든 장르였다. 


  대학교 때 선물로 받은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2집 앨범 "Shadow Of The Moon"은 재즈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듣기에 어렵지 않아서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이후 김광민은 나의 최애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그의 음악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에 피아노 악보집을 샀다. 책 뒤편에는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소개가 있었다. Keith Jarrett, Herbie Hancock, Chick Corea, Miles Davis, Jaco Pastorius, Pat Metheny 등 그의 추천한 앨범을 시작으로 재즈를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처음 접했을 땐 불편하기만 했던 재즈가 그 장르만의 고유한 특징을 알게 되면서부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냥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줄 알았던 곡들 속에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으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하며 연주자들 사이의 교감(Interplay)까지 알아챌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 이미 그 세계에 빠져버렸다고 보면 된다. 관련서적과 잡지를 읽으며 점점 더 매료되었다. 


  즐겨보던 잡지 MM Jazz의 한 코너가 있었는데 독자가 좋아하는 앨범 혹은 곡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형식이었다. 악보집의 뒤편에서 시작한 앨범에서 시작된 나의 관심사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재즈 초보자로 느끼는 감정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유의 몽롱하고 나른한 톤에 빠져 즐겨 들었던 Pat Metheny의 Offramp 앨범에 대해 재즈의 구조에 빗댄 생각과 느낌을 써내려 갔다. 


  투고 후 몇 개월이 지나도록 글은 실리지 않았다. 잡지에 올리기엔 부족한 글이었나 보다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고 늘 그랬듯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잡지를 집어 들었는데 표지 모델이 김광민이었다. 


  "와~! 대박~! 최애 아티스트 특집이구나~!" 


  기대감에 부풀어 5호선 좌석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는데 Pat Metheny의 Offramp 앨범에 대한 글이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유명한 앨범에 대해 글을 투고할 텐데 결국 누군가의 글이 잡지에 실렸나 보다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글 / ㅇㅇㅇ"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투고해 본 것도 처음이고 약간의 기대는 했었지만 전문 잡지에 정말로 실릴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봐왔던 다른 어떤 때보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지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내 글일 줄은 기대하지 못했고 그래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감정이 배가되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실린 호에 내 글이 함께이기도 했고 그가 소개했던 아티스트에 대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옆자리에 앉아있는 누군지도 모르는 분에게 자랑할 뻔했다. "이 글 제가 썼어요~!"라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리 즐거울 것 없는 도심의 생활… 

그 단순함과 복잡함이 얽힌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여행일 것이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과연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열망하는 것일까? 끝없이 펼쳐진 바다 앞에서 작은 존재의 느낌, 가슴 깊숙한 곳의 답답함 마저 소멸시켜 주는 숲의 시원한 공기와의 만남. 낯선 이국 땅에서의 문화적 충격, 같이 떠나는 이들과의 유대감과 믿음. 이런 것들이 여행을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일상은 그리 쉽게 여행을 허락하진 않는다. 학교, 직장, 가정 그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휴가도, 그리고 방학도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들로 여행이란 것으로 채우기 힘들다. 이렇게 떠나기 힘든 여행, 여행에 대한 갈증…


까만 아스팔트 위에 노란색으로 쓰인 'Turn Left'

이 아스팔트 밑의 반짝이는 원판을 CD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그럼 여행에 대한 욕구에 목말라 있는 이들에 팻 메스니는 조심스레 묻는다. 


Are You Going With Me?


물론 팻 메스니만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팻은 기타, 라일 메이스는 신디사이저, 스티브 로드비는 베이스, 댄 거틀립은 드럼, 나나 바스콘셀로스는 퍼커션이란 각자의 배낭을 메고 여행에 동참한다.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작은 보통의 여행과 사뭇 다르다. 일상에 지친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듯이 조용히 출발한다. 


해가 지는 시간, 하늘이 붉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광경에 약간의 두근거림은 시작되고 펼쳐진 코드의 길을 따라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 그 느낌들이 각자의 배낭에서 스프레이를 통해 나온 물방울처럼 흩뿌려진다. 배낭 속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어진 기억의 한구석에 숨어있는 편린, 현재를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 슬픔,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에 맞서는 자신감이 모두 아우러져 있다. 


팻 메스니의 배낭에선 동행자들 사이의 편안한 대화가 몽롱 톤으로 흘러나오고, 라일 메이스의 배낭엔 일상을 떠남에 대한 마음의 공백과 알지 못할 허전함을 꽉 채워줄 여행에 대한 신비로움이 감추어져 있다. 또 스티브의 배낭엔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닌, 여행의 동반자와 함께 함으로 인한 믿음에 대한 안정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댄의 배낭과 나나의 배낭에는 여행이 주는 새로움과 흥분, 기대감에 대한 두근거림이 있다. 


반짝이는 바퀴를 돌리며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8분 47초, 쉽게 내릴 수 없다. 그건 단지 하드웨어를 통해 만들어진 공기 입자의 진동 시간일 뿐이다. 그들 인생의 깊이를 녹여, 동행자들과 호흡을 맞추어 함께 만들어낸, 멋진 여행을 하고 나서의 뿌듯함 아쉬움. 긴 여운이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R U Goin' With Me Again?



  다시 읽어보기엔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재즈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폭발 시기키는 촉매제였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재즈를 가끔, 아주 가끔은 잊고 살기도 하지만 결국 듣게 되는 음악은 역시 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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